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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엄마는 나를 사랑했다는데 나는 왜 싫었을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의 소중함

나에게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엄마는 나를 사랑한다고 사랑했다고 했는데 내 마음은 왜 이렇게 거지 같은가 하는 점이다. 엄마는 나를 지극정성으로 키웠다고 했다. 그때는 장사를 시작하지 않던 때라 시간도 많았고 제일 공들여서 육아를 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늘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듬뿍 받고 부족함 없이 자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자꾸 자랄수록 엄마가 싫고, 집을 떠나고 싶고, 마음이 허전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이유가 너무나 궁금했다. 


지원과 지지는 다르다.

김창옥 씨가 강의를 하며 어떤 부모에게 말했다.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것에는 '지원'과 '지지'가 있다고.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뒷받침이 지원이라면 정서적인 응원과 격려는 지지였다. 우리 사 남매는 엄마에게 지원은 충분히 받았다. 엄마는 열과 성을 다해 돈을 벌고 사 남매를 먹이고 입히고 가르쳤다. 공부를 위해서라면 어떤 뒷바라지도 하겠노라고 했다. 하지만 엄마에게 받지 못한 것이 있으니 정서적인 지지였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것. 존재 자체로 수용해 주는 것. 그것이 엄마에게 없는 유일한 점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아이에게 너무나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다. 


나는 없고 역할만 있다.

엄마는 바쁘고 분주했다. 일이 많았고 아이의 마음을 찬찬히 수용해 주지 못했다. 그 시절 먹고살기 바쁜 세월을 보내며 수용이나 존중이나 이런 말은 사치에 가까웠다. 우리 집뿐만 아니라 많은 부모들이 그런 처지였을 것이다. 그래서 바쁜 엄마 밑에서 아이들도 재빨리 역할을 뒤집어썼다. 그것은 살아야 하는 본능에 가까웠다. 

나에겐 맏이, 첫째 딸이라는 역할이 주어졌다. 살림밑천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고 동생이 태어나서는 네가 언니니까 양보해라는 말을 몹시도 많이 들었다. 큰 아이라고 더 혼나는 억울한 상황이 많았다고 한다. 첫째가 본을 보여야 동생들이 따라 한다, 첫째가 잘되어야 동생들도 본을 받는다 등등의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내가 두 살 무렵 동생이 태어났는데 그때부터 나의 유년기는 끝이 났다. 그때부터 나는 내가 아닌 맏이라는 역할로 살아야 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못한다는 건

엄마는 자식에게 기대가 많았다. 엄마는 내 자식이 이렇게 되기를 바라는 모습이 명확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 사 남매는 역할과 기대에 부응해야만 했다. 자신이 낳은 딸이 열아들 못지않게 훌륭하고 자랑스럽기를 바랐다. 당차고 똑똑하고 남부럽지 않기를 바랐고 엄마가 못다 이룬 학업의 꿈도 이루길 바랐다.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직업여성으로 살기를 바랐다. 엄마의 바람은 늘 명확했는데 그것은 냉정하게 말하면 엄마의 기대이자 소망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경계'의 문제이기도 했다.

엄마는 열정이 넘쳤다. 본인의 삶에 무척이나 열성이었고 부지런했고 많은 일을 했고 억척이었다. 자신의 삶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이에게도 똑같았다. 엄마는 자식이 품 안의 경계선을 넘어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내 아이는 이래야 하고 이렇게 행동해야 하고 이것을 해야 하고 엄마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야 했다. 모자란 아이, 자기 뜻대로 하는 아이는 엄마가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엄마에게 자식은 '또 다른 나'였다. 그런 엄마에게 태어난 아이는 '나'란 없고 '엄마가 원하는 아이'로만 살게 되었다. 


아이에게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조건이나 부모의 바람보다 그것은 우선되어야 한다. 아이가 예쁘지 않아도, 얌전하지 않아도, 잠을 잘 자지 않아도, 속눈썹이 짧아도 그 어떤 마음에 들지 않거나 나의 기대와 다른 면이 있어도 부모는 자녀의 기준에서 아이를 바라보고 이해해야 한다. 아이를 위해 부모가 있는 것이지 부모를 위해 아이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태어나서 한두 살이 된 어린 나에게 편지를 써본다. 


어린 숙아, 너에게는 너를 너무나 사랑하는 엄마가 있구나.
그런데 그 사랑이 너무나 강하고 일방적이어서 
너는 어쩌면 숨이 막힐지도 몰라. 
짜증 나고 싫을지도 몰라.
나중에는 도망치고 싶어지기도 할 거야.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너는 점점 더 자라고 
그 엄마의 울타리를 넘어 넓게 뻗어나갈 수 있을 거야.
심지어 이건 먼 훗날의 일이란다. 
지금 너는 그냥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괜찮아.
네가 무엇이 되지 않아도 된단다.
네가 꼭 어떻게 해야 할 필요도 없단다.
그냥 너는 너이면 족하단다.
엄마가 원하는 아이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단다.
그 누가 뭐라 해도 너는 그냥 그대로 참 소중한 아이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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