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을러지고 싶어 10
결혼 후 3년 만에 첫아이를 낳았다.
친정엄마보다 열 살 많으신 시어머니께서
“너희 둘 다 실컷 신혼을 즐기고 3년 뒤 아이 하나만 낳아 키워라.”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때는 그 말을 흘려들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첫아이를 낳고 나서 6년 넘게 병원살이를 했다.
태어나서부터 병원을 전전했고,
여섯 살이 되어서야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그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매년 검사를 받아야 했다.
아이의 상태를 체크하기 위한 반복된 시간들.
그 시절에는 이런 생각이 자주 들었다.
‘내가 무슨 큰 잘못을 해서 아이가 이렇게 아픈 걸까.’
죄책감과 두려움, 그리고 스스로를 탓하는 마음이
매일같이 나를 괴롭혔다.
그래도 아이 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있었다.
책을 읽어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세상을 조금이라도 넓게 보여주는 것.
내가 워낙 밖으로 다니는 걸 좋아했기에
두 달 된 아이를 꽁꽁 싸매고 계룡산에 올랐고,
주말마다 유모차를 끌고 여기저기 나들이를 다녔다.
캠코더를 들고 아이만을 주인공으로 찍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 내 인생의 중심이 되었다.
아이가 네 살이 되던 해,
남편은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리비아로 발령을 받았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길이었다.
그때 나는 아이를 데리고 친정집으로 들어갔다.
그때부터 우리는 주말 부부,
그리고 점점 월 단위, 연 단위로 떨어져 지내는 부부가 되었다.
처음엔 힘들었다.
낯선 일상 속에서
아이의 건강과 남편의 안부를 동시에 걱정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매일의 삶을 버텨냈다.
내가 무너질 수 없었다.
누군가의 엄마이자,
누군가의 아내로서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감사한 건 있었다.
아이의 웃음 하나로 모든 게 다시 시작되었다.
남편이 먼 곳에 있어도,
우리 세 가족의 마음은 늘 한 곳을 향해 있었다.
이 시기 이후로 나는 달라졌다.
누군가를 위해 사는 법을 배웠고,
어떤 고통도 견딜 수 있는 힘이 내 안에 있음을 알았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이 나를 엄마로, 어른으로, 그리고 인간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정말 게을러지고 싶다고 느끼기 시작한 건.
잠시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살아 있음 자체를 느끼고 싶었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