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재•7
당신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비를 보고서야 깨달알았습니다.
우리들의 망각이 당신들을 얼마나 슬프게 하는지 다 알 수는 없지만, 아픈 역사가 멈춘 시간 속에는 당신들이 있다는 것을 이곳에 와서야 알았습니다.
바다는 더없이 푸르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투명한데 당신들의 모든 고통을 등 뒤로 보내고 있는 흉물스러운 건축물 앞에 당신들의 영혼을 달래는 ‘118인 광부 추모비’가 왜 이리도 가슴을 아리게 하는지요.
뜨거운 불길이 무서워 차가운 바닷속으로 뛰어든 암담함과 절망에 몸부림쳤을 당신들의 절규가 들리는 듯 마음이 무겁습니다.
구조되기를 살아남기를 위해 생의 마지막 1초까지 바다와 사투를 벌였을 간절함을 외면해 버린 일제의 잔혹성에 푸른 멍 지울 수 없어 안타까울 뿐입니다.
해몰 된 당신들의 고통이 우리의 아픈 역사이며, 당신들의 희생을 덮어버리는 사유지란 명목으로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지 못하는 어처구니에 면목 없음은 누구의 몫일까요. 당신들은 묻고 있겠지만 답이 없어 고개 숙일뿐입니다.
당신들의 희생과 함께 근현대사의 비극이 남아있는 이곳이 조용히 사라질 것 같은, 기억들이 지워질 것 같은, 옥매산은 지금도 먼지 날리며 채석작업 중 자꾸자꾸 깎여지고 있어 산이 낮아지고 있습니다. 먼 곳에서 지켜보는 당신들의 마음 헤아려 줄 수 없어 슬프군요.
당신들의 영혼이 매달린 동그라미 118개 사이로 하루해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관심이 이곳을 지킬 수 있는 버팀목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광산 경재와 강제 노동의 현장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당신들의 명복을 빌며 잊지 않겠습니다.
옥매산 광산노동자 해몰 사건
해남의 옥매산은 조선시대부터 옥으로 이름났으며, 1910년부터 일본인들이 옥매산 광산을 경영하기 시작했다. 옥매산에서 옥돌을 비롯한 명반석, 납석 등의 풍부한 광물자원이 매장됐었기 때문 일제강점기 장식용 석재와 전투기 등 군수품 제작에 꼭 필요했던 일제는 인근 마을 주민들을 강제 동원해 명반석을 채굴하였는데 명반석 14톤에서 1톤의 특수 알루미늄이 나왔으며 알루미늄이 가벼워 전쟁 물자와 무기도 만들고 비행기 동체도 만들었다고 한다.
1945년 4월, 두 차례에 거쳐 약 220여 명의 옥매산 광산 노동자들이 제주도로 이송. 강제징용이었다. 작업장에서 일하다 영문도 모른 채 강제로 선창으로 끌려갔다. 제주도에 진지 동굴, 해안 동굴 구축함을 위해 숙련된 옥매산 광산 노동자들의 발파 기술과 굴착 경험이 필요하였다. 12시간의 고된 노동에 돌아온 것은 주먹밥 하나에 소금뿐. 숙소는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었고 옥매산 노동자들은 고향으로 갈 수 있게 되었으며, 해방의 혼란 속에서 어렵사리 배를 구하였고, 8월 20일 새벽 1시경 조선인 222명과 일본인 관리자 3명을 태운 35톤급 목선은 해남으로 출발하였다. 추자도와 보길도의 중간 지점에 이르던 아침 8시경 기관실에서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 불은 진화되지 못하였고 4시간 동안 표류하던 중 노동자들은 침몰하는 배를 피해 바다로 뛰어들어야만 하였다. 화재 8시간 정도가 지날 무렵 목포에서 진해로 가던 군함이 이들을 발견하고 구조하기 시작하였으나 구조된 일본인 한 명이 대부분이 조선인이라 하자 지금껏 구조한 사람들만을 태운 채 떠나 버렸다. 전원 구조가 아니었으며, 173명 구조된 사람들도 청산도에 내려 주고 가 버렸다. 그렇게 구조되지 못한 118명은 고향을 밟지 못한 채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참고: 해남디지털문화대전
옥매 광산은 옥매산 방파제 동쪽에 일제 강점기 때 지어진 명반석 저장 창고로 지어진 건물이다. 조선대학교 사유물로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지 못한 채 해안가에 콘크리트로 지어진 터널형태의 거대한 저장 창고가 아직 그 원형을 유지한 채 흉물스럽게 남아 있다. 천정 위에는 사각의 구멍이 있는데 이곳으로 명반석을 쏟아 내린 것 같다. 관리가 되지 않고 방치된 상태라 창고 안에는 소파와 탁자 목재들과 파란 고무 통이 널브러져 있다.
옥매산에서 케이블카 식으로 운반하여 명반석 저장창고에 모안 둔 뒤 일본이 필요할 때 선착장에서 배로 이송하였는지 방파제가 길다. 지금은 바다에서 올라온 어망과 부포들이 쌓여있어 을씨년스럽다. 사회적인 관심이 부족으로 추모조형물도 지역주민, 유족회와 사회단체 등이 성금을 모아 2017년. 5.5m의 높이에 배 모양으로 광복 72년 만에 조성되었다고 한다.
돌아오는 길 쓸쓸함이 먼지와 함께 날리고 있다. 해발 174m 옥매산 정상에 움푹 파인 협곡은 지금도 명반석은 아니지만 채석작업이 한창이라 소음과 먼지뿐이다. 채굴 작업으로 낮아졌다는 옥매산은 채석으로 자꾸자꾸 낮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