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라는 무지개

by Siho

"Siho. 나 우울해."


평화로운 수요일 오후, 우리 과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50살) 동기, Cole 이 덜컥 메세지를 보내왔다.

언제나 호쾌하게 웃으며 긍정에너지를 뿜어내는, 내가 늘 의지하기도 하는 친구였기에 적잖이 놀라 빠르게 답을 했다. "무슨 일이야?? 나 걱정되려고 해"


"나... ADHD 진단을 방금 받았어."

아. 그런 일이었구나. 평소에도 스스로 그런 것 같다고 하더니 아예 진단이 나왔는가보다. 오늘따라 룸메이트들도 ADHD진단을 받았다는 이야기들을 하던데. 검사 시즌과 결과 통보가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지나?


"그랬구나, 내 몇 몇 룸메들도 진단을 받았다고 하더라"


"내 생각엔, 신경다양성(Neurodivergent)을 가진 사람들은 서로 끌리는 것 같아. 그래서 꼭 뭔가 진단명을 하나씩은 갖고 있는 듯 보여. 이런 지식이 50년 전에만 있었어도 우리 부모님이 나를 키우면서 덜 힘드셨을 것 같은데..."


Cole 은 전에 없이 우울해 했다. 자신이 그런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보다도, 자신을 키우는데에 너무 많은 힘을 들였던 - 왜 Cole이 평생을 남들과 다른 삶과 선택을 일삼아 부모의 속을 썩였는지 이해할 수 없는 채- 작년에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회한이 큰 듯 했다. 섣부른 위로를 하기엔 내가 ADHD에 대해 크게 아는 바가 없었다. 어딘가에서 읽은 구절이 떠올랐다.


"콜. 내가 ADHD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책에서 그런 구절을 읽은 적이 있어. ADHD는 사랑과 관심이 너무 많은 사람들이래. 세상의 모든 것들, 모든 상황들에 다 관심이 있는거야. 그래서 이것도, 저것도 다 챙기느라 정신이 없는 거라고 하던데...?" 남들이 못 보는 걸 다 발견하는 거라고."

말하면서도 만족스럽지 못한, 서투른 대답이었다.


"그렇게 말해주다니 너무 고마워. 세상에 관심이 많다라... 맞는 것 같아. 나는 그런 사람이었지. 고마워 시호. 조금 기분이 나아졌어. 세상에 더 관심을 주러 나가봐야겠어. 또 이야기 해!"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니 다행이다.

ADHD라는 개념을 내가 처음 알게 된 것은 아마도 한국에서 학교 수업을 나갔을 때였을거다. "시호 선생님, 저기 저 노랑 리본 학생이랑, 저기 멜빵바지 입은, 뛰어다니는 친구랑, 저기 파마머리 학생 이렇게 셋은 ADHD 판정을 받았어요. 그래서 애들이 좀 어수선 할 수 있어요. 샘이 신경 조금 더 써주셔야 해요" 라는.

그 이야기를 담임선생님이 수업을 시작하기 5분 전에 해주시는 바람에 나는 그것이 뭔지 검색도 할 새가 없는 채로 수업을 진행했고, 그 에이비씨디 어쩌구를 가진 친구들이 어떤 성격인지는 몇 시간 내내 몸으로 (어렵사리) 깨우칠 수 밖에 없었다. 수업이 끝나고 난 뒤에는 진이 빠져서 굳이 그 진단명의 정의를 찾아볼 수도(필요도)없었다.


