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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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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재 May 27. 2019

언제 행복할 예정이신가요?

--2. 목포, 1박 2일

 이른 아침 어제 다하지 못했던 골목투어를 한다. 구부러진 길 따라 걷는 내 마음만은 곧게 펴며 어슬렁거린다. 그러다 보면 막 떠오르는 태양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글귀들 우정은 깡통과 같은 거래 찌그러질 순 있어도 깨질 순 없는 거래 친구야 사랑해와 어우러진 깔끄막 텃밭. 푸른 마늘잎 손짓하고 푸성귀들과 강아지들 골목을 지키는, 아직 손 닿지 않은 아침을 만날 수 있다. 그렇게 달성공원 벚꽃 휘늘어진 계단 총총 내려오면 ‘목원 감성 벽화 안내도’가 묻는다. ‘언제 행복할 예정이신가요.’ ‘여기서 지금’


  조식 후 ‘청춘’ 게스트 지현 아가씨의 추천으로 호주에서 오신 노부부와 함께 목포 시티투어를 위해 목포 역으로 가는 길. 차범석 선생의 생가 앞을 지난다. 지현 아가씨 선생의 생가를 구입하려고 하였던 적은 있지만 생가인 줄 몰랐다며 놀란다. 목포 역 앞에서 문화해설사와 09:30분에 출발하는 5,000원의 하루를 임대한다.  

   


 조선인 마을, 일본인 마을, 유달산, 항구, 서울로 가는 다섯 갈래의 길. 오거리 초입 ‘동본원사’는 일본식 불교사원으로 현재는 오거리 문화센터로 활용하고 있지만 암울했던 시대에 민주화운동의 산실로 활용했던 역사적인 건물. 일본은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는 신성한 곳, 화살을 쏘아서 신성한 곳 화살이 떨어지는 곳에 절을 짓는다고 한다. 그래서 절 입구가 활 모양으로 되어있으며 이곳은 일제 때 사무라이가 돈을 바친 곳.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했던 곳이라 한다.      


 이순신 장군의 의인 전술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노적봉 바위 휘돌아 새천년 시민의 종 앞에 섰다. 돈 없고 힘없었던 목포. 2000년부터 건강, 행복 도시를 기원하며 세워진 시민종각  손바닥으로 세 번 치면서 소원을 빌어보라는 문화해설사 한마디에 서로 소원 빌기에 바쁘다. 


 목포의 특징은 굴뚝이 없다고 한다. 목포는 부산, 군산, 인천에 이어 4번째로 1897년 개항한 항구다. 일제는 개항과 동시 통해 수많은 것들을 쌔비해 갔다는 해설사의 설명. 돈이 없어 가난한 목포. 그래서 굴뚝이 없는 목포. 일제 수탈의 한 단면이다.   

   


 근대역사관 1관은 목포 일제 영사관이었다. 붉은 벽돌 사이사이 하얗게 박힌 욱일기 모양. 깃발의 뜻은 16개의 태양으로 아침에 뜨는 태양이 전 세계를 비추듯이 일본이 전 세계를 지배하겠다는 뜻이라 한다.  


 르네상스식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내부로 들어서 2층으로 오르면 일본인이 사용했을 물품들과 목화의 솜과 씨앗을 분리하는 기계 면화 수탈의 조면기가 있다. 목포는 1흑 (김) 3백 (쌀·소금·면화)으로 유명한데 그때 사용했던 조면기 벽난로 재봉틀 냉장고 인력거 등등 전시되어 있다.    

   

 역사관 계단 총총 내려오면 목포 평화의 소녀상 앞 견학 온 학생들의 웃음 소란하다. 근대 역사관 2 관가는 길 국도의 시작점이었던 ‘국도 1,2호선 기념비’와 바닥에 새겨진 ‘도로원표’ 이 신작로는 호남 곡창지대의 수탈을 목적으로 건설된 불편한 진실이 존재하고 있다.   

