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해를 항해하는 크루즈 작은 침실 어둠에 묻혀 있었다. 움직임이 없는 움직임 속 또 다른 낯선 곳으로 향하는 여정 속에 핀란드는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까. 크루즈 하산 후 버스로 헬싱키까지 이동한다. 최초의 수도로 핀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답지 않게 투르쿠의 아침은 고요를 넘어 적막하다. 수세기에 걸친 화재로 핀란드의 오랜 역사가 담긴 문화유산이 사라졌고, 핀란드가 러시아 영토가 되면서 러시아와 가까운 헬싱키로 수도를 이전하여 스웨덴을 통해 입국하면 가장 편리하게 헬싱키로 갈 수 있는 도시가 되었다.
투르쿠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투르쿠 대성당을 차창 밖으로 스치고 간다. 미리 보는 헬싱키 풍경을 일본 영화 ‘카모메 식당’(갈매기 식당)을 버스 안 tv로 상영 중이다. 나는 몇 년 전 이미 보았으므로 창밖 풍경에 심취하였지만 영화 배경으로 나오는 항구와 하카니예미 재래시장 그리고 마리에코와 아딸라 북유럽의 인테리어를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알바 알토가 설계한 아카데미넨 서점 2층 카페 알토 또한 두 주인공 만난 장소이다. ‘카모메 식당’은 책으로도 출간되어 있다.
바이킹 라인 크루즈
투르쿠
투르쿠 대성당
스칸디나비아 3국과 아이슬란드. 핀란드를 합쳐 노르딕 국가인 핀란드는 12세기부터 스웨덴 십자군에, 120년간 덴마크에, 660년간 스웨덴에, 108년간 러시아의 지배를 받은 나라로 강대국에 새우등 터진 나라. 우리나라와 닮은 점이 많다.
러시아가 지배를 하기 시작하면서 민족주의가 싹트기 시작하였고, 민속학자 엘리아스 뢴로트가 핀란드 민족 설화 <칼레발라> 서사시를, 얀 시벨리우스가 <칼레발라>를 교향시로 만들어 발표한다. 또한 얀 시벨리우스는 조국의 독립에 대한 열망을 고유한 선율로 담아 <핀란디아>를 작곡한다. <핀란디아>는 핀란드 인들에게 저항의식 고취와 독립운동 및 애국심을 갖게 하였다.
노르웨이의 에드바르 그리그(솔베이지 노래), 체코의 안토닌 드보르자크 (유모네스크) 있다면 핀란드의 얀 시벨리우스(핀란디아)가 있는 국민영웅 얀 시벨리우스 공원이다.
파이프오르간
시벨리우스 얼굴
시벨리우스 근엄한 얼굴상에는 귀가 없다. 영감을 위해 구름이 조각되었다는 두상 뒤로 청명한 하늘이 그 옆 약 6년간의 제작기간을 걸친 금속 파이프 600개로 파이프오르간을 형상화한 작품을 돋보이게 한다. 구조물 아래로 들어가면 파이프를 통해 하늘을 볼 수 있으며, 바람이 불면 기념 조형물에서 파이프 오르간의 선율이 흘러나온다고 하는데 오늘따라 맑은 날씨는 어쩌나. 파이프에 부딪힌 오묘한 파열음을 들을 수 없다는 아쉬움이다. 여행 내내 비바람 그렇게 소란스럽더니 정작 바람이 필요한 곳에서는 화창한 날씨다. 예측할 수 없는 것 또한 여행의 묘미겠지만.
현지 가이드는 설명이 끝난 후 ‘핀란디아’를 들려준다. 여행 오기 전 열심히 들었던 곡을 작곡가의 공원에서 들으니 음의 빛깔조차 새롭고 웅장하게 들린다. 시벨리우스가 살았던 시대와 음악으로 독립을 표현한 그 마음이 어떠했을까. 시벨리우스가 태어난 하멘린나의 생가가 궁금해졌다.
오늘도 여전히 마지막 버스 탑승자가 된다. 왜 보고 싶은 게 많고 꼭 깊이보고자 하는지 대충 넘어가도 될 것을 다 보고 가야 된다는 강박관념은 꼭 여행지에서만 발동을 한다. 그렇다고 다 보는 것도 아니다. 공원 인근의 나무, 잔디, 오솔길, 호수 등과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를 연출한다는 전체를 보지 못하였으니 나는 무엇을 본 것인가.
칼 구스타프 만헤르헤임 기마상
헬싱키 중앙역
빨간 지붕 - 국립극장
버스 타고 지나면서 차창 밖으로 헬싱키 중앙역과 창문으로 하이파이브, 트램은 손 흔들어 주고 시내 한가운데 우뚝 서있는 칼 구스타프 만 헤르헤임 늠름하게 서있는 기마상에게는 말없이 말하며 쓱 지나간다.
황제의 대관식과 모스크바 총주교의 장례식을 치르기도 했다는 붉은 벽돌 위에 지붕은 양파모양 돔(꾸뽈라), 첨탑은 금으로 덮여 있는 우스펜스키 대성당은 러시아정교회다. 러시아를 상징하기 위한 양파모양 돔은 러시아가 지배했던 나라에는 꼭 이런 건축물이 있다. 내부 제단 벽에는 천연물감으로 그려진 그리스도와 십이 사도의 벽화가 있는데 특히 그리스도의 모습이 돋보여 제단화의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우스펜스키 대성당
우스펜스키 대성당 내부
핀란드 루터교의 총본산이 헬싱키 대성당은 흰색 기둥에 파란 하늘과 구름 사이로 치솟은 민트 색 중앙 돔에 4개의 작은 돔으로 둘러 싸여 아래서 바라보니 웅장하다. 현지인과 관광객이 어울려 성당 오르는 계단에 앉아 햇볕과 노닐고 있는 모습이 그림 같다. 나도 여기에 앉아 원로원 광장 바라보며 낯선 사람이 되어보고 싶다.
원로원 광장 한가운데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의 동상 앞 여성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활짝 열린 배낭에는 색색의 펜들이 나란히 꽂혀 있다. 화가일까 작가일까 여행자일까 궁금증과 여유로워 보이는 모습이 자꾸 내 발목을 잡아당긴다.
헬싱키의 재래시장인 마켓광장(카우파토리) 앞에 붉은색 화강암으로 만든 오벨리스크 형태의 탑은 러시아황제 니콜라스 1세의 황후 알렉산드라가 1833년에 방문한 기념으로 세운 <차리나의 돌>이다. 과일과 음식과 기념품들이 손짓한다. 기념품으로 핀란드 국기가 새겨진 순록 인형 하나 에코백에 담아 본다.
헬싱키 대성당
알렉산드르 2세의 동상
<차리나의 돌>
자일리톨과 토베 얀손의 첫 동화 『무민 가족과 대홍수』 로 유명한 전설 속의 요정 무민의 나라, 19만 개의 호수와 1000여 개의 사우나와 산타클로스의 나라. 핀란드를 마지막으로 8일간의 여행을 머릿속으로 스케치하며 헬싱키 공항 간다.
나에게 북유럽은 읽다만 역사책이자 보다만 화보집이었지만 사진첩에 오래 간직하고 싶은 자연이기도 하였고 잃어버린 나를 찾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