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든버러 프린지에 가시나요?

9일간 살며 숙제하듯 관람한 추천 공연 9선

by Siho


나의 사랑 너의 사랑 에딘버러. 이제는 상업성이다 뭐다 말이 많지만 단기간 내에 이렇게 많은 공연을 압축적으로 모아서 볼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예전에 방문했을 때와 다른 건 이번엔 나도 아티스트로 참가를 했다는 것!


창작집단 SSAK 의 매니저로, 그리고 또한 퍼포머로

에딘버러에 머물며 짬짬이 본 공연 중 기억에 남는 작품들을 추려 보았다. 어디까지나 공연에 대한 감상은 주관적이고 취향은 각자 다양한 점을 미리 말씀드리며... 그래도 (내가 관람한 작품들 중) 후회 없을 작품들로만 엄선했다. 설명은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공식 영문 설명을 간단히 번역하여 실었다. -



1. Dream Space

Dream Space는 인형극, 음악, 움직임으로 풀어낸 섬 모험과 고래와의 만남을 통해 웃음, 경이로움, 치유를 선사하는 몰입형 공연입니다.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상상력과 감동을 전하는 특별한 무대입니다.

Company nameCreative Group SSAK / Korean Season by GCC & AtoBiz

Duration50mins

Age RatingAge 5+


: 팔이 안으로 굽는게 아니라 해도 이건 어쩔수 없다. 퍼펫 공연 <환상 공간 (Dream Space)> 은 첫 손가락을 당당히 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찾기가 다소 어려운 곳에 위치한 탓에 건물을 돌아 돌아가야하지만, 여기에 극장이 있다고? 싶은 곳에 이윽고 도달하면 비로소 작은 컨테이너 박스들로 이루어진 '크레이트' 극장을 만날 수 있다. 좁다는 것은 곧 아늑하다, 가깝다는 이야기도 된다. 배우의 땀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 것 같이 가까운 이 곳에서 배우들의 손가락은 얼굴이 되고, 신령이 되고, 바다가 된다. 무대에서의 상상력이 마음껏 발휘되는 공간. 울다가 또 웃다가 보면 나도 고래와 함께 헤엄치고 있는 공간.

인형극은 어린이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인형극은 거기서 거기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표를 사서라도 보여주고 싶다. 무너미 마을의 신령, 무인도의 두 친구, 그리고 고래와 소녀. 그 모두가 우리 중 누군가의 모습이자 관계 이다.

우리는 무엇을 꿈꾸고 소망하는가? 정말 소중한 것은 어쩌면 우리의 바로 옆에 있는 그 누군가가 아닐까? 환상 공간은 나에게 그런 존재, 그 누군가였다.



2. Taiwan Season: Where Has All the Fruit Gone?

귤은 우리 모두에게 익숙하죠? 대만에서는 크기, 모양, 색이 다양한 귤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Yinalang Group의 따뜻하고 상상력 넘치는 가족 공연은 서양의 연말 전통과 아시아의 설 명절 가족 모임을 연결하며, 이 계절 과일의 성격과 역사, 문화적 의미를 섬세하게 비춥니다. 장인정신과 장난기, 섬세함이 빛나는 이 작품을 보고 나면, 귤을 다시는 예전처럼 보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Company nameYinalang Group

Duration50mins

Age RatingAge 5+


: 같은 아시안 문화권이라고 해도 한국-중국-일본-타이완 이 모두 극명하게 다르다. 나는 타이완(대만)팀의 공연은 지금껏 많이 볼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 기회로 대만의 가능성? 놀라운 포텐을 보게 되었다. 조금은 어색한 영어와 다소 수줍은 듯한 프로모션이 오히려 궁금증을 자아냈다. '귤'을 소재로 가족의 정을 이끌어내다니, 참 따듯하지 않은가? 그나저나 스탭들이 다 쓰고 있던 니트 귤 모자, 너무 사고 싶었는데 왜 안파는 거야!