    

 토지 경영 부동산 담보 대부 등 사업으로 한국의 경제를 독점, 착취하기 위한 ‘동양척식 주식회사’ 일제의 한국 농민 수탈의 선봉이 된 곳. 근세 서양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로 일제 침략의 실증적 유적. 일제의 흔적을 간직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고 몇 겹의 철문 두둑한 금고가 있다. 조선인의 피와 땀과 재산을 빨대로 쏘옥 빨아버린 ‘동양척식 주식회사’였던 역사관을 뒤로하고


 한 수도승을 사모한 세 여인이 죽어 학이 됐고, 그 학이 떨어져 죽은 자리가 섬이 됐다는 전설의 삼학도.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앞 넓게 펼쳐진 중앙 공원은 이난영의 노래비 ‘목포의 눈물’ 만치나 서럽고 아름다운 수선화 꽃잔디 튤립 색의 향연이다. 그 사이로 유치원생들 줄줄이 사탕처럼 열 지어 간다. 튤립과 아이들로 환하다. 공원이란 액자에 담긴 꽃과 아이들 한 폭의 풍경화다.

 


 점심 후 오랜 기간에 걸쳐 풍화작용과 해식 작용을 받아 풍화혈로 만들어진 두 바위 나란히 삿갓을 쓰고 서 있는 갓바위 왔다. 데크 돌아 나오는 길 멀리 목포시 옥암동과 영암군 삼호읍 나불리 사이의 영산강 하구를 가로막은 둑이 보인다. 해설사의 설명 목포는 서해로부터 육지로 들어가는 길목. 즉 바다와 강물이 만나는 길 ‘목’하여 목포라고 불렀다고 한다.     


 시티투어 마지막 장소 해양유물전시관 제2전시실 ‘신안선’이다. 14세기에 난파된 신안선과 수많은 무역품 등을 소개하는 전시실. 오래전 친구와 슬로시티 증도를 여행한 적이 있다. 그때 신안 해저유물 발굴 기념비에서 바라보았던 방축리 도덕도 앞바다. 

 700여 년간 바닷속에 잠들어 있던 송·원대 도자기 등 23,024점의 유물이 한 어부가 우연히 발견하게 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는 유물 유적을 지금 보고 있다. 신안선은 길이 약 30m, 240톤 승선인원 200명으로 추정되는 원나라의 대형 무역선. 바다에 기울어진 쪽은 파손되어 있지만 무역선 인양한 모습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땅이 비좁아 바다를 매립하여 이룬 도시 목포. 사방이 물인 동시 물이 귀한 곳 목포. 시티투어의 종착지 목포 역에서 호주의 노부부와 헤어지고 근대화거리를 다시 걷는다. 특별 서비스라 하면서 해설사는 손혜원 의원 목포 문화재 거리 투기 사건의 전말을 설명한다. 근대 역사거리가 논란의 중심에 서면서 관광객이 급증한 기현상에 무척 반가운 기색이다. ‘갑자옥 모자 점’ 지나 ‘창성장’ 붉은 건물 뒤로하고 서산동 시화 골목을 가기 위해 택시를 탄다.     

 


 영화 1987의 배경이 된 연희네 슈퍼 뒤편 반공호는 태평양전쟁 말기 연합군의 공중 폭격을 피하기 위해 일제가 강제로 한국인을 동원하여 만든 것으로 태평양전쟁 관련 유적이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지만 혼자서 들어가기엔 조금 무서워 통과.       


 ‘고무줄 하나면 신났지’ 흑백사진 속 시화 골목 계단 오른다. 벽화와 시 그 안 삶의 애환이 담긴 주민들의 꿈으로 새긴 언어들.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처럼 꺼내고 꺼내어도 새롭게 또 다른 삶의 애환이 나올 것 같은 보리 마당 사람들. 비탈진 길 내려오다 잠깐 고개 들어 바라보는 목포 앞바다는 파랑이 파랑을 새기고 있다.      


희망 -   박하애  

   

아리랑 타령을하면서 놀았던그 시절이 있었지본인밖에 모르는남편 때문에 고생도 했지만좋은 세상에 다시 한번/  태어나면 어쩔까     


 목포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보리 마당 길 주민들의 글과 작가들의 작품과 악수하면서 걷는 길 또한 혼자다. 돌담 의지하고 동백꽃 휘늘어지게 핀 계단에 앉아 바람이 지나는 쪽으로 기울어 보는 생각들. 이 고요 속에서 한 사람이 지나간 다음 세계까지 풍경이 색체를 이룰 수 있는 곳. 연희네 슈퍼 앞 영화 속 연두색 추억의 택시 거기에 두고 1박 2일 목포 시간 여행의 종착지 목포 역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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