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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맞이 사무실 대청소

대충 사는 상담사의 일상

봄이 다가온다. 대청소를 할 때가 되었다.

입주한 지 3년 차가 되는 사무실은 크게 더러운 곳이 없다. 아니다. 그건 사실과 다르다. 더러운 곳은 계속 더럽고, 더럽지 않은 곳은 그럭저럭 더럽지 않다는 뜻이다. 이 사무실에 입주를 할 때 그전에 사용하던 사람들이 인테리어 해 놓은 것을 거의 손을 대지 않고 들어왔다. 그래서 비용적으로는 좋았지만 아무래도 사용감이 있고 낡은 부분들이 있다. 포기하고 적응하고 사는 편을 택했고, 그러니 청소를 한다고 해서 깨끗해지지 않는 상황이라 그냥 가끔 바닥청소만 하는 정도로 지내고 있다.


그래도 일 년에 한 번쯤 가끔은 대청소랍시고 구석구석의 먼지들을 좀 닦아줘야 한다.

창틀이라든지 선반이라든지 등등 말이다. 4월이 되기 전 3월 어느 시점이 되면 항상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대청소를 했던 거 같다.

'올해도 슬슬 청소할 때가 되었군'

포근해지는 창 밖의 바람을 느끼며 생각했다.


청소를 할 때면 친하게 지냈던 사모님이 생각난다.  교회의 부목사님 사모님은 나랑 나이도 같고 애들도 또래여서 친하게 지냈었다. 성품도 다정하셔서 낯을 가리는 날 잘 챙겨주셨다. 내가 사무실을 오픈한다고 하니 사모님이 이러신다.

"집사님, 내가 물질로 드리긴 어렵고 하루 청소해 드릴게요~"

넉넉지 못한 부목사님 살림에 사모님이 낸 묘안이다.

혼자서 계약이며 등기며 물품구입이며 간판작업 등등 이것저것 하느라 여념이 없던 내게 사모님의 말 한마디는 참 든든하게 느껴졌다.

"진짜요? 그래요. 그럼 같이 청소해요."

그렇게 나는 사모님의 호의를 덥석 받았다.




그리고 진짜 청소를 하러 오신 사모님.

20년 내공의 전업주부 사모님의 청소스킬은 나같이 워킹맘으로 살림은 뒷전이던 무늬만 주부와는 차원이 달랐다.

다부지게 의자를 믿고 올라서서 수납장이며 싱크대 구석구석을 닦았다.  까맣게 묻어 나오는 창틀의 먼지를 보면서 저게 저렇게 더러웠는지 놀랬다.

그냥 물걸레로만 닦을 생각이었는데 사모님이 매직블록으로 싹싹 문지르자 싱크대 문짝의 묵은 때와 얼룩들이 신기하게 없어졌다.

내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전등갓이며 몰딩이며 구석구석까지 청소해 주신 사모님 덕에 앞사람이 쓰던 인테리어 그대로 입주한 사무실은 그럭저럭 살만한 상태가 되었다. 새삥은 아니지만 소박한 출발로는 감지덕지였다.




매년 봄맞이 청소를 할 때마다 사모님이 떠오른다. 이제는 다른 교회로 가셔서 자주 만나기가 어려워져서 참 그립고 아쉽다. 올해도 나는 둘이서 같이 닦던 창틀을 닦으며 사모님을 떠올리겠지.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대체로 좋은 사람과의 관계인 거 같다. 그리운 것들은 사람, 관계, 경험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상담실에 오시는 분들도 상담사와의 따스하고 지지적인 관계경험이 제일 중요하듯이 말이다. 나는 무엇이 그리운지 마음을 돌아보게 된다.


며칠 비가 오더니 꽃망울이 제법 봄맞이 준비를 하고 있다. 시간은 그냥 지나가는 게 아니구나.  

빈자리에 따스한 바람이 불며

조금씩 그리운 봄이 오고 있다.

올해 청소를 하면 사모님과 같이 먹었던 봄도다리 쑥국도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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