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벌거벗은 프리젠테이션

발표하다 바지를 내린 나의 애정하는 동료 Cole

by Siho

결론부터 이야기 하면 Colin(우리는 줄여서 Col 콜이라고 불렀다)은 우리 4명뿐인 석사과정의 유일한 남성이자, 누디스트(Nudist- 옷을 입지 않고 자연스러운 몸의 상태로 지내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였다.


영국에서 대학을 다니면 (기사) 윌리엄까진 아니어도, 또래의 영국 남자 사람 친구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야무진꿈을 꾸었으나... 내가 만난 남자 동기는 50세의 버섯덕후, 콜 이었다. 그것도 그냥 버섯을 채집하는 게 아닌 벌거벗고 버섯을 채집하는 Naked Forager.


첫 수업에서 이력을 말 할때 '버섯 채집자'라고 스스로를 소개 하는 것도 조금 특이했는데 네이키드...?

알고보니 콜은 Body positivity를 전파(?)하기 위해 알몸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영국을 횡단하거나, 여자친구 Sadie와 함께 벗은 채 집을 나서 펍에 춤추러 간다던가 하는 식으로 일상생활에서 늘 벗어제끼는(?) 것을 서슴지 않는 모양이다.


솔직히 말해 처음에는 거부감이 없지 않았다.

불쑥불쑥 아무데서나 공공장소에서 옷을 벗고 있는 것을 우리나라에서는 뭐라고 하더라...경범죄?

아무래도 눈을 어디 둘지 모르겠는 뻘쭘함은 옷을 벗고 있는 그들이 아닌 우리의 몫이었으니까.


그렇다고는 해도, 뭐 그의 옷 벗음은 학교에서 목격될 것은 아니었기에 나와는 크게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그가 "Body Positivity (신체 긍정주의)"에 대해 프리젠테이션을 하지만 않았어도...


1학기 중간 과제로 '내가 어떻게 공연예술/혹은 퍼포밍으로 사회에 영향을 주고 있는지- 혹은 줄 것인지'에 대한 프리젠테이션 발표가 있었다. 나는 짧은 유투브 크리에이터(를 표방한) 현대비판적 영상을 만들어 공유했었고 다른 동기들은 페미니즘, 외모 지상주의를 전시와 퍼포밍으로 알리는 내용의 발표를 했다. 교수님들은 채점을 매기며 프리젠테이션을 경청하고, 우리는 관중으로서 서로를 응원하며 앉아있었다. 그래, 평범했다. 그러나 Cole이, 마지막 주자인 Cole이!!!


프리젠테이션의 중반부 부터 알몸으로 발표를 시작한 것이다! 으악!!(와중에 양말과 신발은 신고 있는 것이 다소 이색적..) 아니, 이게 용인이 된다구??? 무려 채점 중인 발표에서...??? - 물론 돌발 행동은 아니었고 우리에게 사전적으로 동의를 구했긴 하지만 나는 그냥 잠깐 인 줄 알았지... 나머지 발표 내내 벗고 있을 줄은 몰랐지.


이렇게 몸을 드러내는 것은 자신의 신체를 부끄러워 하거나 두려워 하지 않으며, 더욱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이라면서 피피티 약 20장 가량을 발표하는데, 솔직히 내용이 어땠었는지 정신이 혼미하여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래, 그래, 좋은 거지. 맞아. 우리는 우리 몸을 사랑해야지. 맞지, 맞는데...


자꾸만 아래로 향하려 하는 시선을 잡아 채어 억지로 억지로 콜의 얼굴을 바라보려 애를 쓰는데,

전부 살색인 그의 몸의 어디론가로 고개가 자꾸 떨구어진다. 안돼!!

나만 이렇게 고역인가 싶어 옆자리에 앉은 동기들과 교수님들을 보니 그들도 아예 턱을 치켜세워 들고 부자연 스럽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그래, 나만 그런 것은 아닐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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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사리 20분간의 피피티가 끝났고, 우리는 (정확히 나는) 그가 어서 인공 섬유를 걸쳐주길 바랐다.


"사진을 맘껏 찍어도 돼! 내 이야기도 매거진에 올라가는 거야?" 라며 기뻐하는 콜. 안 추웠나요...?


프리젠테이션이 끝나자 곧 나올 책도 홍보하며 한 권씩 나누어준다. 자비출판으로 만든 이 책은 콜이 여태껏 벌거숭이 채집꾼으로 살아온 이야기, 자기와 함께 벌거벗고 펍에 가자는 제안(을 가장한 고백)을 아주 잠깐 고민하고는 바로 실행에 옮긴 그의 20살 어린 파트너 Sadie에 대한 이야기, 버섯으로 만드는 요리, 야생 허브로 담그는 럼주 같은 흥미롭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중간중간 버섯을 가장한 안 버섯들을 보면서 또 한번 책을 덮었다가는... 아니지. 이건 부끄러운게 아니야. 자연스러운 건데. 왜 나는 자꾸 가리지... 하며 큰 숨을 몰아쉬고 다시 책을 읽어나가기를 연거푸 반복했다. 히유. 조선 처녀 영국 적응 쉽지 않구나야 우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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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amazon.co.uk/Naked-Forager-Colin-Unsworth/dp/B0DRYLJFF2

아마존에서 콜의 책을 살 수 있다!!


