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12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재 Nov 12. 2019

도착하지 않은 곳으로의 동행

 마음이 탁구공처럼 알 수 없는 곳으로 튀었다가 다시 기진맥진해 제자리로 돌아오는 날입니다. <한우리 독서지도 봉사단> 샘들과 엠티 가는 날, 총무가 준비한 봄 빛깔 호박떡과 여름빛깔 쑥떡이 샘들의 설렘과 어우러져 웃음소리로 번지는 아침입니다. 가끔씩 얼굴 마주하는 혹은 오랜만에 불러보는 샘들의 이름이 기사의 부드러운 운전으로 미끄럽게 도심을 빠지나와 차장 밖 녹음으로 번집니다. 

     

<쁘띠프랑스> 입장료 만원에 임대한 몇 시간의 여유로 즐길 수 있는 한국 안 작은 프랑스 문화마을입니다. 먼저 생투앙 벼룩시장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벼룩시장 골동품들이 길 바닥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네요.      

바닥은 깊고 길 건너온 골동품들 품위를 유지하기엔 이미 버려진 거라 생각했는지 아무렇게나 너부러져 있습니다. 눈길 한번 받지 못한 채 넘어가는 하루해는 길고 아득하겠지만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의연함이 골동품의 품위겠지요. 고단하게 여행객들 잡아당기는 눈길 왠지 처연해 보입니다.


 유럽 숨결이 느껴지는 곳곳에서 샘들은 자유로운 영혼입니다. <쁘띠프랑스>에 불시착한 어린왕자를 만나 동심을 소환하여 추억을 그리는 샘들의 즐거운 모습 아름답습니다. 노란 금계국과 붉은 넝쿨 장미 풍경이 배경을 더 빛나게 하는 오솔길 따라 만난 하트 전망대와 쌍아 샘 일행의 웃음꽃 렌즈에 담아봅니다. 봉주르 산책길 따라 걷다보면 그 끝에서 청평호수가 막힌 가슴 뚫어주네요.   

   

언제나 잠깐 머문 자리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사진 찍다가 생텍쥐페리 박물관을 못보고 왔네요. "여기에 보이는 건 껍데기에 지나지 않아. 그것은 마음으로 보아야만 볼 수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라는 어린왕자의 말을 새깁니다. 그래 모든 사물들 사람의 마음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들 어린왕자가 말한 껍데기인데 그걸 아쉬워하다니, 오늘은 가슴으로 느끼고 다음에 다시 오라는 이 또한 내 생애 질서의 한 부분일 뿐이야. 우리 샘들 마음속 어린왕자를 다시 만나니 어떠하였을지……. 

    

 


  남이섬 ‘도선재’에서 차돌 우거지탕으로 몸과 마음 든든히 데워주고 가평나루로 갔습니다. 나미 나라 상상공화국 들어가는 뱃길 위로 짚 와이어 허공을 날고 있었습니다. 순간 이동 그 짜릿한 맛은 렌즈에만 담고 메타세쿼이아길 따라 각 봉사단 샘들은 여기저기 남이섬을 탐색하는 자유시간입니다. 

     

나 또한 이곳저곳 카메라 렌즈를 펼치고 사람들 보이지 않는 깊숙한 풍경 속으로 스며들어 악보를 그려냅니다. 오선지 없는 음표는 나무에도 걸리고 호수에도 앉고 연꽃 위에서 춤을 춥니다.    

 

강줄기 따라 걷는 산책길에서 청설모가 폴짝폴짝 어서 오라며 길을 막습니다. 작은 틈 사이로 다람쥐꼬리 흔들며 반기네요. 발맞춰 걷는 샘들의 표정이 초록과 조화를 이루는 옆길 핀 금계국보다 더 화사합니다. 연분홍 봉우리 연꽃 사이로 반영된 하늘구름 한 폭의 수체화입니다. 자작나무와 하얀 철길 따라 걷다 만난 수염 틸란드시아에 늘어진 그 아래 유니세프 나눔 열차가 지나가는 밤입니다.           


 독서 봉사, 재능 나눔, 아름다운 마음 모아 숙소 다알리아에 우리들은 모였습니다. 박선희 대표를 중심으로 각 봉사처마다 자기소개와 한마디씩 건네는 아이들과의 만남이 어우러져 여름밤이 익어갔습니다. 모두들 어쩜 그렇게 예쁜 마음만큼이나 겸손하게 아름다운 말도 잘하는지요.



  


김유정 문학길에서는 문화 해설사가 우리를 반겼습니다. 김유정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설명하고 ‘실레 이야기’길을 걸어봅니다. 「봄. 봄길」, 「동백꽃길」, 「산골나그네길」, 「만무방길」, 「금 따는 콩밭 길」 소설 제목 따라 길을 다 걸어보지는 못했지만 해설사의 진지하고 열정적인 설명에 우리는 잠시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봅니다.      


한낮의 햇볕 파닥거리며 정수리에 부풀어 올라 타고 있습니다. 밭두렁 풀 섶 헤치고 아니 소설 속 점순이가 천방지축 뛰어 다녔던 고샅 잠시 고요를 가로챈 바람이 지나갑니다. 그러나 익을 대로 익은 태양열에 시원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들은 <THE WAY> 카페에 모였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니 하얀 성에 초대되어 온 듯한 우아하게 실내장식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커피와 조각 케이크는 어쩌다 뜨거운 여름이 입 안 가득 번지다 시원하게 녹는 맛입니다. 누구나 편히 쉬었다 갈 수 있는 카페 창밖으로 생강나무 노란 꽃 휘늘어지게 피었다 지면 보라 감자꽃 밭두렁을 감싸 안 듯 야생화 지천으로 무리지어 유혹하는 자리에 앉아서 듣습니다. 전 김유정 문학촌장이셨던 전상국 강원대학교 명예 교수와 함께하는 김유정의 일대기와 작품론을 귀 기울여 듣습니다. 김유정의 작품이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는 것은 해학성과 향토성에다 덧붙인 속어와 방언으로 생동감 넘치는 표현이라 합니다. 그리고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들의 일상을 꾸밈없이 그려냈기 때문이란 말씀에 공감이 갔습니다.    

  

도착하지 않은 곳으로 언제나 아이들과 출발하는 봉사단 샘들의 아름다운 마음과 함께 한 시간 속에서 봉사 활동이란 내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엉겅퀴 듬성듬성 실레마을 휘감기며 김유정의 작품 속 인물들이 가시처럼 불쑥불쑥 찔러대는 여름의 계단을 밟고 들어선 내가 있습니다. <봄봄> 인물들은 나와 먼 여행 떠난 엄마의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전 11화 언제 행복할 예정이신가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