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중독자의 심리적 특징
중독자를 중독으로 내모는 것은 갈망이다. 이것은 마음속 깊이 올라오는 충동이자 욕구이다. 뿌리 깊은 갈망이 끊임없이 마시라고, 취하라고 중독자를 내몬다. 단주의 결심을 하고 잠시 술을 끊어보아도 수시 때때로 올라오는 이 갈망을 이겨낼 수 없다. 갈망은 매우 질기고 매우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어떤 방법으로도 이 갈망을 뿌리 뽑기가 어렵다. 때로는 독한 마음을 먹고 며칠, 혹은 몇 달간 단주를 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번번이 다시 술병을 집어 들고 결국 취하고 만다. 이 갈망을 이기지 못해서 그렇다.
이 갈망이 무엇인지는 전문가들도 쉽사리 정의하지 못한다. 뇌의 작용인지 금단증상으로 인한 신체적 반응인지 심리적인 역동인지 여러 가지로 구분하고 분석해보려 하여도 뚜렷하게 잡히지는 않는다. 어쩌면 지독하고 강력한 사탄의 유혹이 중독자의 몸 안에 자리를 잡았다는 영적인 설명이 호소력 있게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경험하고 겪어본 중독자들은 이 갈망에 시달리고 있고 죽음이 훤히 예상되는 길을 정신없이 달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불빛을 향해 달려드는 나방이나 태양을 향해 날아가면 날개가 녹아서 떨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태양에 다가가는 이카루스와 비슷하다. 그 뜨거움을 향해서 다가갈수록 자신이 파멸된다는 사실이 자명하지만 이 갈망에 휩싸인 자들에게는 그것이 인식되지 않는다. 그 어떤 객관적인 사실도 갈망에 미쳐있는 중독자를 제어하지 못한다. 그들은 그냥 질주할 뿐이다.
갈망은 음주자와 단주자 모두에게 존재한다. 음주자는 음주를 중단하면 다시금 술에 대한 충동이 올라온다. 취하고 싶고, 취해서 잠들고 싶은 마음이 든다. 단주자는 더 갈망에 취약하다. 텔레비전이나 영상물 등에서 나오는 술 마시는 장면,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유흥업소, 음주가 동반되는 회식자리, 유난히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 등 이 모든 것이 갈망을 불러일으킨다.
단주를 오래 했다고 해서 이 갈망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알코올중독자들을 위한 고전적인 안내서인 익명의 알코올중독자들(일명 빅북)에는 이런 예화가 나온다. 수년간 단주를 하고 일도 잘하던 사람이 운전을 하고 출장을 가다가 잠시 휴게소에 들렀다. 그때만해도 그는 술을 마시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샌드위치를 먹고 배부르게 식사를 한 후 그의 머릿속에 번뜩 이런 생각이 든다. ‘우유에 술을 조금만 섞어 먹는 건 괜찮지 않을까? 식사로 충분히 배를 채웠으니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이게 갈망이다. 자신도 전혀 예상치 못하게 머릿속을 휙 스치고 찾아오는 생각이 갈망이다. 결국 그는 술 한잔을 주문해 우유에 섞어 마셨고 또다시 다음 잔을 주문하고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가 결국 취해서 의식을 잃었다. 그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뜬 것은 병원이었다. 수년간, 혹은 수 십 년간 단주를 하더라도 중독자는 늘 갈망이라는 불쏘시개를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이다. 그래서 한순간 다시 재발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중독자는 첫 잔을 들지 않아야 한다. 알코올중독자가 ‘술을 조금만 마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술을 줄이겠다’도 불가능하다. 알코올중독자는 아예 마시지 말아야 하는 사람이다. 첫 잔을 들지 않아야 한다. ‘딱 한잔만’은 있을 수 없다. 한번 마시기 시작하면 끝이 없이 질주해버리고 마는 것이 중독자이기 때문이다. 알코올중독에서 벗어나려면 아예 술을 마시지 않겠다, 아예 첫 잔을 들지 않겠다는 결심이 있어야 한다. 적당히만 마시면 괜찮겠지, 소주보다는 막걸리가 낫겠지 라는 마음이 있으면 절대 회복할 수 없다. 완전히 끊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회복할 수 있다.
회복을 위해 중독자는 자신의 첫 잔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필요하다. 알코올중독자는 당연히 술잔이 첫 잔이 된다. 술 한잔의 유혹이 가장 강력한 유혹이다. 그리고 이 술로 이어지는 첫 잔들이 있다. 부부싸움을 하면 기분이 나빠져서 여지없이 술을 마시게 된다든지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술을 먹기도 하고 어두운 밤이나 휴일에 아무도 없는 빈 집에 홀로 있으면 술을 먹고 싶은 충동이 올라오기도 한다. 외로움, 불면, 분노, 스트레스, 경제적인 걱정, 잔소리, 배고픔 등등 많은 것이 중독자를 술잔으로 가게 하는 첫 잔이 될 수 있다. 자신의 첫 잔이 무엇인지 알면 최대한 피할 수 있다. 잠이 오지 않으면 술을 마시는 패턴의 중독자라면 수면제를 처방받거나 운동을 하거나 해서 최대한 잠을 자보도록 노력할 수 있다. 집에 혼자 있으면 술을 마시는 게 자신의 첫 잔이라면 가족들과 상의해서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지 않고 피해보도록 할 수 있다. 자신의 첫 잔을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알수록 피할 수 있는 길이 많아진다. 첫 잔을 모르고 살아가는 중독자는 곳곳에 지뢰가 묻힌 지역을 행군하는 병사와 같다. 어디서 펑하고 터질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인 것이다. 지뢰가 묻힌 지역이 상세히 표시된 지도가 있는 병사는 훨씬 더 안전하게 이 구간을 지날 확률이 높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