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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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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재 Jul 09. 2020

다산의 길에 서다

-강진 

다산초당 가는 길에서 동쪽에서 서쪽으로 해가 옮겨가는 그 어디쯤 농어촌 버스는 45도에서 90도 사이의 구부러진 허리들 가득 태우고 달렸다. 강진 오일장 날 보따리와 장바구니 마다 사연 깊은 물건들이 덜컹거리는 버스에 삐죽삐죽 고개 내밀다 그만,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풀어진 보따리에서 탈출한 물건들이 와르르 흩어졌다. 서로에게 무안하고, 통로에 물건 놓지 말라고 주의 주었던 기사에게 미안하기도 하였을 등 굽은 허리가 슬프다.  

    

귤동 마을 입구에서 내려 새롭게 꾸며진 우물을 지났다. 그리고 박물관 주차장 건너 한옥으로 단장한 마을회관 찍는다. 대나무와 두충나무가 한데 잘 어우러진 다산회당 넘어 ‘정다산 유적’ 안내판이 나왔다. 눈 마주칠 그림자조차 없는 산길 숲은 우거져 어둡고 푸드득거리며 산새만이 가끔씩 다녀갔다.

  

    

나무에 새겨진 정호승 시인의 시 「뿌리의 길」은 세월에 패이고 이끼로 얼룩진 상처만큼 머릿속에 엉킨다. 지상으로 뻗은 뿌리는 다산의 눈물이며 고뇌와 인고의 상징인 것 같아 밟고 가는 길이 아프면서 기쁘다. 이 길이 있었기에 경세유포를 비롯하여 500여권의 저서를 남길 수 있었으니까. 

    

제자 윤종진 묘를 지나 돌계단 차곡차곡 오르면 정약용 유배지인, 노후로 붕괴되었던 것을 다산유적보존회에서 중건한 도리단층기와집이 반긴다. 다산초당을 중심으로 제자들 숙소 서암과 선생이 거쳐하면서 집필한 동암을 지나면 흑산도에 유배 중이던 둘째형 약전이 그리울 때 찾았다는 천일각이 있다.      

 

 

 

     암석에 다산이 직접 새겨 넣은 글자 ‘丁石’에 눈인사한 후 초당 툇마루에 앉아 다산이 차를 다렸다는 넓적한 돌 ‘다조’를 바라보았다. 다산이 반석 위에서 끓였던 차향이 지금까지 번져오는 듯 착각 살짝 비껴, 초당 옆 ‘문을 열고 연못 속에서 노니는 물고기를 바라보는 곳’ 관어재 현판과 ‘연지석가산’ 연못을 지나, 동암 툇마루에서 황인경 작가의 소설 『목민심서』에 심취했던 한 시절은 지나갔지만 밤새가며 읽었던 기억이 되살아나 그렇게 한참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한 무리의 웃음소리에 자리를 내주고 두 갈래길 왼쪽으로 백련사 오른쪽으로 천일각, ‘혜장선사와 다산’을 이어주는 통로였다는 숲길을 혼자 걷기엔 조금 두려움이 앞서 백련사는 마음속에 접어두고 ‘하늘 끝 한 모퉁이’의 천일각 암자에서 바라보는 강진만은 발아래 유리처럼 펼쳐져 있었다.   


       


다산박물관은 c-19로 체온과 손 소독 후 직원은 친절하게 박물관을 소개했다. 만남, 생애, 환생, 흔적 등 테마별로 전시되어 있다는 관람순서를 알려주며 특히 ‘하피첩’에 대해서는 울림 있게 설명했다. 호젓한 박물관에 들어선 나를 반기는 직원 표정이 참 예쁘다.  


 내 발자국소리만 전시실을 울린다. 다산 연표를 시작으로 다산의 가계도 그리고 유리벽 안에 다산연보, 마과회통, 목민심서, 여유당집, 원래 네 첩이었으나 3첩만 전해진다는 하피첩은 부인 홍씨가 시집올 때 가져온 치마를 보내와 그걸 잘라서 두 아들에게 훈계의 내용을 적어 엮은 것이라고 한다. 정조대왕 어필첩, 화성성역의궤와 유형윈의 반계수록 등 다산의 저술서와 조형물로 입체감 있게 전시실을 지키고 있었다.  

     

 

 

밖으로 나오니 푸른 잔디 ‘다산 정약용 말씀의 숲’은 다산의 명언을 각계각층 육필로 돌기둥에 새겨 조형화함으로서 색다른 야외공원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정약용 호 다산은 茶나무가 많다는 강진 귤동 뒷산 이름이며,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하여 후세사람이 붙여준 호라고 한다. 귤동 마을 버스정류장. 구부러지는 노을빛 따라 구부러지는 신작로에 쪼그리고 앉아 농어촌버스 기다렸다. 하염없이. 유배지에서 다산의 시간도 이러했으리라.  

    

유배되지 않은 이는 있을까. 누구나 이 지상으로 유배되지 않았을까. 나는 나의 유배지, 이 지구에서 무슨 자국을 남기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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