3. Alone

망가져 가는 우주선 속, 지구를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두 여성 우주비행사의 이야기. 이 숨 가쁜 다중 수상 경력의 SF 스릴러는 생존, 기후변화, 인간의 회복력, 그리고 STEM 분야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억압되는 현실을 깊이 파고듭니다.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강렬하고 몰입도 높은 이 작품은 묻습니다. “누가 우리의 집을 구할 것인가?”

Duration60mins

Age RatingAge 16+ (Guideline)


:에딘버러에서의 첫 작품으로 Alone을 본 것은 행운이기도, 불행이기도. 한 껏 높아져 버린 눈높이 탓에 이후에 본 작품들이 무 맛으로 느껴지는 효과가... 영화의 한 시퀀스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세트와 몰입감, 그리고 배우들의 강력한 연기가 계속 여운이 남는다. 마지막은 다소 신파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이 극에서 중요한 것은 결말이라기 보다는 중간의 서사라고 해야 할까. 인간은 왜 갈등을 거듭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꼭 후회할까. 영상으로 만들어져도 좋을 것 같은 작품이었다.



4. The Time Painter

단 한 개의 탁자와 한 장의 종이로 기억의 기쁨과 슬픔을 담아내는 연극 **〈시간을 그리는 사람〉**은 기억, 꿈, 역사, 현실이 뒤섞인 몽환적인 세계를 펼쳐냅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생존자 ‘문 여사’는 민주화를 위해 싸우다 딸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이 비극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여전히 현재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변화하는 종이 오브제, 움직임, 강렬한 시각 이미지로 이 공연은 관객을 깊은 감정의 여정으로 이끌며, 과거와 현재가 맞닿는 순간에 묻습니다. “기억한다는 것은,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가?”

Company nameACC, ACCF, Haddangse / Korean Season by GCC & AtoBiz

Duration60mins

Age RatingAge 12 + (Guideline)

: 광주 민주화운동을 이렇게 단정하게, 그러면서도 감정들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고이 담은 작품이 있었던가. 아픈 역사를 재현하는 작품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 너무 감정 전이가 쉽게 일어나는 사람인- 탓에 광주 운동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알고 보지 말아야 하나 생각도 잠시 했었다. 하지만 믿고 보는 하땅세잖아. 일반적으로 그려내셨을리 없지.

아, 이 공연은 길게 설명 할 수 없다. 그냥 꼭 가서 보셨으면 좋겠다. 그냥. 엄마. 엄마. 우리 엄마. 딸들. 그리고 사과. 역사. 거대한 소품과 효과가 없이도 이렇게 공연을 꾸릴 수 있다. 장치와 감동은 절대 정비례가 아니다. 밝지만 진한, 청국장 같은 공연. 와중에 첫 도입부에 사과주스를 나눠주던 배우님의 대사가 계속 맴돈다.

"It's Apple juice time!"



5. Ten Thousand Hours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온 Gravity and Other Myths가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대표작 **〈Ten Thousand Hours〉**로 돌아옵니다. 〈A Simple Space〉와 〈Backbone〉을 만든 이들이, 위대한 성취를 위해 쏟아온 수많은 땀과 기쁨의 시간을 찬란하게 그려냅니다.

“놀라울 만큼 깊이 있는 사유, 뛰어난 기량, 그리고 감정적 용기가 숨 막히게 펼쳐진다.” ★★★★★ (Scotsman)

“경이로움을 자아내는 곡예의 정수.” ★★★★★ (Edinburgh Festivals Magazine)

“움직이는 인체가 만들어내는 시각적 걸작.” ★★★★★ (StageWhispers.com.au)

“최면에 걸린 듯 빨려드는 무대.” ★★★★★ (List) “인상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다.” (Fest)

Company nameGravity and Other Myths and House of Oz

Duration60mins

Age RatingAge 5+


: 연기력의 정점이 Alone이었다면 피지컬과 만듦새의 절정은 단연 텐 싸우전드 (1,000) 아워스다. 아니 한 순간만 삐끗해도 대형사고로 이어질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장면들이 한 시간을 내내 채우는데 도대체 공중에서 세번 제비를 돌고서 스무스 하게 사람 위로 내려앉는게 새 지 사람인가??? 한 동작도 틀리지 않고 1초도 어긋남없이 계산된 점프와 통과, 주고 받고, 던지고를 보며 그야말로 물흐르듯 흐르는 몸의 대 서사에 입이 떡 벌어진다 .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훈련하면 사람이 저렇게 가벼울 수 있나? 공연의 중간에 이들이 의도적으로 실수를 하며 뒤의 전광판 숫자가 바뀌는데, 그때 비로소 우리는 1,000시간 이라는 이 작품의 제목을 이해하게 된다. 그 정도로 몰입했구나, 훈련했구나.

