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마음이 자라는 중입니다
오래전에 사 둔 책이 한 권 있다.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
이 책을 추천받고 샀는데 끝까지 읽지를 못했다. 무슨 내용인지 절반쯤 읽었지만, 그때는 구절들이 이해되지도 와닿지도 않았다. 중간까지 읽다가 포기를 하고 책장에 다시 꽂아두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났다.
무려 17년이나.
책꽂이에 꽂혀 책은 책등이 하얗게 바래었다. 원래 표지는 노란색인데 햇볕에 노출된 곳만 색상이 하얗게 바래졌다. 그런데 그 오래되고 묵은 책이 요즘 다시 눈에 띄었다. 다시 책을 집어 들어 펼쳐 본 것이 이번달 초에 있었던 일이다. 다시 읽어볼까 싶어 한 장씩 책장을 넘겨 보는데 아, 처음 읽었을 때와는 마음이 딴판이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고 알아듣겠는 것이다. 그리고 그 책의 문장들은 살아서 움직이듯 내 마음속에 들어왔다. 아하, 이런 표현이라니. 구구절절 공감이 되어 밑줄을 긋게 되었다.
성인아이에 대해 골똘히 생각을 하게 된 요즘, 이 책을 읽으며 많은 영감과 통찰을 얻게 되었다. 곳곳에서 무릎을 치며 공감을 했다. 많은 사람들의 아픔과 슬픔을 내면아이가 상처받았다는 시각을 통해 볼 수 있구나, 그리고 완벽한 부모는 없으므로 우리는 대체로 상처받은 아이일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책이 이해될 때가 있구나. 내가 한 권의 책을 만난다는 것은 그 책을 쓴 사람과 연결된다는 것인데 그것에도 때가 있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마 처음 이 책을 샀던 삼십 대의 나는 아직 상처가 덜 아물었던 것 같다. 한창 아프고 덧나서 진물이 흐르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때는 상처를 쳐다만 보는 것도 힘들었다. 아직 나는 내 상처를 직면할 용기가 없었다.
이제 오십 대가 되어서 어느덧 상처가 굳고 딱딱하게 딱지가 내려앉은 듯하다. 이젠 상처를 보는 것이 조금은 덜 고통스럽다. 물론 딱지를 억지로 떼려면 아프기도 하겠지. 그래도 요즘은 새살이 돋는지 조금씩 간지러움이 느껴진다. 성인아이라는 상처에 새 살이 돋고 있어 간지럽다면, 그 가려움은 내 상처를 드러내도 될까?라는 마음일 것이다. 내 마음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받을 수 있을까? 내 이야기가 지나치게 개인적인 상황은 아닐까? 대중적인 공감의 대상일까? 혹은 이 상처를 드러내는 것이 나에게, 타인에게 유익할까? 하는 고민들이다.
3월 한 달 내내 홀로 내면아이 작업을 하면서 이 책을 깊이 읽었다. 나에게는 꼭 지나쳐야 하는 삶의 과정이자 미해결 과제였던 셈이다. 3월 내내 이 주제로 글을 쓸 것인지 말 것인지를 고민했다. 드러냄이 아프다면 아직 나는 이 상처에서 자유롭지 못한 셈이다. 말하고, 쓰고 표현함으로써 이제 나는 내 상처를 과거로 떠내려 보내고자 한다. 작은 용기를 통해 나의 아이가 조금 더 자랄 수 있기를. 봄꽃처럼 바라보는 작은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