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알아야 할 알코올중독
알코올중독은 가족병이다. 중독자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도 함께 병들게 한다. 담배 피우는 사람 옆에 있어도 피해를 입듯이 알코올중독자 주변 사람들 또한 중독의 영향을 받고 피해를 입는다. 처음에는 이 사실을 이해하기 힘들지 모른다. “저 사람이 중독인데, 저 사람만 고치면 되지 내가 왜 치료를 받아야 하나요?”이것이 중독자 가족의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중독은 반드시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 중독자의 아내, 중독자의 남편, 중독자의 부모, 형제, 자녀 모두 영향을 받는다. 특히 중독자와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는 배우자와 자녀는 이 중독의 직격탄을 맞는다. 가장 영향을 많이 받고 따라서 반드시 함께 치료를 받아야 한다. 때로는 중독자가 아니라 가족부터 치유와 회복을 해야 할 상황도 많이 있다. 억울해할 필요가 없다. 나도 병들었음을 인식해야 하는 것이 중독자의 가족이다.
중독자 가족은 어떤 병에 걸리나요?
[중독자가 정신병인 것처럼 중독자 가족도 정신병에 걸립니다.
중독자 가족에게는 중독자가 술병입니다.
마치 알코올중독자가 마시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술병을 드는 것과 같습니다.]
알코올중독자 가족모임 순서지 中
중독자의 가족은 동반의존이라는 병에 걸린다. 중독자를 고쳐보려고 애쓰고 이렇게 저렇게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한다. 윽박질러보고 각서를 쓰게 하고 용돈을 끊어본다. 병원에 가자고 달래보고 입원을 시켜보기도 한다. 이번에는 끊겠다는 약속을 믿고 뒷바라지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재발을 반복하게 되고 배신감과 실망감을 가지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중독자를 고치고 바꾸려는 것을 포기하지 못한다. 또다시 시도하고 또다시 시도하고 결코 중단하지 못한다. 이것이 가족의 병이다.
동반의존 상태의 가족은 온통 중독자만 신경 쓴다. 그의 표정과 안색을 살피고 그의 목소리에 깜짝깜짝 놀란다. 그가 심기가 불편한지 기분이 좋은지 술을 어느 정도 마셨는지 걸을 수 있는지 출근은 했는지 어디에 있는지 항상 신경을 곤두세운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통제한다. 적어도 그렇게 하려고 애쓴다. 오로지 상대방에 의해서 내 감정도 영향을 받으며 내 기분이 좌우된다.
“당신 인생에서 중독자를 빼고 당신에 집중해 봅시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당신은 무엇을 하고 싶나요?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나요? 당신은 언제 행복한가요? 당신은 지금 어떤 기분인가요?”
이 질문을 받았을 때 당신은 뭐라고 답할까? 중독자를 빼고 대답할 수 있을까? “남편이 모처럼 쉬는 날 술을 마시지 않을 때 행복해요. 집안일을 도와줄 때 행복해요 “라고 답한다면 다시 묻습니다. ”중독자가 어찌했는지를 빼고 오직 당신만 보았을 때 당신은 언제 행복한가요? “
중독자 가족들은 산뜻 대답하지 못하고 당황하곤 한다. 머릿속은 온통 중독자로 가득 차 있다. 중독자, 음주를 빼고 나면 나는 누구인지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스스로도 답이 없다. 중독자와 나와의 교집합을 빼고 나면 나는 텅 빈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중독자를 제외하고서 ‘나’라는 존재가 있어야 하는데 동반의존은 ‘나’가 없고 상대방에 함몰되어 버린다. 상대방을 위해, 상대방에게 인정받기 위해, 상대방이 기분 좋도록 애쓰고 노력하는 삶이라 상대방이 없는 나는 발견하기 어렵다. 이것이 동반의존이라는 질병이다.
중독자 가족은 여러 감정적인 증상을 나타낸다. 분노가 대표적이다. 늘 취하는 중독자에게 처음에는 화를 내게 된다. 소리도 지르고 야단도 치고 심지어 때려보기도 한다. 하지만 번번이 상황이 반복되면 중독자 가족의 분노 또한 습관이 된다. 매번 실망하고 화를 내다보면 마음속에 깊이 분노가 자리 잡는다. 상대방에 대한 분노, 나에 대한 분노, 상황과 절대자에 대한 분노가 점점 뿌리 깊어진다. 이제는 중독자가 아니더라도 버럭 화를 내게 된다. 나에게 불친절한 점원이나 부당한 대우를 하는 직장동료나 길에서 마주친 별 의미 없는 행인에게도 분노한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하게 넘어갈 수 있는 일도 중독자 가족에게는 소위 ‘발작버튼’이 눌러진 것처럼 길길이 날뛰며 주체할 수 없는 화를 쏟아낸다. 분노조절불가의 상태. 이것이 중독자 가족의 질병이다.