공연을 보고 나오면서 스스로가 그렇게 부끄러워 보긴 처음이다. 열심히 살아야겠다. 치열하게 살아야겠다.



6. The Genesis

17명의 국제 예술가들이 모여 인간적 연결의 기쁨과 에든버러 프린지의 정신을 축하하는 숨 막히는 곡예 여정을 펼칩니다. 유럽 투어의 성공에 이어, Copenhagen Collective는 스코틀랜드에서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유쾌한 공연을 선보입니다.

Company nameCopenhagen Collective

Duration60mins

Age RatingAge 5+


: 제네시스. 제목에서 주는 힘이 있지 않은가? 아크로바틱 공연의 제목이 '제네시스' 이기 까지 하다면 분명 엄청난 열기, 크기, 그리고 규모를 상상하지 않을 수 없다. 다양한 동물들의 실루엣이 인상적이었던 그들의 피지컬, 그리고 동작들. 부드럽고 유려한 Ten Thousand Hours가 요샛 말로 '에겐' 이었다면 더 제네시스는 '테토'향이 그득하다. 살과 살이 부딫히고, 올려지고, 또 떨어지는 그 많은 이야기들. 다소 투박하고, 우직하게 보이지만 진심으로 즐기고, 춤추며, 계속해서 서로를 응원하는 모습들은 일견 인간적이기도 하다. 그래, 이 작품은 그렇게나 뜨거웠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 아직 땀도 식지 않은 배우들이 먼저 달려나와 계단에서 관객들을 배웅하는 모습도 나는 참 반가웠다. 정말 쉬고 싶을 텐데도 한 명 한 명 인사하며 감사함을 표하는 모습에 나도 경의를 표할 수 밖에.

검은 운동복을 입은 이들이 퍼포머들이다. 이들이 조금 전 하늘을 날던 그들이 맞나 신기해서 계속 뒤돌아 보게 된다.


7. Apocalipsync

아르헨티나의 센세이션이자 소셜미디어 스타 루시아노 로소가 컬트적 인기를 끈 피지컬 시어터 작품 Un Poyo Rojo로 관객을 사로잡은 후, 이번에는 솔로 퍼포먼스 **〈Apocalipsync〉**로 돌아옵니다. 피지컬 시어터, 마임, 댄스, 립싱크의 정수를 결합한 이 에너지 넘치는 공연에서 로소는 몸과 얼굴을 변화무쌍하게 변주하며 고립, 과잉 연결, 인간 표현의 주제를 재치 있게 풀어냅니다.

Company nameLuciano Rosso presented by Quartier Libre Productions

Duration60mins


:그냥, 배우는 이런 사람이 해야 한다. 그게 맞다. 왜 내가 무대를 모독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배우이기를 포기했는지 한번 더 느끼게 해준 작품. 천재다. 몸, 연기, 액션, 제스추어, 리듬감. 다 그냥 천재. 괜히 센세이션이 아니다. 결혼하자고 할 뻔 했네.




8. A Haunted House

“어두운 어두운 거리의 어두운 집에서, 공포의 집이 잠에서 깨어난다.” 마임과 슬랩스틱 퍼포머 데이비드 호스킨(BroadwayWorld.com ★★★★ “경이롭다”)이 선보이는 **〈A Haunted House〉**는 한밤중의 으스스한 집에서 벌어지는 기괴하고 웃기면서도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그립니다.

