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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숲 Dec 26. 2021

훌쩍 떠난 겨울 캠핑의 매력

호명산 잣나무 숲 캠핑장

 

 캠핑하기 가장 좋은 계절은 봄과 가을이겠지만 겨울 캠핑 또한 나름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찬 공기를 마시며 캠핑을 하다 보면 내면의 소리에 좀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 든다. 특히 겨울 산에서 하는 캠핑은 좀 더 안으로 회귀하는 듯하다. 꽃과 나무가 없이 빈 나뭇가지만 가득한 산에서는 외부로 향하던 시선이 나 자신에게로 전환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내 안의 소리들이 소란스럽다 싶을 땐 훌쩍 겨울 산으로 떠나고만 싶어 진다.


 계절을 착각하여 일찍 핀 꽃이 서리를 맞고서 지는 해에 반짝거리던 오후였다. 고작 한두 시간 뒤면 해가 지고 아주 검은 밤이 찾아올 터였다. 우리는 배낭을 메고 잣나무 숲을 오르고 있었다. 해가 지기 전에 텐트를 치고 여유롭게 밤을 맞기 위해 부지런히 달려왔지만 산자락에 걸렸던 해는 이내 넘어가고 골짜기에서는 찬 바람이 내려오고 있었다.



눈이 살짝 덮힌 산길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사그락 사그락 나뭇가지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소란한 소리들을 하나둘씩 내려놓으며 눈이 살짝 덮인 길을 걸었다. 배낭을 메고 사뿐히 앉은 흰 눈을 밟으며 걷다 보니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걷기만 했을 뿐인데 내 안은 데워지기 시작했나 보다. 그렇게 조금씩 따뜻한 온기가 돌았다.



군데군데 보이는 이정표

 

 이곳 잣나무 숲에는 주차를 하고 산을 올라가야만 나타나는 캠핑장이 있다. 어떻게 보면 조금 불편한 캠핑장이지만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고 정말 필요한 장비만 챙겨 산을 오르다 보면 스스로에게 더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우리의 배낭


 캠핑장 데크에 배낭을 내려놓고 주변을 둘러보니 키 큰 잣나무 숲 사이로 데크 몇 개가 듬성듬성 보였다. 그 위에는 소박한 텐트들이 한 동씩 올려져 있었다. 솔캠 온 분들이 많아서였는지 캠핑장에는 바람 소리와 장작 타는 소리만 타닥타닥 들려왔다. 여기서는 특별히 화로대까지 빌려주기 때문에  데크마다 캠퍼들이 조용히 불멍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도 어서 텐트를 치고 화로대를 빌려오기로 했다.



불멍의 시간은 늘 즐겁다


 매점에서 장작 한 더미를 사 와 불을 지폈다. 해가 지고 걷기를 멈추면 사람의 온기는 금방 식고 만다. 하지만 불 앞에 앉아 있으면 장작의 온기가 손바닥을 통해 퍼져나가기 마련이다. 모닥불 앞에서 그렇게 장작을 하나씩 집어넣으며 나는 단단한 외피 안의 말랑한 나의 내면에 가 닿았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껍질에 쌓여 살아가는 걸까. 가끔은 껍질 속을 들추고 내면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모든 것이 비워지는 겨울산은 그런 시간을 갖기에 딱 적당했다. 그러다 보니 허기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우리는 모닥불에 프라이팬을 올리고 양고기를 구워 먹었다. 내년에는 아이들과 함께 산으로 백패킹을 가도 되지 않을까. 옆지기와 나는 서로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보고 싶은 이들을 떠올려보았다.




금새 얼어버린 물


 겨울 아침, 잣나무 숲 자락에는 빛이 늦게 들어온다. 해가 산등성이를 넘어오려면 시간이 꽤 걸리는 것 같았다. 해가 들기를 기다리다 캠핑장 주변 숲을 한 바퀴 걷고 돌아오니 좀 전에 마시고 남았던 물이 얼어붙고 있었다.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주변을 정리하다 보니 조금씩 숲이 환해진다. 건너 산자락에 햇빛이 비치고 잣나무들 사이에도 햇살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청명한 하늘과 햇살을 받아 군데군데 빛나는 잣나무들을 보고 있자니 어젯밤 모닥불에 앉았을 때처럼 따뜻함이 전해져 왔다. 이윽고 내가 앉은자리까지 햇살이 비추고 나자 얼어붙었던 물은 녹고 텐트에 앉았던 서리도 서서히 흔적을 감추었다. 겨울 숲에서 햇살은 정말 귀한 손님이었다.





 텐트를 정리하고 나서도 한동안 서서 숲을 바라다보았다. 어떤 나무는 햇살을 가지 끝에 받아 반짝였고, 어떤 나무는 나무 아래까지 빛으로 빛났고 어떤 나무들은 아직 햇빛에서 멀찍이 서있었다. 빛을 받고 있던, 빛을 못 받고 있든 간에 모든 나무들은 의젓하게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빛과 먼 나무들도 결국엔 모두 햇살을 넉넉히 받아 빛날 것이라는 것을 아는 것 같이. 그리고 나무들은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내면을 마주하는 일을 응원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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