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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앓아야만

숨글 #1

by 시작쟁이

어느 날은

애초에 없었던 사람마냥

사라지고 싶었다.


존재를 지워버리고,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기를

바랐다.


그리하여

그 누구도 슬퍼하지 않고,

그 누구도 나를 그리며

눈물짓지 않도록.


오롯이 고독할 순간을

기적처럼 빌었다.


나의 소망은

바람처럼 사라지는 것이었다.

물방울도 냄새도 남기지 않고

홀연히, 가볍게 날아오르고 싶었다.


작게 피어오른 기도가

솜사탕처럼 부풀어 올랐다.




한참이 지나고서야 알았다.

허공에 띄워 보내고자 했던 것

생이 아닌 고통이었다는 걸.


나는 아팠고,

충분히 앓은 후였다.



그래서 또,

한 줄을 적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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