Company nameDavid Hoskin

Duration60mins

Age RatingAge 14+ (Guideline)


: 100% 이해했으면 조금 더 재미있었겠지만 약 70%이해한 채로도 충분히 재미있었다. 한 명의 배우가 마임과 슬랩스틱으로 60분을 채운다는 것은 가능한가? 가능하다! 이 친구 이외에도 두 명의 모노로그 공연(혹은 스탠드업 코미디)을 더 보았는데 결국 1인극은 '자신감'이 전부인것 같다. 하나같이 ‘어차피 한시간 동안 내 이야기만 주절주절 할 거 알고 왔잖아? 난 안쫄아!! ’ 라는 기세가 가득하다. 그 중에서도 이 '귀신의 집'은 정말 기발하고 놀라운 마임과 장치들로 관객들을 기쁘게 했다. 오죽하면 나오는 길에 2만원(10파운드)이나 하는 에코백도 하나 샀다. 60분 동안 오롯이 혼자 땀흘린 배우에 대한 감사과 존경이랄까. (단, 영어를 아주 잘 알아듣지 못하는 편이라면 크게 흥미롭지 못할 수도 있다)


9. CHALLENGE

**〈CHALLENGE〉**는 평범한 회사원이 지루하고 부정적인 삶을 바꾸기 위해 도전하는 일본의 넌버벌 코미디입니다. 사랑에 영감을 받아, 그는 더 나은 자신이 되어 짝사랑의 마음을 얻기 위해 기상천외하고 유쾌한 도전들을 이어갑니다. 아키라 이시다의 독창적인 코믹 댄스, GABEZ의 표정 풍부한 마임, 그리고 역동적인 검술이 어우러져 시각적으로 흥미롭고 에너지가 넘치는 무대를 만듭니다.

Company name Yoshimoto Kogyo Co., Ltd.

Age RatingAge 12 + (Guideline)


: 요시모토 고쿄라면 워낙 유명한 기획사잖아?? 게다가 유투버까지 합세한 엄청난 만담꾼들이 에딘버러에 오다니. 일본 코미디를 그리 애정한다고만은 볼 수 없는 나도 거리 홍보중 몇 번이나 마주친 이들을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었다. "내일 꼭 갈게요" 라고 약속해 두고, 정말 갔다. 어쩌면 예상가능한 일본식 개그 - 스토리라인이 조금은 단순하게 느껴지거나, 여성을 구출하는 내용등 전형적인 남성중심의 서사- 는 다소 아쉽긴 하지만 어렵고 난해한 작품들 속에서 직관적이고 솔직한, 그래서 더 우리의 이야기같은 이 작품은 그 나름의 울림이 있다. 못해도 뭐 어때. 히어로가 아니어도 어때, 그냥 꾸준하면 언젠가는...? 이라는 교훈은 일본의 애니메이션, 영화, CF를 관통하는 공통 서사인듯 하다. 어쩌면 못나면 안되고, 찌질하면 안되고, 모든것이 월등하고 훌륭해야만 인정받는 현실에 대한 반대급부일지도. 이건 아시안이라면 모두 비슷하게 느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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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기간 동안 생각보다 많은 공연을 보았다. 지면 관계상 다 담지는 못했지만 어떤 배우 하나 자신의 공연을 허투로 해치우는 사람은 없었다. 각자 저마다의 최선으로 60분의 시간을 꽉 채워 관객을 만났다. 공연의 질이 높고 낮음, 혹은 성공과 실패를 떠나 무대와 거리위에서 만난 수많은 배우들의 진심을 들으며 내가 왜 공연을 사랑하는지, 왜 무대를 사랑했는지 다시 한번 상기할 수 있었다. 나의, 너의, 그리고 그 너머 사회의, 우주의, 미래의 이야기를 자신의 목소리와 몸에 실어 세상으로 퍼트리는 멋지고 장한 이들, 그리고 관객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무대 뒤에서 소리를 만들고, 빛을 내보내고, 이야기를 만들고, 공연장까지 사람을 끌고 오는 그 수많은 '동종업계 종사자'들의 등 뒤에 이 지면을 빌어 다시 한 번 뜨겁고 무한한 응원을 실어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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