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모어 갭은 그들만의 이야기일까
오랜만에 Lecture 강의가 아닌 Practice 실습시간이었다. 교수님이 '지역주민' '유력용의자' '경찰' 등의 역할이 적힌 종이를 우리의 목에 걸어주며 말했다.
"지금부터 우리는 각자가 역할을 맡을 겁니다. 모두 '시카모어 갭'에 대해 알지요? 아참. 시호는 모르겠구나. 누가 설명 좀 해줄래요?"
시카모어 갭. 전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아니, 사건의 이름이기도 했다.
------------- 이하 과 동기에게서 들은 이야기이다 ----------
'로빈후드 나무'라 불리는 나무가 있었다.
영국의 최북단 노섬벌랜드(Northumberland)에 위치한, 시카모어 갭이라고도 하던 이 나무는
무려 로마 제국 시절부터, 북극광이 물드는 이곳에 그렇게 고고하게 수 백 년 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 나무는 1990년대를 대표하는 할리우드 영화 '로빈 후드'에 등장하면서 유명세를 탔고 2016년에는 유럽 올해의 나무로 선정되기도 했다. 참고로 이 지역은 유럽에서 가장 넓은 밤하늘 보호구역이자 영국에서 가장 크고 어두운 하늘 공원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 (사진, 설명: bing wallpaper)
쓸쓸해 보이면서도, 참 강인해 보이지 않는가??
인간의 짧디 짧은 수명보다도 훨씬 오랜 시간을 바람과 물, 햇빛과 달빛을 맞으며 살아냈을 그 시간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이 무화과나무는 로마제국의 북서부 국경을 표시하기 위해 지어진 117.5km 길이의 하드리안 성벽에 위치하고 있다. 아니, 있었다.
제목에서 짐작했겠지만 이 나무는 더 이상 존재 하지 않는다.
2023년의 9월 29일,
여느 때처럼 사람들은 이 아름드리나무를 만나러 성벽을 오르고 있었을 게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시카모어 갭이 없어!!!!!"
그렇다. 폭풍 후 치던 어두운 밤, 밤 새 누군가가 '어떤 행위'를 저지르고 간 것이다.
그 현장은 이러했다.
사람들의 충격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200년의 생명이 댕강. 그야말로 댕강 잘려나가 허옇게 드러난- 어제까지는 살아있었을 - 그 단면이 너무 곱고 말끔해서 더 아프다.
도대체 어떤 인간이 이런 천인공노할 짓을 한 걸까? 왜? 도대체 무엇 때문에???
노섬브리아 경찰은 바로 다음 날, 아주 작은 근거라도 좋으니 단서제공과 제보를 부탁한다고 대대적으로 소셜미디어에 광고했다.
사람들은 슬퍼하며, 분노했다. 도대체 왜?
내셔널 트러스트와 노섬브리아 내쇼널파크에는 전 세계에서 수 천 건의 추모 메시지와 도움 제안이 쏟아졌다. 나무 하나가 잘려나갔는데 이렇게나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들 했다.
그 마음이 하늘에 닿은 것일까, 범인은 머지않아 잡히게 된다.
바로 이 두 사람이다. 39세의 다이엘 그레이엄과 32세의 아담 캐러더스. 자신들도 스스로 '멍청한 임무'라고 부를 정도로 한심한 짓거리를 기어코 하고야 만 장본인들. 장엄한 200여 년의 역사를 불과 3분 만에 전기톱으로 박살 내며 핸드폰으로 비디오 촬영까지 했다. 둘은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냥 우발적으로 저지른 일이다’ 라며 선처를 호소했지만 그게 먹힐 리 없었다.
크리스티나 램퍼트 판사는 두 사람이 단순히 허세와 스릴을 위해 이 일을 벌였다고 결론 내렸다.
“폭풍우 한밤중에 나무를 베어내면서 일종의 짜릿함을 느낀 것이지요. 언론의 보도를 즐기며, 세상 모두가 주목한 범죄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에 뚜렷한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이게 될 말인가??
그리고 판사는 나무가 가진 역사적/정서적 의미를 고려해 이들에게 중형(징역 4년 3개월)을 선고했다. 이는 영국 최초의 '나무 범죄' 실형이다. 수목법 전문 변호사 사라 도드는 “영국에서 나무를 불법으로 베어내고 실제로 실형을 선고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 나무는 현재 내셔널 트러스트에 의해서 복원이 시도되고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 기긴 하지만 이제는 펜스로 접근도 제한된다. 물론 다시 예전의 모습을 갖추려면 또다시 150~200년이 필요할 테지만 말이다.
최근(2024.7월경) 에는 너무나 감동적 이게도 이 작은 그루터기에서 8개의 연초록 새싹이 올라온 것이 발견되었다. 놀라운 회복력이다. 사람들은 이 나무의 기억을 이어가기 위해 49그루의 묘목을 준비해 'Trees of Hope' 캠페인도 진행했다. 그나마라도 이렇게 애도의 기억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한 편으론 다행이다.