이렇듯 한국에서는 ADHD라는 진단이 다소 무겁고, 나쁘게 느껴졌다. 간혹 밈이나 소셜미디어에서 우스갯소리로 사용되는 것도 보았지만 그것이 적절한 인용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한가지 영국에서 조금 다르게 느낀 것은 아까 콜 도 이야기 했던 뉴로 다이버시티(neurodiversity) 라는 개념인데, 아직 한국사회에서는 많이 들어보지 못한 (나만 몰랐던 것일 수도?) '신경다양성'을 이들은 자연스레 언급하거나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고 있었다. 설문조사를 할 때나 공연을 예약하는 페이지에서 뉴로다이버시티에 관련한 진단이 나에게 있는지를 물어보는 항목들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신경다양성은 ADHD를 “결핍”이 아닌, “다른 뇌의 방식”으로 보자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내가 영국에서 만난 장애에 대한 인식이 '결핍' 혹은 '부족함', '보호의 대상' 혹은 '동정의 대상'이 아닌 그저 각자가 다르게 가지고 있는 유니크한 겉모습에 지나지 않듯, ADHD도 그저 조금 다르게 작용하는 뇌의 행동일 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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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비건 카페에 갔다가 계산대 앞에서 판매중인 형형색색의 뱃지들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 중에서도 이 뱃지는 쇼킹, 그 자체였다. ADHD가 마치 다양한 능력을 가진 어벤저스의 한 명 처럼 그려지다니. 전혀 새로운 시선과 해석이 아닌가? 아니 그 보다도 이 단어가 양지로 나올 수 있는 단어였던가? 내가 ADHD 진단을 받은 사람이라면 나는 한국에서 저 뱃지를 달고 다닐 수 있었을까?


'음. 역시 비건 카페라 열린 사고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운영자의 취향이 반영된 거겠지' 라고 생각한 나는

며칠 후 들린 사무용품 점의 카운터에서는 이런 것을 또 한번 마주하고는

아, 이건 그냥 이들의 일상이구나. 새삼스러울 것도 없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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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왼쪽 보라색부터 하나씩 설명을 붙여보자면

- Fibro'meow'gia > Fibromyalgia(섬유근육통)이라는 단어에 미유- 라는 고양이 울음소리를 합쳐 만든 말장난

- Irritable owl syndrom > 원래는 Irritable Bowel Syndrom (과민성 대장 증후군) 인데 과민한 부엉이 증후군으로 코믹하게 표현

- Anxiety >불안증

- Sealiac > 원래는 Coeliac (셀리악병, 글루텐 불내증) 인 단어를 Seal(물개)와 합성

- Attention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ADHD)


다소 억지스러운 것도 있고 이 정도까지 희화화 해도 되는 병인가... 싶은 생각도 개인적으로는 들지만 어쨌든 중요한 것은, 누군가는 이 뱃지들을 살 것이고 이 진단을 받은 이에게 선물하며 함께 쿡쿡 하며 웃을 수도 있고, 혹은 자신이 사서 가방에 붙이고 다니며 사람들이 물어볼 때마다 "응, 내가 이거야" 라고 스스럼 없이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영국엔 있다는 거다.


*조금은 곁길로 샌 이야기-

나는 글루텐 불내증까진 아니지만 건강을 위해 글루텐 Free 식을 하려고 애쓰는 편인데 한국에서는 Gluten free빵을 찾는것이 좀처럼 쉽지 않았다. 모임에서 다같이 밥을 먹으러 갈 때도 글루텐 프리는 어쩌면 비건보다도 더 어려운 장소선택에 죄스러워야만 했다. 피자, 스파게티, 빵, 칼국수, 냉면, 하다못해 된장국을 만드는 된장에 조차 밀가루가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글루텐프리는 정말 유난하면서도 지극히 까탈스러운 취향으로 취급될 따름이었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대부분의 행사에 Gluten Free 빵이 놓여있었고, 이탈리아 음식점에도 Gluten Free 옵션이 늘 존재했다. 섭식제한을 '당연한 취향'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 늘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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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플 ADHD 티셔츠. 뭐랄까 이쯤되면 그냥 아이덴티티?

이후에도 Cole 이외에 몇 몇 친구들이 자신이 ADHD라며 에이밍아웃을 해 왔는데,

나는 그 때마다 미리 그득히 사 둔 이 뱃지를 그들에게 하나 씩 선물 했다.

얘들아, 너희는 무지개를 가지고 있는 거야 - 사랑이 많은 사람들이야 - 라며.


그러면 친구들은 나의 일장연설에 한동안 감동하다가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나에게 말한다.


"시호, 생각해보니까 너도 ADHD 아니야? 왜 아닌 척해?"



아냐 얘들아. 아직 나는 그 경지까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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