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빨간 날 출근합니다

대충 사는 상담사의 일상

심리상담사를 직업으로 가지고 좋은 점은 남들 일할 때 쉰다는 것이다. 반대로 안 좋은 점은 남들 쉴 때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주말이나 저녁이나 공휴일 등이 그렇다. 직장인들의 경우 평일이나 낮에는 직장에 매여 있고, 학생들도 평일은 학교를 가야 하니 내담자들이 상담실을 찾는 시간은 퇴근 후, 하교 후 오후나 저녁이거나 주말이 되곤 한다. 그러니 내담자가 올 수 있는 그 시간이 상담자에겐 일하는 시간이 된다. 


발달센터에서 미술치료사로 일할 때도 그랬다. 언어치료 같은 경우는 어린이집을 빠지면서 오전에 오는 경우가 있었지만 미술치료는 학교 마친 이후가 피크 타임이었다. 그래서 4시~7시 정도 바짝 근무를 해야 했다. 간혹 저학년의 경우 2시~4시도 가능하긴 했지만 어쨌든 오전은 쉬고, 오후부터 저녁까지 일하는 스케줄이다. 


상담센터의 경우 주 5일 출근하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 근무가능한 요일을 사전에 협의하게 된다. 수, 목 근무를 한다거나 월, 토 근무를 한다거나 등등 주 며칠, 어느 요일 근무를 할 것인지 정하고 그날은 그 센터에서 상담스케줄을 소화한다. 프리랜서 상담사의 경우 어느 요일은 A센터를 가고 어느 요일은 B센터를 가고 이런 식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상담센터는 앞서 말한 업무 성격상 일반적인 휴일에도 문을 여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일요일에 오픈하기도 하고 심지어 명절 연휴에도 상담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 상담사도 당연히 근무를 하게 된다. 예전 같으면 해가 바뀌면 올해는 빨간 날이 언제인지 달력을 12월까지 넘기며 확인했었다. 검정글씨 가운데 있는 빨간 날의 기쁨이란. 특히 월요일이나 금요일에 공휴일이 끼거나 명절이 쫙 이어져 있고 대체공휴일까지 있는 황금연휴라도 있으면 한해 내도록 설레지 않았던가. 빨간 날을 노는 그 힘으로 무수한 까만 날들을 견딜 수 있었던 거 같다. 12월 성탄절이 없다면 11월의 그 빽빽하고 숨 막히는 까만 날들을 어떻게 버틸 것이냐 말이다. 


아침에 출근을 하지 않는 남편에게 회사 안 가냐고 물었더니 "오늘 빨간 날이잖아!"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삼일절이다. 나는 출근하는 요일이고 오늘도 센터는 정상 근무라 공휴일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어쩌면 이 직업의 특수성인지도 모르겠다. 남들 놀 때 일하고, 남들 일할 때 놀고 하니 말이다. 가끔은 빨간 날 출근하는 것이 내심 좋을 때도 있다. 명절에 근무날이 걸리면 내심 '앗싸~!' 를 외친다. 시댁에 가지 않고 명절노동에서 해방될 수 있는 합법적인 이유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빨간 날 출근하는 심리상담사란 직업의 특수성도 그럭저럭 나쁘지만은 않다. 

 


작가의 이전글 남자들은 왜 샤워할 때 노래를 하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