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나에게 북유럽 - 오슬로
오는 길에 폭우를 만났다. 차창으로 부딪치는 빗줄기 뒤로 잠시 태양빛 스치며 다시 빗방울이다. 그 빛도 잠시 다시 먹구름으로 노르웨이의 지역마다 색다른 모습의 하늘을 보여주고 있다.
들판의 연두는 말한다. 연두를 지키는 것은 하얗고 붉게 색칠한 세모와 네모가 서로 의지하며 박공지붕 통나무집들이 지켜주는 거란다. 하늘과 피오르의 물색, 산과 들판의 푸름이 흐르는 곳. 쓱 스치며 달리는 버스 안에서의 자연과 나는 서로에게 풍경이 되어준다.
초원의 어린양 떼들이 그려주는 이야기 한 소절 대신 엮어내다 보면 내가 주인공 될 수 있을까 이 풍경들 소분해서 배낭에 담을 수 있다면 담아 가져가고 싶다. 빗길 뚫고 지나온 거리와 거리 뒤에 태양이 빛을 발하며 빗줄기 대신 내 얼굴을 적신다. 버리지 못하고 웅크린 내 삶이 이곳에서는 활짝 펼쳐지는 부채 꽃 같다.
빗방울에 맺힌 나뭇잎 구슬처럼 반짝이는 이 설렘과 들꽃들이 펼쳐진 곳에 내가 향하는 길은 무엇이며 또한 지향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자작나무와 가문비나무 숲이 숲을 향해 간다. 소설 『샤이닝』 의 주인공은 숲에서 길을 잃고 천사를 연상하는 순백의 존재를, 검은 양복을 입는 저승사자를, 그를 찾아 나선 부모님의 환영을 본다. 나도 주인공처럼 노르웨이 숲길에서 길을 잃어본다면 먼 곳의 엄마를 남편의 환영이라도 볼 수 있을까.
노르웨이는 90년간 스웨덴 지배를 받다 1905년 독립하였으며, 수도인 오슬로는 노벨평화상이 수상되는 도시다. 작곡가 그리그(솔베이지의 노래). 극작가 입센(인형의 집). 앞으로 갈 화가 뭉크(표현주의 화가). 지금 여기 조각가 비겔란(모노리트)의 조각공원이다.
자박자박 내리는 빗방울에 잔디의 싱싱함이 펼쳐지는 공원 들어선다. 삶과 죽음 사이 움츠리고 있는 조각상들이 일요일을 뚝뚝 끊어 내고 있다. 이곳은 프로그네르 공원으로 불리다 비겔란이 작품을 전시하면서 비겔란조각공원이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바쁜 사람은 우리 현지 가이드일 거다. 작품 보기도 전에 숨넘어가게 설명하고 지나가는 고객에게 배려 없는 설명은 늘 씁쓸하게 한다. 스스로 알아서 보고 터득하라는 듯 쓰윽 넘어가며 촉박하게 주는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빠른 걸음이 아닌 달리기 수준이다. 나의 노력은 약속시간을 위해 마지막 버스 탑승자가 되지만 항상 반쪽 감상이다. 완전 감상은 자유투어 혹은 그곳에 오래 머물러 있어야 보고 느끼고 알 수 있다고 가이드는 말하는 것 같다. 패키지 특성상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다고, 그래 이 또한 감사할 일이다.
비겔란과 그의 제자 작품들로 조성된 청동과 주철로 제작한 이들 조각상들은 맨몸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화사하게 웃어주는 장미꽃들 지나면 다리 양쪽 난간의 58개의 작품들 중 가장 유명하다는 ‘화가 난 꼬마’ 시나 타겐 동상은 한쪽에 숨어있어 눈의 띄지 않으니 잘 살펴야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만져서 왼쪽 손은 금빛이 되었다.
다리를 건너면 빗방울과 함께 쏟아지는 ‘거인들의 분수’ 6명의 거인들이 수반을 받쳐 들고 있다. 분수를 둘러쌓고 있는 생명나무 조각품들은 인간의 탄생부터 죽음을 표현한 조각품들이라는 설명이다. 비겔란이 말하고자 하는 인생이란 이처럼 탄생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무거운 짐을 져야 하는 인간의 숙명을 표현 하였겠지.
