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해서 뭐 할 건데?
암환자를 살리는 심리상담 이야기
by 미술심리상담사 여정 Feb 19. 2024
수술과 방사선 치료까지 마치자 '타목시펜'이라는 항호르몬제를 복용만 남게 되었다. 여성호르몬을 억제해 주는 역할을 하는 이 약을 5년간 먹어야 한다. 타목시펜을 먹으면 마치 폐경과 갱년기가 온 듯한 증상을 겪게 된다. 내 몸이 앞당겨서 할머니가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몹시 피곤하고 근육에 힘이 없어 지하철 계단을 오르기도 벅찼다. 그리고 생리가 끊어지고 관절이 마디마디 쑤셨다. 처음 약을 복용하기 시작한 당시가 제일 힘들었다. 내 몸이 이 약에 저항하면서 버티는 순간이었나 보다. 한동안 호르몬 억제제와 씨름하며 고집을 부리던 내 몸은 결국 두 손 두 발을 들고 순응하기 시작했다.
대략 3개월쯤 되니까 이제 적응이 되고 차차 컨디션이 나아졌다. 만성피로에도 익숙해지고 이젠 그러려니 하게 되었다. 한동안 끊어졌던 생리가 6개월쯤 지나자 다시 시작해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한동안 약과 싸우던 몸이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다시 예전의 힘을 내는 것을 보니 우리 몸이란 게 참 오묘하고도 신통했다.
암 치료를 시작하면서 이런저런 정보들을 많이 주워듣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오일풀링부터 하고 오전에는 황톳길 맨발 걷기를 하고 각종 운동은 기본에 식사며 해독주스를 챙겨 먹고 잠은 가급적 일찍 자고 온몸을 따뜻이 하고 어느 지역에 가면 왕쑥뜸을 하는데가 있고 요양병원에서 정기적으로 면역주사를 맞고.... 너무나 챙길게 많았다. 이것들을 다 해볼 엄두가 도무지 나지 않았다. 이거 원 온통 건강관리에만 하루종일 매달려 있어야 할 판이다.
이렇게 건강에 올인하는 게 맞을까?
고민이 되던 무렵, 어떤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는 걸 듣게 되었다.
"건강해서 뭐 할 건데?"
그분 말씀은 너무 건강, 건강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당신이 뭐 운동선수도 아니고 몸 쓰는 사람도 아니라면 그냥 당신의 일과 일상을 사는데 필요한 정도로만 건강하면 된다는 것이다. 걸어서 회사 나오고 앉아서 일을 하고 사람들과 어울려 밥을 먹고 뭐 이 정도 활동을 하는 건강만 있으면 된다는 말씀이었다. 건강이 목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이 얘기를 듣고선 마음이 조금 홀가분해졌다. 그래. 건강이 목적이 아니다. 건강해서 뭐 할 건지를 생각해 보자. 그러고 나니 "의미 없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었다.
돈 버는 일,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한 일. 해야만 했던 일.
물론 그것도 그 나름대로 해야 할 이유가 있긴 했다. 누군가의 생계를 그 누가 의미 없다고 폄하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제 내 마음속에는 뭔가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하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고 생각하니 더 후회 없이 살고 싶어졌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글쓰기는 나의 오래된, 그리고 가장 친밀한 내 친구이기도 하니까.
아마 경제적으로 자유롭다면, 어쩌면 나는 글을 쓰며 살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