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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재 Oct 10. 2019

가을 역에 정차한 단풍

---여수 그 하루


  안개가 보도블록을 어슬렁거리는 아침. 안개의 숨결 따라 가을 마중 간다. 풍경이 인상을, 인상이 음악을 그리는 가을 역들은 태풍 미탁과 링링이 휩쓸고 간 자리 사연 깊다.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들판의 벼들은 나란히 누워서 무슨 꿈을 만들고 있을까. 농부의 마음 타는 소리 듣지 못하는지 꼼지락 하지 않는다. 지금은 몸 밟고 지나가는 바람과 내통하다 햇볕에 들켜 일어서고 싶지만 방대하게 휩쓸고 간 태풍이 진흙탕을 만들어 벼들도 답답하긴 농부들과 같은 마음이겠지. 

     

 초록과 노랑 사이, 노랑과 빨강 사이 단풍의 빛깔 들판 깊숙이 태양을 빨아들이고 있는 배경을 지나 나는 탱탱하게 부풀어 오른 설렘 차창 밖으로 풀어내며 시집을 만지작거린다. 옆자리 남자 깊은 잠을 자는지 선잠을 자는지 자꾸 뒤척이고 부스럭거리다 정차 역을 지나쳐 역무원이 깨운다. 황당함. 다시 목적지 역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들이 길 잃었겠다. 나도 가끔 그랬는데.    

  

 뒷자리 한 무리의 목소리들 소란 피우더니 곡성 역에 부려놓고 고요의 바람이 지나간다. 풍경과 글자를 오가는 내 두 눈은 바쁘다. 몇 번의 옆자리가 머물다 비워지는 사이 가을 역은 떠남과 만남의 사연으로 채워진다.    

  

 시멘트 저장창고를 예술적인 그림과 인테리어로 엑스포를 상징하는 건축물이 되었다는 스카이 타워 입장한다. 바닷물을 식수로 바꾸는 '해수담수시설'을 지나 전망대 오른다. 기네스북에 등재된 세계에서 가장 큰 소리를 내는 파이프 오르간 연주 들으면서 오르는 스카이타워. 몇 년 전 프라하 성 미쿨라쉬 성당에서 들었던 파이프 오르간 음악소리의 울림이 다르게 다가온다. 공간이 주는 거리감일까 내부에서의 울림은 은은하고 외부에서의 울림은 묵직하다.     

 

 


 여수엑스포 상징 캐릭터 ‘여니와 수니’가 반긴다. 바다를 형상화 한 피아노에서 노닐고 있는 물고기들 배경을 앞뒤로 여유로운 시간 카페에서 차 한 잔의 사연을 담았다 비우는 발자국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여수 바다와 박람회장 지붕 펼쳐진 스카이타워 눈으로 찍는다.      


 바다에 노을은 붉은 물감을 풀어놓고 있다. 엑스포 박람회장 전시관은 자연을 소재로 한 작품 그윽한 눈빛으로 유혹한다. 마른 꽃 흰 벽면을 채운 '죽어야 사는 꽃' 참 슬프고 아프다. 관람객 드문드문 여유로운 공간 친절한 안내 해설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는지 묻는다. 그러나 출출한 내 눈은 자꾸 밖으로 이끈다.   

    

 낮에 만난 이야기들이 햇빛 닿아 다 타버린 역사 창가에 서서 내가 나를 구경하다 열차를 탄다. 아침에 타고 온 그 요란한 열차를 다시 만났다. 색이 색을 오려놓은 이벤트 행사 칸의 낯섦. 기념사진 술렁술렁 시끄러움 지나간다.     

  

 하루를 이끌고 온 열차 어둠 가르고 밤이 덜컹거리며 달린다. 모든 소음을 지고 불빛 따라온다. 고요를 어둠을 몰고 가는 빛의 행로에 눈동자는 더 크게 소리를 내야 보인다. 빛이 사라진 소리를 듣고 소리가 지워진 색을 바라보는 밤기차의 하루가 그림자로 휘어지고 있다.  

    

 나는 어느 역을 향해 가는지 모른 채 밤을 달리고 있다. 깊이 스며드는 어둠의 행로 그림자 보이지 않는다. 혼자다 또 혼자인 다시 혼자인 그러다 혼자인 쓸쓸함이 열차 천정에서 뚝뚝 떨어지는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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