공연하다 더위 먹은 썰 풉니다

2025, 다시 쓰는 에든버러 페스티벌

by Siho

그러니까 처음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을 방문했을 때로부터 딱 3년 만에 이곳을 다시 찾았다.


내가 에든버러에서 공연을 하는 날이 올까? 정말? 과연? 얼마나 먼 미래에?

하지만 그 일은 생각보다 빨리 일어났다.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 CCTA (Climate Change Theatre Action)이라는 행사에서 나의 <Sea: The Breathing Matter>를 공연할 수 있게 된 것!! 석사코스 논문을 위한 실습공연 "Life Below"가 여기까지 오게 될 줄이야!! 당시 공연을 찾아주었던 이들의 많은 응원이 있었기에 이 (작고 소중한) 25분짜리 공연으로 에든버러에 감히 발을 들일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감사해요!


CCTA는 기후위기나 멸종, 바다오염에 대한 주제로 쓰인 60개의 대본을 한 달 동안 읽는 (혹은 재해석해 공연하는) 프로젝트인데 운이 좋게 뒤늦게 합류했다. 보통은 그냥 대본을 낭독하고 끝인데 나는 기존 공연을 들고 가서 조명이니 비디오니 요구가 많았다. 스태프들은 나의 이런저런 요구에 맞추느라 고생깨나 했을 것...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심심한 감사와 죄송한 말씀을 드려요)


하루에 수 백 개의 공연이 일어나는 기간이다 보니 구석진 자리에서 하는 이런 행사에 뭐 그리 관객들이 찾아오려나 생각했는데, 못해도 열다섯 명은 무대를 채웠다. 나의 공연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무대에서 함께 해야 하는 공연이기에 무대 바로 앞까지 세팅된 의자에 당황...(당황 1) 했지만 괜찮아. 이게 CCTA스타일이라고 하니까.


공연 5분 전. 세팅해 둔 LED조명이 생각보다 따뜻(?) 하다. 아주 작은 냉방기 두 개가 돌아가고 있긴 했지만 이것으로 충분할까...? 벌써부터 후덥 하다. 나의 의상도 하필이면 ‘다이빙용 웻 슈트’인 덕에 제 기능- 물속에서 체온을 지켜주는-인 보온을 아주 충실히 해 내고 있다. 괜찮을까!


의자에 앉아 관객을 기다리며 배가 접히는 곳에 땀이 고이는 걸 느꼈다. 이 공연, 큰일 났다!


왜 틀린 예감은 항상.

공연이 중반쯤 갔을 때였나. 나는 정말 물속에 있는 듯 한 압력을 느끼고 있었다. 슈트 안에 고여가는 땀, 얼굴에서 흐르는 물. 처음 해보는 무대 위의 대 홍수다. 공간이 좁은데 조명을 너무 많이 사용한 탓일까, 아니면 관객들이 많아서일까. 공연 중간에 스노클 마스크를 벗는 씬이 있는데 마스크를 슬쩍 올리자 땀이 정말 잠수를 했다 나온 수준으로 주르륵 흘렀다.



"아하하, 이건 눈물이 아니라 물입니다 물!"


예상외로 뜨거운 조명, 너무 밀착한 관객들, 쉴 새 없이 흐르는 땀에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그래도 Show Must Go On!이다. 해 봐야지. 나는 마지막까지 - 계속해서 탈출하려는 - 정신줄을 꼭 붙들고 매달렸다. 어찌 저지 고비를 넘기고는 드디어,



오늘 저의 여정에 함께 해 주셔서, 그리고 저와 함께 숨 쉬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Thank you for joinning my journey and Thank you for Breathing with me" ),라고 멋지게 한 마디를 남기며 퇴장하는 마지막 씬이었다.


Thank you for joinning my journey 까진 했는데 그다음이?? 생각이 안 나는 거다.


Breathing me라고 하면 되는데 무언가 퓨즈가 끊긴 듯, 생각이 전혀 나지 않았다. 사고가 안 된다.

아, 시방 나는 더위를 먹었구나,. 이런.

기껏 끌고 온 공연의 마지막이 이렇게 땀으로 얼룩지다니...

부끄럽지만 어쩔 수 없다.


민망한 박수를 받고, 옷을 싹 갈아입고는 관객들과 인사하고 찾아와 준 지인들과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사실 뭐 대단하게 할 말이 없었다. 속상하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했다. 섭섭하진 않았다.


그래도 동료라고 - 감동했다. 좋았다. 배울 점이 많았다. 이런 공연 장르도 있구나 등 - 좋은 피드백들을 얹어 주어서 혼자 우울하진 않았지만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이건 그냥 경험 부족인 거다.


사실 변명하자면 미리 조명도 음향도 다 켜본 채로 리허설을 해 봤어야 하는데 장사를 해야 하는 공간의 특성상 그럴 수가 없었다.

미리 알았으면 뭔가는 바꾸었을 텐데. 미리 체크하지 못한 잘못. 그리고 사람이 그 정도로 많으면 내용을 줄이거나 관객들을 앉히고도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려했어야 했다. 상대적으로 더 넓은 공간에 더 적은 관객이었던 때와는 다른 배치와 구조를 만들었어야 하는데 나에게 익숙한 그대로 사용한 또 하나의 잘못. 한 번 실수는 병가지 상사요 사람은 실수를 통해 배운다고 하던데 정말 그렇다. 또 한 번 이렇게 깨어졌다.


돌이켜보니 내가 퍼포먼스나 공연을 할 때에는 언제나 누군가 돕는 이, 혹은 전문가가 옆에 있었다. 그래서 안전지대에서 시작하거나, 나의 들보를 체크하고 수정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던 거다. 이번엔 철저히 혼자였다. 그래서 이런 펑크가 그대로 드러난 거다. 아차.


공연은 이미 끝나고, 자책은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한다. 배웠으니, 다음번엔 이를 토대로 더 나은 공연을 만들면 된다. 깨달았으면 된다. 숙소에 돌아와 땀에 절은 웻슈트와 나를 함께 오랫동안 빨았다.


개운하다. 슈트도 깨끗해졌다.

슈트를 탈탈 털어 널면서 밖을 보니 이미 날이 어둑어둑 해지고 있었다. 어찌 되든 오늘 하루도 무사히 저무는구나.


이렇게, 이렇게 배우는 거지. 눈물인지 땀인지. 다 흘리면서 말이야.


오늘의 배움을 잘 기록하고 기절하듯 잠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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