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봄날편지347

2024.3.31 나희덕 <한 삽의 흙>

by 박모니카


‘당신의 부활을 축하합니다‘ 오늘은 기독교 예수님의 부활을 기리는 ’부활절(Easter)’입니다. 영미권에서는 크리스마스보다 더 큰 제1의 축제이지요. 기독교에서 부활절은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을 통해 인류에게 구원을 가져다 준 날을 기념하는 날이지만 보편적으로는 사랑과 희망 그리고 새로운 시작(봄)을 상징하는 날이기도 하지요. 그러니, 또 다시 오늘부터 당신의 새 봄이 시작되는 거네요. 오늘따라 짙은 안개로 인해 가시거리가 매우 짧다고 하는데요, 창 밖, 넓게 퍼져있는 안개이슬 속으로 들어오는 한줄기 빛 또한 부활의 신비 같아서 특별한 날의 성찬을 맞는 듯 합니다. 부디 우리들의 영혼과 육체가 다시 태어나는 순간을 누리시길. 오늘은 흙과 한번 놀아볼까 하는데요. 벌써 작년 장마의 상흔이 되었지만 심었던 감자들이 물속에 갇혀서 햇빛 한번 받지 못했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얼마나 속 상한지... 그래서 올해부터는 아예 텃밭근처도 안가려 했는데, 지인이 다른 땅을 소개하네요. 책방 오고가는 길에 있어서 또 구미가 당겨졌답니다. 밭의 크기도 현저히 줄어들어 큰 노동 들이지 않아도 될 것 같고요. 감자수확을 잘 했다해도 2-3상자 정도 나올 땅이라서 하겠다고 했습니다. 제 땅도 아닌 것이 농작물을 심다보니, 욕심에 불을 붙여 자꾸만 커져만 갔었거든요. 그러니 농동역시 중노동이 되고, 정작 할 일의 순서가 뒤쳐지는 등의 실수가 있었지요. 가장 기억에 남는 책 중 톨스토이의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가 있는데요, 텃밭 농사꾼인 제게 또 한번 일침을 주는 책입니다. 하여튼 오늘 새로 만날 밭의 성격을 찬찬히 살펴보고 악수를 청해야겠습니다. 잘 부탁한다고요.^^나희덕 시인의 <한 삽의 흙>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한 삽의 흙 - 나희덕


밭에 가서 한 삽 깊이 떠놓고

우두커니 앉아 있다

삽날에 발굴된 낯선 흙빛,

오래 묻혀 있던 돌멩이들이 깨어나고

놀라 흩어지는 벌레들과

사금파리와 마른 뿌리들로 이루어진

말의 지층


빛에 마악 깨어난 세계가

하늘을 향해 봉긋하게 엎드려 있다

묵정밭 같은 내 정수리를

누가 저렇게 한 삽 깊이 떠놓고 가버렸으면

그러면 처음 죄 지은 사람처럼

화들짝 놀란 가슴으로 엎드려 있을 텐데

물기 머금은 말들을 마구 토해낼 텐데

가슴에 오글거리던 벌레들 다 놓아줄 텐데

내 속의 사금파리에 내가 찔려 피 흘릴 텐데

마른 뿌리에 새순을 돋게 할 수는 없어도

한 번도 만져보지 못한 말을 웅얼거릴 수 있을 텐데


오늘의 경작은

깊이 떠놓은 한 삽의 흙 속으로 들어가는 것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다시봄날편지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