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사는 상담사의 일상
이사를 마치고 이사과정을 돌아보았다. 포장이사라 해도 보관이사는 준비할 것이 많다. 냉장고도 비워야 하고 버릴 짐을 최대한 버려서 보관할 양도 줄여야 한다. 한 달 동안 살 임시거처로 한달살이에 필요한 짐을 별도로 갖다두어야 한다. 이사 당일에도 버릴 것과 가져갈 것을 구분해 알려드려야 하고 버려질 것이 제대로 버려지는지 확인해야 하니 이방 저방 불려 다니고 왔다 갔다 하느라 아주 제대로 몸살이 날 지경이다.
그동안의 이사를 떠올려보았다. 두 번의 이사 모두 나 혼자서 했다. 남편은 직장에 가는 평일이었다. 힘들지 않았나? 그럴 리가. 힘들었다. 첫 번째 이사는 오전에 살던 사람이 나가고 오후에 우리 짐이 들어오는 당일날 치고받는 이사였다. 오전에 우리 집에서 짐을 싸는 것을 보고 점심시간에 부리나케 이사 갈 집에 가서 청소를 했다. 바구니에 청소솔과 세제, 걸레를 들고 가서 베란다며 구석구석 더러운 부분을 닦았다. 입주청소 이런 게 아직 보편적이지 않던 시기이기도 했고 주어진 시간이 점심시간 한두 시간뿐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결혼 3년 차 젊은 새댁이었다. 우리 집을 마련한다는 기쁨에 힘든 줄도 모르고 그렇게 후닥닥 청소를 하고 짐을 들였다. 우리 가족의 첫 이사였다.
두 번째 이사도 비슷했다. 그때는 내가 직접 문틀 페인트 칠까지 했으니까. 그렇게 약간의 손을 보고 이사를 했고 그때도 나는 혼자였다. 혼자서 할만해서였을까. 그때는 지금보다 젊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 힘에 벅찼던 것은 사실이다. 해내야 하니까 있는 대로 힘을 끌어서 썼던 거 같다.
애쓰지 않는다.
지나치게 하지 않는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한다.
이것은 요즈음 내 생각의 근간이다. 돌아보면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 '지나치게'했을 때 꼭 마음의 탈이 난다. 지나치게 열심히 아이를 키웠을 때, 지나치게 열심히 상대방을 위해 무언가를 했을 때 그것은 기대와 실망과 후회와 짜증을 불러일으킨다. 어쩌면 나는 지나치게, 넘치게 했던 나 스스로를 후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애썼던 나에 대한 연민 또한 내 발목을 잡는다. 힘들이지 않았다면, 내가 불쌍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이제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지나치게 애쓰는 일을 하지 말자. 그 마음에 내 생각이 수렴되고 있다.
내가 나서서 진두지휘하기를 포기하고 피곤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는데 그럭저럭 이사는 마쳤다. 분주했던 짐 싸기가 끝나고 이삿짐을 실을 탑차가 출발하고 나서 남겨진 나와 남편은 이사종료 기념으로 삼계탕을 같이 먹었다. 우리가 처음으로 이렇게 힘을 합쳐서 큰 일을 해보는 경험. 내 힘으로 살고 남편을 소외시켰을 때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이었다. 함께 먹는 누룽지 삼계탕이 참 맛있고 감사했던 이사과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