검색해 보니 오죽 큰 사건이면 한국에서도 언론이 잔뜩 다룬 적이 있었다. 나만 몰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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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수업에서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하며 나름의 논리로 갑론을박을 펼쳐댔다. 역할극은 언제나 재미있고 신선하다.
하지만 아무리 침을 튀기며 싸운 들, 역할을 바꾸든 내내 나의 머릿속은 한 가지 생각이었다.
'이런 일, 비단 시카모어 갭 에게만 일어나는 것일까'
제주도에서도 우리는 쉴 새 없이 듣지 않았나,
찻길을 내기 위해, 우리의 편의를 위해 수없이 잘려나간 그 40년 된 벚나무들의 외침을.
아니, 그 나무들과 한평생을 벗 삼아 지낸 할머니들의 절규를.
그것도 마을 회장의 임기만료, 그 틈새를 파고들어 공사를 강행해 버린 시청 담당자 였다지...
참고기사: https://www.seoul.co.kr/news/localnews/2022/04/17/20220417500066
'나무 까짓것 또 심으면 되지. 뭐 그까짓 걸 가지고 죽네사네야' 같은 생각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
나무에서 끝날까? 꽃을 꺾는 정도로 끝날까? 말하지 못하고 소통하지 못하는 무생물이라고 생각해서
그래서 이렇게 대하는 걸까? 아니다.
의사표현을 하는 동물에게라고 다르지 않다.
키우던 동물? 죽으면 또 사면되지, 휴가에 못 데리고 떠나면? 어딘가에 묶어두면 누군가 구하겠지.라는 생각들로 만연한 이 사회는 하루에도 수십 건의 동물 유기 신고가 접수된다.
아. 어느새 인간은 '공존'이라는 걸 잊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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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고 묵혀둔 지가 좀 되었는데 굳이 이 이야기를 지금 꺼낸 이유는
엊그제 오랜만에 학교에 갔다가 발견한 새 버스 정류장 때문이다.
학교 안의 채플 건물이 있는데 (주로 종교 행사들이 이루어지는), 기존에 학교를 빙 둘러 세워주던 정류장을 폐쇄하고, 대신 채플 건물 앞을 새로운 정거장으로 정비했음을 알게 되었다. ‘오,깔끔하다’ 라고 생각했는데 오랜만에 마주친 친구가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해서는 나에게 말했다
"시호, 저거 정류장, 원래 있던 아름드리나무 다 밀어버리고 만든 거 알아???"
"뭐라고?"
"여기 나무들 쭉- 심어져 있었잖아. 못해도 몇십 년씩 된 것 같은 큰 나무들이었는데. 지금 하나도 없어! 너무 화가 나! 우리에게 상의도 안 하고 안내도 없이 그냥 저렇게 정거장 띡하고 만들면 다야? "
내 말이. 아니 우리 학교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걸로 맨날 홍보하는 학교 아니었어??? 환경친화적인 학교라며!
홈페이지엔 여전히 아름답게 물든 사진을 올려놓고는, 실제로 저 나무들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판판하고 어두운 아스팔트가 덮인, 버스가 네 대나 서 있는 그 정거장을 나는 차마 사진으로 남기지 못했다.
속상하다. 무력하고, 속상하다.
그대들에게 나무는 생명이 아니라 조경용품에 불과한 것인가? 나무가 하나 바라는 것도 없이 어떤 것들을 우리에게 끊임없이 주는지는 모르는 채.
가슴이 답답하다.
아아 벌 받는다, 이 사람들아.
아니, 이미 받고 있지. 이미.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깨닫지 못하겠지.
답답한 마음에 학과 친구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지금 이 상황에 대해 알고 있냐고.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복잡한 마음에 구구절절 문법도 체크 안 하고 후다다닥 써 내려간 장문의 편지에 친구들이 하나둘씩 답을 해온다.
"시호, 네 메일을 받자마자 학교로 가는 버스를 탄 참이야. 믿을 수가 없어. 그게 정말이라면... 우리는 어떤 행동이든 해야지!"
"시호, 나 방금 학교의 관련시설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냈어! 그리고 우리 다음 주부터 잠깐씩이라도 피켓시위라도 하자!!! 모두에게 알려야 해.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우리 만나서 의논하자! 마침 논문 쓰느라 탈모까지 오는 중인데 바람도 쐬고 잘됐네! 어쩌면, 이게 우리가 졸업 전에 할 마지막 의미 있는 일이 될지도 모르잖아."
짜게 식으려던 학교를 향한 사랑이, 잠시 안정을 찾았다.
그래, 나는 이런 동료들을 만나려고 이곳에 온 것이었을 게다.
고마워 모두. 한 마음이 돼 주어서.
자, 나에게 해로운 분노는 그만 털고 일어나
친구에게 선물할 탈모방지 샴푸라도 사러 가야겠다. 그리고 곧, 이들을 만날 약속을 잡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