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가던 연재를 잠시 멈추며
새삼스럽긴 합니다. 브런치 작가로 처음 선정되고 얼마나 기뻤던지 선정 메일을 캡춰해 사방에 올리고, 지인들에게도 브런치 페이지 링크를 보내며 설레어했던 기억이 불과 1년 남짓 전인데.
이렇게 휴재를 결정하게 된 것이 부끄럽고 민망합니다.
아마 계속 읽어보신 분들은 눈치채셨겠지만 어느 시점부터 매주 월요일 따박따박 쓰여지던 저의 이야기가 어느 때는 화요일 늦게나 올라오고, 어떤 때는 한 주를 늦게 올라오기도 했으니까요. 그것은 저의 게으름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실은 제가 더이상 영국에 살고 있지 않고- 논문을 내자마자 한국에 돌아온 때문이 큰 것 같습니다.
브런치에 나누려 메모해 둔 이야기들은 분명 많은데, 한국의 삶이라는 것이- 랭커스터를 떠나기 전 부터 마음의 준비를 했음에도- 계속해서 몰아치는 새로운 관계들과 사건, 그 동안 미뤄두었던 할 일 같은 것들로 빼곡해져 버리더라고요. 생각보다 너무나 빠르게 영국의 삶은 '지난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서울의 삶으로 회귀하는 것이 너무 두려운 나머지 미봉책으로 생각한 것은 강원도 고성이라는 곳에 한 달을 사는 것이었어요. 고성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아트케이션]이라는 청년예술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9월에 지원했는데, 사실 되면 좋고 안되도 좋고의 느낌이었거든요. 합격할 경우, 논문을 내자마자 한국을 들어와야 해서 짐을 싸는 시간이 너무 적었죠.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서울에 이틀 짐만 풀고 바로 고성으로 갔어야 하고요. 아니 그런데 이게 덜컥 되어버린겁니다. 그래서 생각보다 빠르게 모든게 진행되었어요. 영국에서 서울로 부치려던 짐들은 모두 고성으로 배달(?) 시켰습니다. 3주가 걸려 오더군요.
복잡하고 인연이 많은 서울을 찍먹만 하고 고성에서 한동안 지내면 그간의 영국 생활 정리도, 마음의 안정도, 브런치도 다 원활히 진행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 참으로 순진한 생각이었습니다.
주관처가 있는 프로그램인데 분명 과업이 없을 리가 없지요... 그리고 42일간 새로 만난 8명 + 마을 주민 분들과의 관계에도 신남이 붙어 저는 아예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인연들, 새로운 작업을 시작해 버린 겁니다.
고성은 우리나라 최북단 이잖아요. 삼엄한 경계, 가끔씩 들리는 포 사격 소리, 군인들의 불시 검문 (거동수상자 발생시) 등 우리가 아직은 분단국가임을 몸으로 감각하게 하는 이 곳은 의외로 그 시간 외에는 그저 평화로운 마을이었습니다. 시간은 느리게 흐르고, 사람들은 농사일에 집중하고, 저는 무언가 해내야 한다는 생각에 혼자 바빴죠. 그래도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랭커스터에서 자연에 둘러싸여 지내던 그 습관, 그 공기 그대로 한국말 패치가 된 느낌이었으니까요. 물론 랭커스터보다는 훨씬 시골이긴 했어요. 명파리라는 작은 마을이었는데 마을 전체에 식당이 하나, 자그마한 슈퍼가 한개니... 많이 외지긴 했죠. 그래도 서울로의 삶으로 바로 돌아오지 않고 고성에서 완충(?)의 시간을 가진 건 너무 잘 한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여전한 별 들, 풀벌레 소리나 개울가, 그리고 제가 가장 사랑하는 바닷가가 집 앞에 늘 출렁대고 있었거든요! 천국과도 같았지요. 그리고 새로 만든 인연들도 너무 소중하고요. 헤어지는 마지막이 참 아플 정도로 고성 명파리에도 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켠엔 늘 이 연재가 있었어요. 연재 마감을 잘 못 지키는 것에 마음이 편치 않고, 벌써 가물가물 해 지는 영국 이야기를 다시 걷어 올려야 하는데 하는데... 그래서 오늘은 과감하게 참 송구하고 죄송한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전합니다.
잠깐의 쉬는 기간을 가지면서 마치 한 여름방의 꿈같이 저 멀리 놓고 있었던 영국 이야기를 다시 길어오려 해요. 11월이 그래서 저에게는 정리와 회귀, 자리 찾기의 한 달이 될 것 같습니다. 저의 좌충우돌 영국 이야기를 기다려 주시고 읽어주시는 분들께 늘 너무 감사한 마음이에요. 그래서 더더욱 허투로 아무 이야기나 주워섬기고 싶지 않은 것 같습니다. 조금 더 맨들맨들하고 단단하게 만들어진 글을 가져오고 싶어요.
어떨땐 아, 1권으로 끝낼 걸 2권으로 넘어가는 건 내 욕심이었나 하는 생각도 합니다.
열 다섯 꼭지만 해도 거진 4개월인데 나름은 열심히, 꾸준히 밀리지 않고 한게 아닌가... 하고요. 하지만 이렇게 글로 계속해서 남기지 않았다면 분명 저의 영국 생활은 그냥 핸드폰 구석에 사진 몇 장으로만 남게 되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이렇게 글을 계속 옮기게 되는 힘은 가끔씩 좋아요도 눌러주시고, 답글로 응원도 해 주시는 독자 분들이 계셔서가 아닐까 하고 감히 생각해 봅니다. 누군가 나의 글을 사랑하고 기다려 준다는 그 기분이 참 들뜨고 행복했어요.
물론, 끝이 아닙니다! 저는 12월 둘 째 주에 다시 돌아 올거에요. 왜냐면 12월 10일이 저의 졸업식 이거든요! 다시 영국행 비행기를 타야 합니다. 아마 첫 글은 다시 영국으로 가는 심정부터 적게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 때까지 여러분, 모두 건강해 주세요. 행복해 주세요. 그리고 혹시나 여력이 되시고 마음이 내키신다며는...
기다려 주세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