콜의 책에 달린 설명을 gpt로 가볍게 번역하여 싣는다.


《벌거벗은 채 자연을 거니는 채집꾼, Naked Forager와 함께하는 즐겁고 자유로운 여정》

자연 속에서 가볍고 유쾌한 ‘나체 채집 달력’을 만들어보자는 작은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곧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몸 긍정(body positivity), 자연과의 연결, 그리고 계절이 주는 풍요로움을 축하하는 큰 여정으로 자라났다.

사람들은 해변과 숲, 황야에 이르기까지 매달 모여 바구니를 들고 버섯, 해초, 들꽃, 그리고 크리스마스 진에 쓰일 솔방울까지 채집했다. 이 모험을 통해 참가자들은 자연 속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존재하는 해방감과 감각에 온전히 집중하는 기쁨을 함께 나눴다.

Colin Unsworth는 열정적인 채집가이자 교사로, 특히 봄과 가을에 채집 워크숍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2022년 그는 파트너 세이디와 함께 영국 전역을 자전거로 나체 횡단하며, Rewilding Britain과 MIND를 위한 기금 모금에도 성공했다.

이 책은 형식적인 채집 안내서라기보다는, 야생 식재료를 즐기는 모험에 영감을 주는 이야기와 작은 팁들을 담고 있다.

주의: 이 책에는 자연 속에서 비성적 목적의 나체 이미지가 일부 포함되어 있으며, 이는 자기 몸에 대한 긍정과 자연과의 연결감을 일깨우기 위해 사용되었다.


그의 살색 몸 관전기는 분명 당혹스러웠지만, 약 1년의 시간동안 콜과 이야기 하면서 내 안의 어떠한 편견? 고정관념들은 많이 느슨해졌다. (깨졌다고 까지 할 수는 없다... 대한의 딸로 산 40년이 결코 짧진 않다)


성경의 창세기에 보면 아담과 하와(혹은 이브라고도 부른다)의 이야기가 나온다. 처음엔 둘 다 아무렇지도 않게 알몸으로 살았다고 한다. 그게 자연이었고, 그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하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베어 문 그 순간, 세상은 달라졌다. 몸이라는 게 갑자기 ‘의식되는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하와는 나뭇잎으로 자기 몸을 가렸다. 그때 하나님이 “누가 네가 벗었다고 하더냐?”라고 묻는 장면이 있다.

그 전에는 그냥 나였던 몸이, 그때부터는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의 중심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아주 긴 시간이 흐른 지금 — 우리는 옷을 고르는 게 아니라, 옷에 맞는 몸을 만든다. 작으면 옷을 바꾸는 게 아니라, 내 몸을 줄인다. 44, 55 사이즈. 그 조그만 틀 안에 스스로를 끼워 넣으며 살아간다. 언젠가부터 알몸은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니라 ‘해명해야 하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래서였을까. 콜이 갈색 눈썹을 살짝 찡긋 거리며 몸에 대해 이야기 하는 진지한 모습을 보면서도, 분명 동의하면서도, 내 오갈 데 없는 눈은 쉴새 없이 좌로 우로 위로 (안 아래로) 자꾸만 흔들렸다. 옷을 벗고 있는 그는 매우 자연스러웠고, 옷을 입은 우리들이 외려 부자연스러웠던 경험. 흡사 오래 전 내가 아일랜드의 "The earth song camp"를 참여했을때, 게르식 Naked Sauna에 모두가 알몸으로 앉아 땀을 뻘뻘 흘리며 합창을 하는 광경을 보면서, 기어코 그 얄량한 비키니를 입고 들어가 순수의 살들 속에서, 땀들과 노랫가락과 목소리들 속에서 나 홀로 끊임없이 접히는 뱃살따위를 걱정하고 고민했던 그 경험.

나는 오늘 그를 보며 내 안의 오랜 부끄러움의 역사를, 조선 처녀 40년의 굳은 살을 들여다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히유.


아직도 얼떨떨한 채 자리를 정리하는 나에게 콜이 다가와 말했다.


"오늘 와줘서 고마워 시호, 언젠가 우리와 함께 Naked Foraging에 참여하지 않을래?, 꼭 옷을 다 벗을 필요는 없어. 옷을 입고 채집하는 사람들도 많아."


어쩐일인지 내 예상보다 조금 더 앞서 나는 대답 하고 있었다.


"응, 언젠가는 꼭.

진짜야, 어쩌면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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