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일 러닝 조끼에 관한 고찰
트레일 러닝 조끼는 뛸 때 흔들리지 않아야 하니까, XS/S 사이즈를 추천해 드려요!
내 키와 몸무게, 그리고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챗GPT의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을 찰떡같이 믿었다.
배송이 오고 테스트를 위해 조끼를 착용했더니
5분도 안 돼서 숨이 막히고 어지러운 느낌까지 들었다.
챗GPT는 내가 웨이트트레이닝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열심히 하는 줄은 몰랐나 보다.
이때 깨달았다.
트레일 러닝 조끼가 생각보다 까다로운 장비라는 것을.
트레일 러닝 조끼가 어려운 건
뛸 때 크게 흔들리지 않아야 함과 동시에,
큰 숨을 쉴 때 불편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오르막을 오르며 심박수가 높게 올라갈 때는
호흡을 편하게 할 수 있게 해줘야 하고,
내리막에서는 조끼가 흔들리지 않아야
러닝에만 집중할 수 있다.
만약 너무 흔들리면 조끼 앞의 물통이나
주머니에 넣은 핸드폰이
나의 갈비뼈를 마구 강타할 수 있다.
(갈비뼈에 금이 간 적이 있는 엄마는
아무래도 그 부분이 예민하기 때문인지
트레일 러닝 조끼를 착용하지 않으신다)
키와 몸무게만으로는
사이즈를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입어보고 사는 게 물론 가장 좋다.
하지만 오프라인 매장에도 모든 사이즈가
항상 골고루 구비되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무턱대고 찾아가 봤자 실패하면 시간 낭비다.
트레일 러닝을 시작해 볼까 마음을 먹은 날,
가성비를 항상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는
평소 고양 스타필드에서 눈여겨본 데카트론에서
웬만한 걸 다 사야겠다 생각했다.
가벼운 러닝 양말부터
장거리 대비 발가락 양말,
소프트 플라스크, 모자,
그리고 트레일 조끼까지.
게다가 당시에는 내가 트레일 러닝을
얼마나 오래 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일단은 무조건 저렴하게 구비를 해두고 싶었다.
가서 직접 보고 고르면 좋았으련만
요즘 시간이 없는 관계로
온라인 쇼핑몰에서 사기로 했다.
사이즈에 대한 고민이 필요 없는 물품들은
간단하게 옵션을 골라 장바구니를 채워갔다.
문제는 트레일 러닝 조끼였다.
당시에는 조끼의 중요성이나 어떤 면을 고려해야 하는지 전혀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안일했던 나 자신)
키와 몸무게 정도의 정보를 가지고 챗GPT에게 조언을 얻었다.
결과는 대. 실. 패.
가만히 입고 있는 것도 힘든데 숨이 찬 운동을 이대로 하는 게 말이 돼?
아무리 흔들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지만,
이대로 달리면 호흡 곤란으로 쓰러질지도 모른다.
나는 결국 시착 5분 만에 조끼를 벗어던졌다.
** 만약 데카트론 매장에 가서 입어볼 예정이라면,
입자마자 "사이즈 맞네" 하고 장바구니에 넣지 말고
잠시 입은 상태로 매장 안을 돌아다니면서
불편한 점이 없는지 확인해 보는 걸 추천한다!! **
단순하게 사이즈를 교환할까 싶었지만,
한 치수 크게 산다고 맞을까? 싶은 마음과 더불어,
어쩌다 발생한 배송비/교환비 문제로 인해
일단은 조끼를 반품 처리했다.
다른 조끼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다양한 러닝 제품을 파는
국내의 저렴한 브랜드를 발견했다.
(브랜드명은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일단 2만 원대라서 꽤 저렴하니까
밑져야 본전 아닐까? 싶어서 일단 빠르게 주문했다.
그리고 더 알아보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얼른 나가서 연습해야 하니까!!
처음 두세 번 정도는 나름 만족하면서 다녔다.
프리 사이즈라서 여기저기 있는 끈을 당겨
내 몸에 고정을 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애초에 사이즈 옵션이 없기 때문에
작거나 클 걱정은 없었다.