비겔란이 만든 최고의 걸작 품. 하나의 돌이란 뜻의 ‘모노리텐’ 은 3명의 조각가를 초대하여 화강암을 깎고 다듬어 완성까지 14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비겔란은 이 작품이 완성되기 직전 사망하였다 하니 안타깝다. 정상에 오르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과 희로애락을 표현한 121명의 남녀인간 군상 모노리텐 사진 찍기에도 촉박한 시간이다. 자세히 관찰하지 못하고 만져보지도 못한 채 ‘생명의 수레바퀴’ 앞에 섰다. 인간은 끝없이 태어나고 죽는다. 인생은 돌고 돌며 혼자 살 수 없으며 어울려 사는 것이라 비겔란은 말하는 것 같다.
감성적이거나 철학적이지 않아도 한 번쯤 우리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비겔란 조각공원을 나선다. 공원의 무료 개방과 관람객들의 열린 감상을 위해 작품에 대한 제목과 해설이 없다. 우리나라도 이런 거대한 조각 공원하나쯤 있었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을 접고 오슬로의 특산품인 갈색 치즈를 닮은 오슬로 시청사 간다. 여전히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바람은 여름날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
청사 앞 오슬로의 상징 백조상이 있는 분수대 옆 회랑을 돌아 1층 홀 초대형 프레스코화로 가득 메운 청사 안은 마치 미술관에 온듯하다. 일반인에게는 매달 1회 시민들의 결혼식 장소로만 개방된다는 청사는 노르웨이의 역사와 북유럽 신화, 바이킹 역사와 문화, 세계대전의 이야기가 벽화로 남겨져 있다.
2층 의회장 끝 ‘성장’ 그림은 성 할바드가 누명을 쓰고 상인에 쫓기던 임산부를 도와주다 상인들 이 쏜 화살에 숨진다. 상인들을 그를 맷돌에 묶어 바다에 던졌지만 다음날 시신이 수면으로 떠오른 기적이 일어났다고 한다.
뭉크의 방은 들어갈 수 없어 멀리서 작품 ‘생명’ 감상과 선명하지 않은 사진을 찍으며, 시청사 건립 축하 선물로 보내온 우리나라의 거북선을 이곳에서 보니 반가웠다. 작고 아담한 우리만의 독창성을 지닌 거북선이 가장 돋보인다. 주관적인 내 생각.
극작가 입센과 소설가 비에른손의 동상이 양쪽을 지키고 있는 국립극장 앞 지난다. 칼 요한 스 사거리 저 멀리 위쪽에 보이는 곳이 노르웨이 왕궁 아래쪽은 노벨수상자가 머물렀던 그랜드 호텔이며 지금부터 자유시간이고 약속시간에 이곳으로 모이라는 가이드 안내 끝. 어슬렁거리며 주말 열리지 않은 상점들과 노천카페 따라 젖은 돌길 걸어본다. 현지인도 관광객도 없이 우리뿐인 거리는 고요하다.
약속시간 전 우리 팀 6명만 남겨두고 떠나버린 현지 가이드의 친절함에 칼 요한스 거리에서 잠시 미아가 되었다.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것 아닐까. 노르웨이 숲에서 길 잃고 싶다는 내 생각이 여기에서 이렇게 거리를 헤매게 할 줄 그때는 미처 몰랐다.
자박거리는 발자국이 가이드의 운동화 끈을 잡아당겼는지 인원 점검도 없이 떠나고 없다. 몇 분 빨리 출발한 결과는 더 많은 시간을 요구한다는 걸 이미 오래전에 한번 겪었다. 스페인에서 출발 약속 시간 전 인원점검 없이 친구와 나를 두고 호텔을 떠나버린 가이드로 인해 가던 길 버스가 다시 돌아와야 했던 씁쓸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2~3분이 결국에 20~30분 소모된다는 걸 그냥 답답했다. 다시 한번 각인시켜 주는 듯 세상에서 가장 바쁜 사람 오늘의 현지 가이드다. 일행이 보이지 않는 거리에서 볼 수 없는 계절에 묶여버린, 거대한 상자 속에 갇혀버린, 갈 곳이 어딘지 모르는, 그 막막함을 낯선 곳에서 길 잃어 보면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