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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숲 Feb 18. 2023

겨울 잣나무 숲에서 캠핑

이토록 시리고 차가운, 그리고 즐거운 겨울 숲에서의 시간

 

오랜만의 걸음이었다. 오랜만에 백팩을 메고 길을 나섰다. 늘 캠핑을 가면 자주 다녀야겠다 마음 먹지만 이런저런 일들의 파도를 타다 보면 한동안 뜸했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문득 캠핑의 시간은 일단 따로 만들고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루 머물 짐을 꾸리고 그것을 챙겨서 집을 나서고 길을 걷고 풍경에 반하는 것을 언제나 나는 원하고 있었으니까. 내 마음의 위안을 위해서라도 미리미리 시간을 확보하는 것. 그것 참 중요한 일이다.


 잣나무숲을 다시 찾았다. 그때도 겨울이었지 아마도. 키 큰 잣나무들이 따뜻하게 나를 바라봐주었던 곳. 너른 산 능선의 품이 부드러웠던 그곳으로 우리는 걸음을 옮겼다.


고요한 겨울 숲에 나란한 백팩 두개와 캠핑장 한 편에 자리한 나무 트리


 캠핑장에 도착하자 우리는 일단 짐을 내려두고 등산 장비만 간단히 갖추고서 산을 오르기로 했다. 이곳 잣나무 숲 캠핑장은 산 아래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캠핑장 옆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산을 오를 수 있다. 캠핑장에서 한 시간가량 올라가면 산 위의 호수까지 갈 수 있고, 거기서 두 시간가량 더 가면 정상이다. 우리는 이미 해가 기울어가는 오후에 산을 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에 호수까지만 올라가기로 했다.



고즈넉한 눈 쌓인 산길과 얼어있는 계곡


  산길을 좀 걸어 올라가니 온통 하얀 눈세상이다. 여름에 쉴 새 없이 흘러내렸을 계곡에도 두꺼운 얼음이 얼어있었다. 내려오는 사람도 별로 없고 올라가는 사람은 더욱 없어 고즈넉하기만한 산길엔 그저 눈 밟는 소리와 벅찬 숨소리뿐이다. 작년 영남알프스 산행 이후로 오랜만에 산을 올랐더니 꽤 숨이 차고 힘들었다. 공기는 차갑지만 내 안에는 열이 오른다. 두꺼운 겉옷도 거추장스럽고 손에 낀 장갑도 답답해졌다. 추운 날에 온기를 내는 가장 빠른 방법은 내 스스로 열을 내는 방법이 최고인듯하다. 영하의 기온에도 아랑곳 않고 땀을 흘리며 산길을 걸었다.




고요한 호명호수와 내려다보이는 산새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한참을 걸었을까. 숲길을 벗어나 임도를 따라 좀 걷다 보니 산 중턱에 자리한 커다란 호수가 보이기 시작했다. 호명호수는 청평양수발전소의 상부에 양수발전을 위한 물을 저장하기 위하여 인공적으로 조성한 호수라고 하는데 아름다운 숲이 있어서인지 호수에서 내려다보이는 산새가 너무 아름다운 곳이었다. 차가운 겨울날에 여기까지 오기는 힘들지만 아름다운 호수와 산의 풍경에 반해 잎이 무성해지는 계절에도 다시 찾으리라 마음먹어 본다. 우리는 잠시 정상까지 가볼까 하다가 일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과 체력을 생각해서 캠핑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한 곳을 향해 뻗어가는 나무들


 올라갈 때는 힘들어서 보이지 않았던 어떤 모습들이 내려갈 때는 마음을 사로잡을 때가 있다. 하얀 눈밭 위, 까만 나무들이 모두 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풍경이 문득 마음에 들어왔다. 분명 그곳이 해가 드는 곳이겠지. 빛을 향한 나무들의 열망이 느껴졌다. 나뭇잎이 비어있는 상태여서 그 열망이 더 잘 보였다. 푸른 잎으로 이곳이 가득할 때보다 더욱 그러했다.



