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바로 저랍니다
"토토로?"
"응, 꼭 봐, 진짜 완전히 강추야!!!"
"얼만데?"
"제일 싼 자리는 5만 원대부터 있는데 거의 시야 제한 석이고, 볼 만한 자리는 15만 원~20만 원 정도 해"
"엥? 토토로 뮤지컬을 20만 원 내고 보라고???"
"아냐. 유치한 그런 뮤지컬이 아니라니까?"
공연예술 평론을 하는 한 지인이 몇 달 전부터 계속해서 추천한 뮤지컬, 토토로.
어릴 때부터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팬이라 일본의 지브리 스튜디오도 몇 번씩이나 다녀왔다고는 해도
라이온 킹부터 시작해서 레미제라블, 마틸다, 카바레, 더 북 오브 몰몬, 해밀톤, 위키드 등등 그 신나는 뮤지컬을 줄줄이 볼 때도 R 좌석은 선뜻 산 적이 없는 나다. 그런데 [토토로]에 그만한 돈을 지출한다니(토토로 폄훼 아님). 유학생 신분에 감히 고민조차 할 수 없는 일 아닌가? 그런데 검색을 조금 해보고 나니 영국의 토니 상 격인 로런스 올리비에 상 2023년 6개 부문 수상에 영국 웨스트엔드 공연계를 대표하는 왓츠 온 스테이지 상 5개 부문 수상까지? 이 뮤지컬, 갑자기 너무 궁금해진다.
이웃집 토토로- 이 단순한 이야기가 어떻게 웨스트엔드까지 와서 연일 매진 사례에, 상까지 받는 거지?
그래도 공연예술관련업에 몸 담고 있는데 이런 호기심을 무시해 버려서는 안 된다. 리서치 비용이다. 암, 그렇고 말고. 나는 대담하게 무대 바로 앞 좌석을 예매했다. 성공!! 대부분의 좌석이 매진이라 무려 2개월 뒤에나 보는 일정이었다. 이렇게나 부지런히 예매해야 하는 공연이라니.
이윽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2개월이 지나 드디어 런던에 토토로를 만나러 오게 된 것이다!
공연은 런던 브로드웨이의 길리안 시어터에서 열린다. 공연 시간이 가까워 지자 국적, 나이도 다양해 보이는 수많은 관객들이 슬금슬금 모여들기 시작한다. 기대감은 Up, Up!
공연 음악이 연주될 뿐 아니라 오브제이자 배경이 되기도 하는 연주석도 흥미롭다.
나는 연극이나 뮤지컬등의 공연을 보면 주로 음악과 연기에 집중하는 편인데, 토토로는 오프닝(도입)부터 '비주얼의 압도'가 엄청나다. "어떻게 저걸 저렇게 구현을 할 수 있지?" 하는 생각이 떠오르기가 무섭게 배경이 바뀌고, 시간이 달라지고, 깊이감이 생기는 무대. 공연이 시작한 지 10분밖에 되지 않았는데 나는 이미 쉬는 시간에 이 뮤지컬을 추천해 준 지인에게 보낼 감사문자를 생각하고 있었다.
아아, 이 깊이감.
그리고 무대 위 배경 멀리 너무도 태연하게 드러나 있는 연주팀.
처음에는 왜 연주팀을 무대 아래로 숨기지 않고 저 위에, 그것도 한가운데 그대로 노출했는지가 궁금했는데 공연이 진행되면서 보니 주연배우들이 아닌, 싱어가 각 장면마다 따로 나와 노래를 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래, 아무래도 로열셰익스피어 컴퍼니가 뮤지컬 전문은 아니니깐... 모든 배우가 노래를 할 수는 없겠지.
언니가 동생 메이를 찾는 씬. 농가들을 스쳐 벼가 심긴 논을 헤치고 다니는 이 씬이 심플한 오브제와 주변 배우들의 군더더기 없는 동선에 의해 무대 위에서 촘촘하고 아름답게 엮어진다. 무수한 연습과 스케치들, 또 연습이 있었을 이런 장면들마다 나는 감탄, 또 경이로움을 느꼈다. '이거구나'. 내가 공연을 보면서 희열을 느끼는 순간은 바로 이거구나. 배우들의 땀으로 이루어진 묵직한 어떤 순간과의 조우.
그렇지, 나는 또 감동하여 울컥, 눈물이 나고야 만다.
그리고 급기야 토, 토, 로!
신비감을 유지하기 위해서인지 토토로 다른 출연인형들은 공연 전 사진자료로 찾기가 다소 어려웠 (그리고 스포일러로 미리 보고 싶지는 않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커다란 스케일에 자연스러운 동작(조작). 배우와의 액션 리액션이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어떻게 구현할지 궁금했던 고양이 버스도 귀엽고 재기 발랄하게 무대 위를 누볐고 (조작하는 인원이 거의 10명에 육박했다. 대단하다!) 토토로가 우리의 머리 위로 날아가던 1막의 엔딩은 그저 행복, 또 행복 그 자체였다.
공연이 마지막을 향해 갈 때까지 이렇듯 한 번 도 지루할 새가 없었던 토토로.
결국 토토로가 우리에게 주고 싶은 사유는 무엇일까? 감독의 의도, 그리고 무수한 의견들이 있을 수 있지만 나는 가족의 사랑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동시에 토토로로 상징되는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담은 내용이 아닐까 한다. 제대로 알지 못하는 미지의 존재/세계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을까? 동심은 (어머니) 자연과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작동하는가?
집으로 돌아오는 걸음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는 밤이었다.
굳이 굳이 단점을 꼽자면 일본어와 영어의 혼재가 조금 복잡했다는 것. 그리고 어린아이 역할을 어린아이가 하지 않고 나이가 꽤 많은 배우가 한다는 점 정도겠다. 왜 초등학생을 배우로 쓰지 않았을까??? 특히나 남자 중학생(?)으로 추정되는 역할의 배우는 10대는커녕 거의 50대 중반으로 보여 몰입이 조금 힘들었다. 하지만 이런 건 주관적 평가니까...
자, 실컷 감탄했으니 이제 나도 무언가 써 볼 차례다. 토토로가 평면인 셀 애니메이션으로 시작하여 어느덧 브로드웨이까지 접수했듯, 스토리와 콘텐츠가 훌륭하다면 뮤지컬이던, 영화나 연극이던 결국 한계란 없을 것이다. 토토로를 20만 원이나 내고 보냐며 바들바들 떨던 나를, 어느새 또 N차 관람할 날짜를 찾게 만들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