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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몸은 어른, 마음은 아이

성인아이지만, 괜찮습니다 

상담실을 찾아온 내담자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위축된 표정이었다. 얼마 전 직장을 퇴사하고 우울감과 자살충동을 참을 수 없어 상담실에 오게 되었다. 들어보니 어린 시절 엄마의 기대가 컸고 그에 부응하기 위해 순응적인 삶을 살았다고 한다. 엄마가 원하는 전공으로 대학을 가고 직업을 택했는데 도무지 적응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죽을 거 같아 도망쳤지만 엄마의 반응은 냉랭했다. "넌 실패자야."


가끔, 아이가 자라지 못하게 하는 부모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아이가 영영 어린 아이이길 바란다. 겉으로는 아닌 거 같아도 마음 깊은 본능은 자녀가 계속 통제되고 자신의 울타리 안에 있으면서 자신이 예상가능한 모습으로만 존재하기를 바란다. 자녀를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존재해 주길 암묵적으로 강요한다. 자녀는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부모의 틀에 자신을 맞춰야 함을 알아차린다. 그렇게 시키는 대로, 순응적으로 자라온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얘기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어요." 

"전 어떻게 해야 하죠? 모르겠어요."


그렇게 자란 성인아이는 어떤 일을 헤쳐 나가기가 힘들다. 밀린 세금을 정리하고 바로잡는 일, 토라진 친구에게 연락해서 오해를 푸는 일, 군중 앞에서 발표를 하는 일 등등 많은 상황이 힘겹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게 된다. 마음이 어린아이처럼 용기가 없고 해결책을 찾지 못한다. 난관을 돌파할 마음의 힘이 부족하다. 성인아이는 매우 겁이 많고 불안도 높다. 다른 사람이라면 별 신경 쓰지 않을 일도 큰 장애물처럼 여기고 긴장한다. 문제를 해결할 자신의 능력에 자신이 없기 때문에 작은 사건에도 과도하게 스트레스를 받는다. 성인아이가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온통 문제투성이인 지뢰밭을 맨몸으로 살금살금 지나가고 있는 것과 같다. 얼마나 식은땀이 흘러내릴 것인가. 성인아이에게는 하루하루가 고군분투하는 삶이다. 


그래서 성인아이는 독립적이고 싶으면서도 의존적이다. 항상 미숙한 자신을 성장시키고 싶고 더 능력 있고, 이것도 해낼 수 있는 자신으로 자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어깨를 펴고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걷고 싶은 마음이 큰 만큼 그러지 못할 자신에 대한 두려움도 크다. 어떤 문제가 닥쳤을 때 자신의 힘으로 멋지게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마음속으로는 누군가 이렇게 해, 이 방식으로 해라고 지시하고 도와주길 바라는 의존적인 마음도 있다. 그래서 상담실에서 종종 이렇게 묻는다. "선생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알려주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인아이는 끊임없이 도전하고 시도한다. 때로는 턱없는 프로젝트에 용감히 도전해 보기도 한다. 자신의 실력이 한참 모자람에도 어쩌면 기적 같은 성공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허무맹랑한 생각을 하게 된다. 환상적 사고나 마술적 사고를 하는 것이 아이의 특징이다. 마술지팡이를 든 요정이 나타나 기적처럼 나를 도와줄 테야, 개구리나 우렁각시가 내 어려움을 해결해 주겠지 라는 바람이 성인아이의 마음 한편에는 자리 잡고 있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자기중심적 사고이다. 그래서 성인아이는 계속해서 시도하고 도전하고 꿈을 펼친다. 그 수위가 현실적이지 않고 망상에 가깝지는 않은지 성인아이는 늘 자신의 목표를 점검해야 한다. 


아이의 특징은 미숙함이다. 사회적인 장면에서 많이 애쓰고 포장해서 자신의 미숙함을 감추려고 노력하지만 성인아이는 본질적으로 미성숙하다. 사회적인 판단이 어렵고 적절하고 유연하게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쭈뼛거리고 눈치를 보다가 분위기에 맞지 않는 말을 하거나 혹은 동상처럼 딱딱하게 굳어서 억지 미소만 겨우 띠고 있을 뿐이다. 회식 자리에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빠져야 할 타이밍인지를 판단하기가 어렵고 어떻게 행동해야 자연스러운지가 고민이 된다. 자연스러운 언행이 힘든 것은 본질이 성인아이일 가능성이 많다. 


성인아이는 '전부'아니면 '전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 사람은 완전히 나를 사랑해, 100% 내편이야 라고 전적으로 믿어버린다. 한번 믿음의 대상이 된 사람은 전적으로 믿고 홀라당 마음을 내어준다. 그러다 그 사람이 나 아닌 다른 누군가에도 마음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비탄에 빠져 완전히 적으로 만들어 버린다. 나를 향한 마음이 있다고 애걸해도 믿어주지 않는다. 내 편이거나, 남의 편이거나 둘 중 하나다. 그 사이의 어중간한 경계에도 많은 것들이 존재할 수 있음을 믿지 않는다. 이분법적인 사고는 아직 성인아이이기 때문이다. 배신감에 치를 떤 적이 있다면 혹시 내 마음이 덜 자란 상태는 아닌지 돌아보자. 


이러한 성인아이의 특징은 성인아이가 세상에서 살아가는 일을 힘겹게 한다. 마치 어린아이가 커다란 갑옷을 입고 큰 칼을 차고 걸어가는 것이 힘겹듯이 성인아이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벅차다. 애쓰고 노력해서 하루하루 살아내고 직장생활이며 가정생활을 해내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아이가 애쓰고 발버둥 치며 겨우겨우 살고 있는 모습이다. 끊임없는 편두통과 목과 어깨 결림, 만성적인 스트레스, 혼자 있는 시간에는 녹초가 되어 온몸이 물먹은 솜처럼 끊임없이 가라앉는다면 내가 어떤 모습으로 애써왔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너무 슬퍼하지만은 않아도 된다. 언제나 희망은 있고, 해결책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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