저녁이 찾아들면 장작에 불을 피우기 시작한다


  산에서 내려오니 이미 하늘이 어둑어둑해오고 있었다. 겨울의 숲은 무척 차가웠다. 산에 올라갈 때는 느끼지 못했던 냉기가 무척 선득하다. 그래 불을 피워야겠지. 오늘 이곳에 자리한 모든 캠퍼들이 그들의 텐트 앞에서 불을 지피고 있었다. 이곳 잣나무숲 캠핑장에서는 무료로 화로대를 대여해 주기 때문에 매점에서 장작을 사면 불을 피울 수 있다. 겨울에 이곳을 찾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이 불멍의 시간인 것이다. 서둘러 텐트를 치고 장작에 불부터 피우기 시작했다. 마침 미리 챙겨 온 쉐리와인이 있어 한 잔 따라보았다. 달달한 쉐리와인을 조금씩 마셔가며 불을 쬐니 차가웠던 몸이 조금씩 데워졌다. 가져왔던 고기도 조금 구워 와인과 함께 먹으니 더욱 좋았다. 그렇게 몸이 조금씩 노곤노곤해지며 달콤한 행복이 찾아든다.



불멍의 시간은 언제나 즐겁다


 저녁을 먹고 나니 날은 금세 어두워지고 화로대의 불은 더욱 밝아졌다. 이제야 진정한 불멍의 시간이 찾아든다. 언제나 타닥타닥 장작이 타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온통 어둡고 추운 가운데서 온기를 내는 나무의 소리와 향기는 지친 여행자의 등을 토닥토닥한다. 불을 피우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불멍을 하며 따뜻한 위로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일상의 파도를 타다가 캄캄하고 어두운 시간이 찾아와 길어지면 마음속에 불을 피우고 타닥타닥 토닥토닥 위로의 시간을 가져야겠다. 이 밤을 떠올리면서.



해가 뜨고 다시 시작된 새로운 날



 뒤척이는 어둠의 시간을 지내고 숲에서 온전한 밤을 보내고 나면 아침이 찾아든다. 텐트 문을 열고 나오니 겨울 아침 추위에 잠이 확 깬다. 물통에는 남은 물이 얼어붙어있고 침낭 외피는 결로로 젖어있다. 입김을 불면 나의 숨이 하얗게 피어나고 겨울의 추위는 침낭 앞에, 텐트 앞에 어깨를 피고 위풍당당하게 서있다. 웅크리며 겨울 아침의 민낯을 대한 나는 다시 불을 피우며 온기를 쬐고 싶었지만 다시 일상의 파도에 올라야 하니 정리하고 떠나야 한다. 하여 겨울의 냉기라도 몰아내고자 발열도시락을 먹으며 기운을 차려보았다.


 따뜻한 국물이 들어오니 몸이 차츰차츰 따뜻해졌지만 발끝의 차가운 냉감은 몸을 움직여야 없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부지런히 텐트를 걷고 짐을 싸서 차가 있는 곳까지 빠른 걸음으로 걸어서 내려갔다. 그래도 몸을 움직이니 추위의 매서운 맛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더라. 춥다고 웅크리면 더 큰 추위를 느낄 뿐이었다. 춥고 서늘하고 어두운 그런 시기가 찾아들더라도 내가 할 일을 조금씩 찾아내며 움직이면서 스스로 온기를 만들 수 있다면 결국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평범한 위로 안에서 안식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결국 지나고 보면 즐거웠던 기억들이 조금 더 크게 느껴질 수도 있을 수도.


 겨울 잣나무 숲 속에서의 캠핑은 시리고 추운 기억보다도 즐거웠던 순간이 더 크게 자리 잡았다. 차갑고 시린 그리고 즐거웠던 겨울 숲에서의 시간을 마음에 잘 담아두고 다시 일상의 파도에 올랐다. 연신 파도에 지는 날들이지만 이렇게 소소하게 즐거운 순간에서 위로 받고나면 다시금 파도를 마주할 용기가 생기겠지. 파도에 져도 괜찮다 괜찮다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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