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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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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재 Jun 01. 2020

쉼에 들다

---물향기 수목원

길 잃은 오늘 같은 날에는

오락가락 빗줄기 맞으며 산수유 마을로 가야 한다  

포근함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몹시 추웠다   

멍울진 꽃마을 휘젓는 바람은 어떤 뜻이 있어서이리라  

가랑가랑 고요를 적시며 중얼거리는 나뭇가지   

육감적인 입술로 비명을 지르는 말문 터진 노랑   

그리운 사람의 옷자락처럼 흔들리는

환각의 마을로 간다

그 마을에 가서 쉼을 찾으리라


조원재 작가의 『방구석 미술관』에서 나와 걸어야만 보이는 자연 속 발바닥 미술관을 찾아  물향기 수목원으로 갔다. 시내버스 창밖은 온통 먹구름에 회색으로 도배된 도시였다. 잠시 후 도심을 벗어나 ‘물과 나무와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물을 좋아하는 습지식물 가득한, 초록이 토요일을 이끌고 있었다.    

 

‘녹색 요정’ 술 압생트에 중독된 빈센트 반 고흐는 말했다. “눈물을 통해 가슴으로 파고드는 색. 노란 높은 음에 도달하기 위해서 나를 좀 속일 필요가 있었다.”  

노란색은 샛노랗게 노란색이 아닌 세상도 노랗게 보이는 ‘황시증’과 ‘정신착란’에서 벗어나고자 고흐는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그리고 잠시 샛노란 화면에서 벗어나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 차 보이는 절제된 균형으로 ‘붓꽃’을 그려냈다. 고흐는 쉼을 그려낸 것이리.


 

“장님이 막 눈을 뜨게 되었을 때 바라볼 수 있는 장면을 그리고 싶다.”고 한 클로트 모네는 빛이 있어야 자연을 볼 수 있는, 즉 사물에 비친 빛을 보고 카메라처럼 모네 자신이 카메라가 되어 자연을 본 그대로 순수하게 ‘수련‘을 그렸다.     


나의 쉼은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

 



마스크 듬성듬성 바람이 시작되는 곳, 하얀 마거리트와 손잡은 노란 창포 꽃 결 따라 출렁이는 거기, ‘수생식물원’ 연못 가득 수련꽃망울이 어우러졌다. 햇볕이 없어 모네의 수련처럼 빛을 따라가지 못하지만 나름의 빛을 뽐내고 있는 화폭 속의 작품인지 현상된 사진 밖인지 모를 내 시선이 꽃가루처럼 부서진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마음의 경계 사이가 선명하지 않아 나는 덮인 책처럼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렇게 ‘관상 조류원’에서 졸고 있는 닭과 오리가 보이는 창살 너머로 오전이 지나간다.      

 

 시간은 듬성듬성 흘러갔다 흘러오는 관람객들 사이로 붓꽃은 고흐의 화폭에서 나와 수목원 액자로 펼쳐졌다. 초록과 보랏빛 어우러진 5월의 공기를 피부에 바르며 눈동자 휘둘러 도착한  습지생태원의 데크 사이 물 위에 떠 있는 나무 그림자들이 서로에게 물들고 있다.   


나무의자에 앉아 입에서 목으로 전달하는 연인들 바스라지 듯 구르는 소리 통과하니, 산림 전시관은 ‘코로나 19’로 묵언 수행 중이다. 문틈으로 눈망울 드밀어 보다가 내 얼굴만 분홍의 이스라지 꽃가지 끝에 숨겨둔 채 미로원 옆 정자 어수선한 일가족 뒤로 수목원을 나온다.    

 

쉼의 풍경 속에서 나는 하나의 나뭇가지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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