깊은 우울과 무력감도 중독자 가족을 찾아온다.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을 해도 또다시 마시고 있는 중독자를 보며 중독자 가족은 절망한다. 자신의 노력과 수고가 수포로 돌아가는 것은 좌절을 안겨준다. 이 방법은 되겠지, 이 병원은 가능하겠지, 이번에는 진짜 되겠지 했던 모든 것들이 다 소용이 없어졌음을 알았을 때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중독자 가족은 깊은 우울상태에 이른다. 자신에 대한 절망과 희망 없음, 미래에 대한 낙담이 그의 생기를 앗아간다. 깊은 감정의 침잠상태에 이르러 아무 의욕도 없고 무력해진다. 웃고 싶은 기분은 잊은 지 오래이다. 삶의 고단함이 어깨를 짓눌러 어두운 표정으로 거리를 배회하게 된다. 정신을 차려보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정도이다. 누군가 당신을 툭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을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중독자는 술에 빠지고 중독자 가족은 우울에 빠진다.
죄책감과 불안도 찾아온다. ‘어릴 때 잘못 키워서 술을 마시게 됐나, 내 탓이야’ ‘우리가 부부싸움을 많이 해서 더 중독이 심해진 거야.’와 같은 죄책감이 대표적이다. 그때 내가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저렇게 할걸 하는 후회도 찾아온다. 이것 역시 중독자 가족을 더 중독자에게 꽁꽁 묶어두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결코 중독을 초래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중독에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잘못된 신념으로 중독자를 더 신경 쓰고 놓아주지 못한다. 병적인 결합이 더 깊어지는 것이다. 불안은 또 어떠한가. 중독자 가족은 작은 일에도 깜짝 놀란다. 어두운 건물 내 엘리베이터 앞이나 공중화장실 앞에서 낯선 사람과 마주칠 때 유난히 소스라치게 놀란다. 상담실 밖에서 들리는 큰 소리나 소음에 깜짝깜짝 놀라고 신경을 쓴다. 범칙금 고지서가 날아올 때, 아이가 걱정 어린 표정으로 할 말이 있다고 할 때 등등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다가올 것 같은 예감이 들 때 중독자의 가족은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들의 모든 감각은 미래의 불안을 감지하는데 발달되어 있다. 조금이라도 안 좋은 낌새가 보이면 그들은 누구보다 먼저 움직인다. 늘 사고를 수습해 온 경험이 삶의 패턴이 되어 있다. 그것이 중독자의 가족이 살아온 삶의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중독자의 자녀들은 어떠한가? 그들은 가정의 희생자이다. 아버지가 알코올중독자였다면 어머니는 동반의존으로 인해 정신없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중독자와 실랑이하느라 어머니의 삶은 피폐해져 있고 중독자 대신 가장의 역할을 하느라 고단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어머니가 자녀에게 주어야 할 따스한 돌봄과 온정은 기대할 수 없다. 중독자 자녀의 정서는 당연히 결핍되게 마련이다. 때로 자녀들은 화풀이 상대가 된다. 남편을 향해 악다구니를 하던 아내는 자녀들에게 짜증을 내고 야단을 친다. 억울한 불똥이 죄 없는 자녀들에게 날아든다. 이런 일은 자녀들에게는 일종의 재앙이다. 중독자의 자녀는 중독자인 아버지와 동반의존인 어머니 양쪽 모두의 눈치를 봐야 한다. 허구한 날 일어나는 부부싸움은 역시 분노와 불안의 마음을 자녀에게 심어준다.
또한 이렇게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역기능적 가정에서 어떤 자녀는 문제아가 된다. 자신이 더 큰 문제를 일으키는 사고뭉치가 되어서 오히려 다른 가족이 결속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술을 마시는 집에서 아들도 주정뱅이가 되는 것은 이러한 요인도 있다. 이렇게 망가진 가족은 희생양을 만들고 이 불행을 다음 세대로 자꾸 전수한다. 그래서 알코올중독은 중독자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온 가족이 영향을 받는 가족병임을 알고 회복해야 이 불행의 대물림을 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