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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니카 May 03. 2024

당신봄날 아침편지15

2024.5.3 김사인 <풍경의 깊이> <공부>

책을 읽으면 좋다고. 그러니 책을 꼭 읽어야 한다고 말하지요. 요즘은 책에 대한 개념도 달라져서 그 형식이 꼭 ‘종이’를 취하지도 않구요. 그래도 좋은 글이란 왠지 ‘종이 책’에 쓰여진 글이라야 제 맛이고, 그런 작가가 제 멋을 아는 사람 같지요. 시를 쓰는 시인 중에서도 종이의 촉감을 가진 사람이 있는데요. 한번도 직접 만난적은 없지만 그의 시 한 편으로 분명 알고 있는 것 같은 시인이 있습니다. 김사인 시인입니다. 지금은 전주 한옥마을에 살고 계시니 언젠가는 인연이 닿을 수도 있겠지요. 몇 년 전, 그의 시 <공부>라는 시를 처음 읽었을 때 ‘그래, 인생에서 누구나 한번은 해야 할 ,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공부구나. 이렇게 공부하면 아무리 큰 슬픔도 견뎌지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외에 다른 시 <지상의 방 한 칸> 과 <바짝 붙어서다> 등의 시를 아침편지에도 올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제는 전주 지역 출판사 ‘모악’에서 출간한 <김사인 함께 읽기>라는 책을 받았습니다. 얼마 전부터 줌(zoom) 시 낭독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데요, 그곳의 좌장 이종민 교수께서 추천하신 책이어서 주문했었어요. 시인 김사인의 작품에 대해서 다른 시인이나 작가 50여명이 시 평론을 쓴 형태예요, 이차저차한 이유로 무려 3년 만에 책이 나왔으니 매우 소중한 글 집임이 분명합니다. 김시인의 시 세계를 들여다봄은 물론이고, 제가 좋아하는 여러 시인들의 감상평까지 더불어 읽을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단번에 절반 이상 읽을 정도록 매력적인 ‘김시인의 시를 닮은 종이 책’. 꼭 읽어보시길 강추합니다. 하루를 살다보면 그 하루의 풍경 속에서도 다양한 모습과 소리가 있지요. 어제도 분명 부산한 시간과 동행했는데, 책방에서 이 책을 읽으며 보냈던 두 시간이 제 하루를 깊은 풍경을 가진 시간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것이 책을 읽으면 좋은, 그래서 꼭 읽어야 하는 이유가 된다면 저는 그 무엇보다도 맨 위에 이 일을 하겠노라고 써 놓고 싶습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사람과 더불어 사는 것이 으뜸인데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만날 수 없으니, 책을 통해서라도 사람 여행해야지요. 오늘은 김사인 시인의 <풍경의 깊이>과 제가 애독하는 <공부>를 함께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풍경의 깊이 김사인     


바람 불고

키 낮은 풀들 파르르 떠는데

눈여겨보는 이 아무도 없다.     


그 가녀린 것들의 생의 한순간,

의 외로운 떨림들로 해서

우주의 저녁 한때가 비로소 저물어간다 .

그 떨림의 이쪽에서 저쪽 사이, 그 순간의 처음과 끝 사이에는 무한히 늙은 옛날의 고요가,     

아니면 아직 오지 않은 어느 시간에 속할 어린 고요가

보일 듯 말 듯 옅게 묻어 있는 것이며,     

그 나른한 고요의 봄볕 속에서 나는

백년이나 이백 년 쯤

아니라면 석 달 열흘쯤이라도 곤히 잠들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 석달이며 열흘이며 하는 이름만큼의 내 무한의 곁으로 나비나 벌이나 별로 고울 것 없는 버러지들이 

무심히 스쳐가기도 할 것인데,

     

그 적에 나는 꿈결엔 듯

그 작은 목숨들이 더듬이나 날개나 앳된 다리에 실려 온 낯익은 냄새가     

어느 생에선가 한결 깊어진 그대의 눈빛인 걸 알아보게 되리라 생각한다.


          

공부 – 김사인      

    

' 다 공부지요'

라고 말하고 나면

참 좋습니다.

어머님 떠나시는 일

남아 배웅하는 일

'우리 어매 마지막 큰 공부 하고 계십니다'

말하고 나면 나는 

앉은뱅이 책상 앞에 무릎 꿇은 착한 소년입니다.     


어디선가 크고 두터운 손이 와서

애쓴다고 머리 쓰다듬어주실 것 같습니다.

눈만 내리깐 채

숫기없는 나는

아무 말 못하겠지요만

속으로는 고맙고도 서러워

눈물 핑 돌겠지요만.     


날이 저무는 일

비 오시는 일

바람 부는 일

갈잎 지고 새움 돋듯

누군가 가고 또 누군가 오는 일

때때로 그 곁에 또 누군가 오는 일

때때로 그 곁에 골똘이 지켜섰기도 하는 일


'다 공부지요'말하고 나면 좀 견딜 만해집니다.  

특별히 글을 쓰는 문우들께서는 꼭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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