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06인데 대학생입니다

대충 사는 상담사의 일상

2006년생, 고3이어야 하는 나이.

하지만 딸아이는 대학교 1학년이다. 7살에 조기입학을 했기 때문이다. 이 조기입학 스토리는 딸아이가 4살 때로 거슬러간다. 오빠가 유치원을 가고 나면 딸아이는 "심심하다"라고 말하곤 했다. 할머니집 거실에 누워 뒹굴며 놀 사람이 없어서 심심하다는 딸아이를 보며 유치원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동생이 입학이 가능하냐고.


원래는 입학신청을 하기 위해 줄을 서야 하는 유치원인데 신기하게도 동생찬스라는 게 가능했다. 재원생의 형제자매는 신청만 하면 줄도 서지 않고 입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청을 하고 어느 정도 대기를 하다가 자리가 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때만 해도 가벼운 마음이었다. "심심하니까 한번 가봐. 가기 싫으면 그만두면 되지." 뭐 이렇게 놀이터에 놀러 보내듯 가벼운 마음으로 4살 딸아이는 유치원에 가기 시작했다.


4살, 5살 무렵 아이들에게 한 살 차이는 엄청났다. 딸아이는 정말 조그마했고 키도 작고 덩치도 작았다. 또래들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경우도 있었다. 그런 조그만 땅꼬마가 지 등치보다 큰 가방을 메고 뽀작뽀작 걸어서 차 타러 가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웠던지.




몸집은 작았지만 딸아이는 친구들과 곧잘 어울렸다. 말하는 것이나 사회성은 전혀 어려움이 없다고 해서 한해 마치고 친구들과 같이 6세 반으로 올라가고 또 7세 반으로 올라갔다. 다른 아이들은 5,6,7세를 다니는 유치원을 딸아이는 4,5,6세를 다녔다. 유치원 과정이 끝마쳐질 때쯤 이제 고민이 시작되었다. "친구들은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데 우리 애는 한 살 어린데 어쩌지? 입학을 해야 하나? 한 해 유치원을 더 다녀야 하나?" 조기입학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딸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진지하게 고민했던 순간이었다.


유치원에 남으려고 하니 한 해 동안 얼굴을 익힌 동생반에 가서 1년을 또 보내야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한 끝에 그냥 7살에 학교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딸아이가 2월생이라 생일이 빠른 편이니까 05년 12월 생과는 2달밖에 차이가 안 나는 거지 않냐고 위안을 삼았다. 주민센터에 가서 조기입학 신청을 하고 그렇게 딸아이는 7세 초등학생이 되었다. 우리 가족들은 딸아이가 학교에서 나이가 어리다고 놀림을 받을까 봐 몹시 신경을 썼다. 그래서 딸아이에게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 네 나이는 8살이라고. 동생이 8살이라고 오빠에게도 단단히 주입을 시켰다. 그렇게 완전무장을 시켜 학교에 보냈다.


키가 작아 줄번호는 늘 앞자리였고 꼬맹이라고 놀림을 받을 때도 있었지만 뭐! 어쩔 건데? 네가 보태준 거 있어!! 하면서 굴하지 않고 다부지게 달려드는 성격 탓에 큰 핍박은 받지 않고 저학년이 지나갔다. 고학년쯤 되자 늘 작던 키가 친구들과 엇비슷해졌다. 사회성 만렙인 딸은 중고등을 무난히 지나고 현역 대학생이 되었다.


그동안 딸아이는 자신이 친구들보다 한 살 어린것에 오히려 좋다고 했다. 초등 고학년 무렵 실제 나이가 들통나긴 했는데 조기입학한 것이 싫거나 부모를 원망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어린것을 약간 즐기는 듯하기도 했다. 친구 누구랑은 거의 일 년 차이가 난다고 하기도 하고 대학입학을 앞두고서는 자신이 조기졸업이라면서 한국여고(가칭)가 아니라 한국과학고 졸업이라면서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재수를 하지 않고 현역 대학생이 되니 중요한 문제가 떠올랐다.




06년생은 '미성년자'여서 술집 출입을 하지 못한다. 아니, 대학 1학년 생이 술집을 갈 수 없다니. 이런 치명적인 불행이 있을 수 있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개강총회 이런 무수한 부어라 마셔라 자리의 뒤풀이에 모두 참석이 불가하다. 참석여부를 응답해야 하는데 딸아이는 어쩌지를 연발하다가 "제가 06인데 참석이 가능한가요?"라고 되물어야 했다. 입학 전 뒤풀이를 못 가는데 어떻게 1학년을 보낼 것인지, 06년생들이 술집 모임에 어떻게 참여가 가능할지, 입장은 되는지, 따로 테이블을 앉으면 되는지 정말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했다. 그리고 입학을 하고 딸아이가 어깨가 축 처져서 집에 왔다.

"엄마, 06은 나밖에 없어."

수십 명 신입생 중에 06이 여럿 있을 거라고 그동안 위로했는데 이제 어쩔 수 없다. 우리 딸 혼자 감당해야 하는 고민이다.


조기입학을 한 것을 한 번도 후회해 본 적 없는데 대학 1학년 1년 동안은 힘듦이 있다. 가지 못하는 술집, 하지 못하는 아르바이트 등이다. 1년만 잘 버티자고 위로하고, 토닥여 본다.



작가의 이전글 정기검진 하는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