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은 되었지만 출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태아는 콩알만 한데 자궁 안에는 그 5~6배는 되는 거대한 피가 있었다. 1번의 유산 경험이 있었기에 가급적 무리하지 않고 안정을 취했지만 피는 도통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은 내게 최후통첩을 하셨다. 회사를 그만두라고. 회사와 아기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15년을 해온 일. 일은 곧 나고 내가 곧 일인데.... 회사를 그만두는 건 내게 엄청난 고통을 의미했다. 일을 그만두면 재취업은 어떻게 될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러나 내겐 시간이 별로 없었다. 이번에도 애기를 보낸다면 언제 또 임신이 될지.... 임신이 되어도 계속 잘 유지할 수 있을지... 확률은 미미했다. 그래서 결국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다. 다행히 회사에서는 육아휴직을 언급하며 좋게 이야기를 해줬지만 이 계통에서 몇 년의 공백은 사라짐을 의미했기에.... (이미 몇몇 클라이언트들은 이제 쟤는 끝났구나.. 하는 분위기다)
암튼 회사까지 쉬는 무리수 끝에 12주 만에 피는 다 사라졌다. 이제 아이는 안정권에 들어섰고 잘 키우기만 하면 되는데 또 다른 변수가 생겼다. 4개월 때 다운증후군 검사를 했는데 다운증후군 수치가 너무 높은 거다. 눈물이 왈칵 났다. 그러지는 않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낳았는데 애가 다운증후군이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몇십 년 만에 처음으로 하나님한테 기도를 했다. 제발 아이가 정상이게 해 달라고... 그리고 긴 주사로 배를 찌르는, 정밀검사를 하기로 했다. 살다 살다 그렇게 긴 주사는 처음 봤다. 정말 거짓말 안 하고 주삿바늘이 30cm는 되는 것 같다. 게다가 가격은 무슨 주사 1번 맞는데 100만 원이다. 아프긴 어찌나 또 아프던지... (엉덩이 주사 이런 건 진짜 비교도 안됨)
그 결과를 기다리는 1주일이 정말 너무나도 길었다. 기도가 통했는지 정상이란다. 휴~
그 이후는 별다른 일없이 남들처럼 수영을 하면서 보냈다. 8개월까지 수영을 했는데 노산임을 또 자각하지 못하고 9개월째 이사를 강행했다. 만삭 임산부에게 이사란 보통일이 아님을 뒤늦게 깨달으며 이사 후 9개월, 10개월 때는 발이 퉁퉁 부어서 거의 걷지도 못하고 눕지도 못하는(배가 너무 커져서 누워도 눕는 게 아님. 그냥 고통만 있음) 상태로 두 달을 버티다가 41주를 꽉 채우고도 나오지 않으려는 아들 녀석 때문에 유도분만을 했다.
p.s. 입덧
입덧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지만, 가장 알기 쉽게 설명드리면
술을 무한대로 먹고 나서 그다음 날 초주검 상태. 즉 밥도 못 먹고 물도 못 먹는 상태가 매일매일 계속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다행히 저는 입덧이 심하지 않았어요. 즉, 술을 적당히 마신 상태(?)였던 거죠. 하지만 임신기간 동안 남편이 해외출장이 잦았는데 (아내가 임신을 하자마자 해외출장을 줄곧 보내는 회사라니... 딱히 좋은 회사는 아니었음. 그래서 현재는 퇴사) 뭔가 서러움이 북받치면 구토하곤 했어요. 입덧은 정신적인 것과도 연관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음. 따라서 임신기간엔 무조건 잘해주는 게 답!!!! 왜 임신 때 서러우면 평생 간다는 건지 알게 된 시간이었음. 입덧과 출산을 겪고 나면 남편이 꼴도보기 싫다고 하니까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