나의 초반 트레일러닝이라 봐야
동네 뒷산을 5-8킬로 정도 달리는 게 전부였기 때문에 적당히 나쁘지 않았고
천천히 올라갔던 엄마와의 첫 북한산 나들이에도 함께 했다.
무엇보다 내가 아직 더 나은 것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응당 트레일 러닝 조끼는 이래야지, 하는 기대감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1. 세 번째 착용 이후 물통 입구를 조이는 끈이 끊어졌다.
(사진 상으로 안으로 동그랗게 보이는)
2. 땀이 꽤 나서 빨래망에 곱게 넣어 세탁기를 돌리고 나니 조끼에 쓰여있던 글씨가 떨어진다.
3. 무엇보다...
이제 조금씩 달리는 속도를 내기 시작하니,
물통의 조임이 확실히 되지 않아 조끼 안에서 물통이 출렁출렁...
내 갈비뼈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4. 빨리 뛰면 내 몸에 맞게 잡아매두었던 끈이 풀려내려 와서 손으로 끈을 잡고 뛸 수밖에 없었다.
슬슬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아 이거 진짜 안 되겠다.
또다시 고민이 시작되었다.
한 달 뒤에 있을 첫 트레일러닝 대회 전에는
나에게 딱 맞는 조끼를 사고 싶었다.
3박 4일을 고민한 끝에
SALOMON ADV SKIN (살로몬 어드밴스드 스킨) 5를 구매했다. (가성비를 따지던 나는 이제 없다.)
더 중요한 건 내 갈비뼈와 러닝의 효율이다.
트레일 러닝화의 대표주자에 호카 HOKA가 있다면
조끼의 대표주자는 살로몬이 아닐까 싶을 만큼
살로몬 트레일 조끼는 꽤 유명하다.
일단 그전에 거쳐갔던 두 조끼와
아주 크게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앞 조임이 버클이 아니라 고무줄 형태로 되어 있다는 거다.
버클형은 한 번 조이면 그 너비가 딱 정해져서
러닝 중간에 세밀하게 조정하기가 힘들다.
반면 고무줄 형태는 일단 내 호흡이 커지면
(당연하게도) 고무줄이기 때문에 잘 늘어나기도 하고,
내가 산 살로몬 조끼는 러닝 중간에도
너비를 손쉽게 조절할 수 있게 되어있었다.
살로몬 조끼는 다른 가성비 브랜드에선 별도 구매인
하이드레이션 물통도 포함되어 함께 오는데
물통 주머니에는 물통 입구를
꽉 잡아줄 수 있는 끈도 있어서
속도를 내어 달려도 물통이 주머니 안으로 흘러내려가지 않는다.
(소중한 갈비뼈를 보호합시다)
그 외 기타 등등...
배번표를 쉽게 달 수 있는 고리가 조끼 아래에 있다던지
포켓의 구분이 세분화되어 있고
특히 달리는 중간에 손에 쉽게 닿는 허리 주머니가 대회 중에 아주 유용했다던지...
까지는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이미 위에 말한 이유만으로
살로몬 조끼를 구입한 것에 백 프로 천 프로 만족하고 있다.
역시 검증된 브랜드에는 이유가 있다.
이렇게 당연히 좋은 제품에 대한 구매를
오랫동안 고민했던 단 한 가지 이유는 역시 금액대다.
데카트론 조끼: 6만 원대
가성비 국내브랜드: 2만 원대
살로몬 조끼: 약 20만 원
하지만 내가 겪어본 바로는 트레일 러닝 조끼는 신발만큼 중요하고,
가성비보다는 가심비가 훨씬 중요하다.
조임 방식: 버클보다는 고무줄 형태가 호흡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
물통 고정: 속도를 내도 물통이 흘러내리지 않는 고정 장치 필수
내구성: 세탁과 마찰에 견딜 수 있는 소재와 봉제 품질
이걸 샀다 저걸 봤다...
몇 주 동안 조끼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과거의 나에게 한마디 해주고 싶다.
"아 그냥 살로몬 조끼 당장 사고 남은 시간에 뛰러 나가!"
시간은 돈보다 소중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