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중독은 다른 중독으로 전이된다

알코올중독자의 심리적 특징

알코올중독자가 술을 끊으면 중독의 문제가 해결이 될까? 흔히 알코올중독자 가족은 술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술만 끊으면, 술만 안 마시면 세상 법 없이도 살 사람이고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술을 못 마시게 애를 쓰고 어떻게든 술을 끊게 하려고 한다. 정부에서 술값을 올리면 알코올중독 문제가 사라질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는지 원망해 보기도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것은 우리의 착각이다.      


중독은 뿌리가 있다. 중독이라는 뿌리가 있어서 이것이 하나의 가지로 자라난 것이 알코올중독이다. 이 가지가 썩고 문제인 가지라 생각되어 잘라내 버리면 어떻게 될까? 건강한 뿌리가 있는 나무라면 이렇게 썩은 가지를 도려내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하지만 이 나무는 뿌리가 문제이다. 문제의 근원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한 가지를 없애버리면 결국 이 나무는 다른 가지를 뻗기 마련이다. 알코올중독이 잘려나가면 각종 다른 물질중독, 행위중독으로 전이된다. 중독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성중독, 도박중독, 마약중독, 게임중독, 일중독 등은 우리가 제법 접해 본 말들이다. 알코올중독자 가족은 이 사실이 혼란스럽고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다. “술을 끊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설마?”라고 생각해 본다. 아닐 거라고 부정도 해볼 것이다. 하지만 다시 진지하게 주위를 살펴보자.      


일부 알코올중독자 같은 경우는 단순하게 알코올중독 한 가지만 가지고 있지 않고 여러 가지를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기도 한다. 술도 마시고 도박도 하고 게임도 하는 케이스도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는 중독의 문제가 복합적인 게 명확하다. 성중독도 범위가 넓다. 지속적으로 성매매를 하거나 법적인 문제를 일으키면 심각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음란물을 보거나 자위를 하는 경우 등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간과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남자들이 야한 동영상을 좀 볼 수도 있지. 그런 거 안보는 사람이 어디 있어.’ ‘야한 동영상을 본다고 뭐 크게 문제가 되는 건 아니잖아.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굴면 또 술을 마실지도 몰라. 그냥 내버려 두자.’라는 생각을 하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떠한 형태든 중독이 있는 사람에게 나타난 성문제는 중독의 시각에서 보는 것이 좋다. 중독자에게는 무엇이든 ‘적당히’가 없다. 절제가 안 되는 것, 브레이크를 걸지 못하는 것이 중독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외도의 경우도 살펴보자. 단순히 배우자를 두고 바람을 피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젊을 때 한번 실수였고 나이 들면 정신 차릴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독자는 반복해서 외도를 할 가능성이 있다. 불륜이 몇 차례 계속된다면 이것은 외도보다는 성중독 행위에 가깝다. 도덕적 통제력이 상실된 상태에서 성충동을 조절하지 못한 결과인 것이다.     

 

우리가 중독인지 미처 알지 못하는 경우들도 있다. 음식중독만 해도 탄산중독, 탄수화물중독, 당중독 등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술을 끊고 계속 콜라를 마시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술을 끊었으니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있을까? 그의 내면에는 여전히 중독의 뿌리가 있어 다른 물질을 먹고 마시는 쪽으로 변형될 수 있다. 알코올보다는 해악이 덜할 수도 있지만 한 가지 물질이 지나치게 우리 몸 안에 들어오면 반드시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이것 외에도 우리가 몰랐던 중독들도 많이 있다. 예를 들어 활자중독도 있다. 알코올중독 입원병동에 보면 계속 읽고 쓰는 사람도 있다. 책장이 너덜너덜해지도록 읽고 또 읽는다. 책을 읽는 것은 좋은 일이고 권장할 만한 일이지만 하루 종일 너무 많은 시간을 쓴다면 이것이 행위중독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또 한 가지 운동중독도 있다. 역시 알코올중독 입원병동에서는 하루종일 매우 많은 양의 운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 쉬지 않고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운동하는데 보낸다. 자전거를 타고 러닝머신을 뛰고 윗몸일으키기를 한다. 운동을 열심히 하고 건강해지니 좋은 것일까? 의료진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무엇이든 조절이 불가하고 지나치게 몰두하는 것은 모두 중독의 습성이다. 중단된 알코올중독이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지나치게 책을 읽고 운동을 하는 중독자가 반갑지 않은 것이다. 일이든, 쇼핑이든, SNS활동이든 중독의 뿌리에서 자라난 행동이라면 그것은 중독의 열매라고 보아야 한다.      


감정 또한 중독의 형태로 나타난다. 분노 중독이 대표적이다. 평온한 마음을 조절하지 못해 수시로 화를 낸다. 주체할 수 없이 분노를 폭발하고 길길이 날뛴다. 때론 물건을 던지거나 고함을 지르거나 사람을 때리기도 하는 등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다. 이런 분노중독 또한 알코올중독자에게 쉽게 볼 수 있다. 게으름 역시 흔히 나타나는 편이다. 할 일을 하지 않고 미루고 나태한 모습은 중독자에게 종종 발견된다. 알코올중독자가 술을 끊어도 이런 감정으로 나타난 중독은 단번에 사라지지 않는다. 술만 안 마신다 뿐이지 분노하고 게으르고 성격적 결함은 여전하다. 술은 신체뿐만 아니라 성격까지도 파괴시킨다. 이렇게 정서적인 면이 회복되는 데는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술로 손상된 내장기관과 뇌가 서서히 회복되듯이 마른 주정의 기간을 오래도록 거친 이후에 서서히 회복된다. 술을 마신 세월이 10년이라면 회복에도 10년 이상이 걸릴지도 모를 일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