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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재 Oct 16. 2019

9. 사프란 여자

--사프란 볼루

  사프란 꽃처럼 아름다운 마을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차르쉬 광장에 들어선다. 터키 목욕탕 하암의 지붕들 커다란 그릇을 엎어놓듯, 붉은 모자를 덮어쓴 듯, 표고버섯 올려놓은 듯 아침 햇살을 이고 있다. 지역의 심벌마크 사프란 꽃 조각상 바라보다 사람의 손길 그 노고를 지우다 늘 설익은 나의 글쓰기를 생각한다. 빨간 실 1g의 언어를 만나기 위해 수만 송이의 나를 타닥타닥 숯불에 깊어져야 하고, 한 잔의 붉은 시를 피우기 위해 열기에서 구르고 구르며 죽어야 노랑의 목소리 들리는 샤프란 여자. 스페인 여행 때 먹었던 파에야 맛이 엉켜 풀리지 않고 내 눈에서 부서지는.

 

   차르쉬 광장을 뒤로 전통가옥 즐비한 미로 언덕길 오른다. 덜컹거리는 돌길과 목조 가옥들이 말을 걸어온다. 오스만 튀르크 시간의 담을 넘어 능소화 휘어져 머리카락처럼 흘러내린다. 그 옆 노란 자동차와 그 시대의 역사를 살다 간 사람들의 숨소리가 들려온다. 오래된 사람들 지나간다. 햇빛 몇 장 뜯어내며 깊어지는 골목따라 오스만 시대에 귀 기울이다 잠시 길 잃어도 좋을 시간. 로쿰 가게에서 산 열개의 무게가 역사의 숨은 이야기로 흐르는 달콤함 뒤 사프란 향기 그 쌉스레한. 내 안에서 길이 넘어지고 있다.           

 

사프란 여자*

      

눈물이 물들고 있다

햇볕 가득 뭉그러진 그녀

구근에 기대어 꽃대 거슬러 가는  

이 단단한 소요의 한낮     

그녀가 품은 붉은 꽃 실 한 가닥 뽑아

웃자란 생각들 노랗게 물들이다, 문득

구근의 감정이 궁금

목조 건물에 던진 질문은 답이 없다      

구름처럼 몰려왔던 목이 긴 골목만이

바람따라가는 길의 끝

누렇게 뜬 표정 내밀 수 없어  

땅속 깊이 숨어들고 싶었을 구근

비밀 한 꺼풀씩 벗기며 꽃대 올리다, 그만          

달빛 흐린 날 마주친

유혹의 손길 잠시, 물들어 깊은 밤

누런 생각들 버린다  여자가 우려 낸   

한 페이지의 꽃 실

색이 만개한 쓴맛 가득

눈물이 노란 그 여자. 사프란

   

*차르쉬 광장에 있는 사프란 꽃 조각상     

사프란 꽃 조각상




아마스라

   

         

수평선 끝 붙잡고 있는 햇볕과

성벽 난간에 매달려 있는 바람이

내 몸을 가로질러간 시간의 자국처럼

두 눈이 아렸어       

백사장을 벼리기 위해 날을 갈고 있던 파도

악마의 눈*으로 달려드는

왕국 잃은 리시마코스* 왕의 절규로 들렸지   

아마스라 성채  

토브샨 섬 검푸른 물결에 적셔지는

섬과 섬 잇는 갈매기 울음에

빛과 어둠의 경계를 이룬 왕의 이름에 붙이고

흥성했던 시절의 역사도 신화도 지웠어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운

우리의 연대기는

메르기트* 가시처럼 씹어 삼켰지     

수국 꽃 잔잔히 흘러내리는 회색 언덕

자박자박 키메레 석교 건너온 햇볕이

내 옆에 앉아 놀고 있는 부육리만

여름날의 한때         

 


*마케도니아 트라키아 터키 서쪽 지역 통치자로 로마 루쿨루스 군대에 정복당함

*터키 부적(나자르 본쥬)

*대구의 일종            

   


 


다시 흑해. 케메레 다리가 연결해주는 보즈 테페 두 개의 바위섬으로 이루어진 작은 항구마을 아마스라. 부육리만은 액자 속 수채화 한 폭 그대로이다. 달콤한 꿈에 젖은 파라솔 꾸벅꾸벅 졸고 있는 해변의 오후. 아주 아담하고 작은 아마스라 박물관 몇 개의 유적들 정원을 장식하고 있다.       

 유적의 잔해 돌무더기들 속만 헤매다 마주한 출렁이는 바다는 교향악이다. 아마라 성채 돌아 체슈미 지한 식당 앞 탐스럽게 피운 수국 한낮의 더위를 피해 그늘진 담벽 틈에 쉬고 있다. 사진 찍고자 달려드는 손길에 꽃들은 괴롭다는 듯 바동거리며 몸 사리고 강렬한 햇빛은 흑해에 부딪혀 부서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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