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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니카 May 06. 2024

당신봄날 아침편지18

2024.5.6 안도현 <논물 드는 오월에>

무지개색 중에서 누가 가장 밝은 빛일까요. 두두두두.... 바로 초록색이예요. 우리들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광선 영역 안에서 최고의 가시성을 가진 영역이 초록인데요. 그래서 초록은 눈의 피로를 낮춰주고 더불어 몸이 받아들이는 가장 안정된 색이라네요. 어제처럼 비가 오는 날에는 초록의 발산도가 더 높아진다하니 역설적이게도 비 오는 날은 초록요정 우리들에게 주는 은혜를 베푸는 셈입니다. 잔잔히 내리는 빗속에서 초록 우산 하나 들고 초록숲으로 난 길을 따라 걷다보면 어떤 행운이 찾아올 것만 같아 맘이 동동 거리네요^^ 참 자연의 이치는 한 치도 거스름이 없고 정확하니 이 얼마나 든든한 언덕인가요. 먹고 살 양식의 씨를 펼치라고 알아서 논물을 대주고, 목말라할 참인 텃밭의 작물들에게 단물을 내려주고요. 세상 인간사는 칠정(七情)으로 얼룩져 있을지라도, 이렇게 때를 맞춰 내려주는 자연의 특혜를 받다보면 ’세상 참 살맛나는 곳이여‘라는 어느 할머니의 한 마디가 딱 맞는 말씀입니다. 친정엄마와의 통화에 고추모 몇 개 사다 달라 하시니 핑계김에 모종 나들이도 해야겠습니다. 오늘은 5월 예비출간책 작가들과의 미팅이 있는데요, 그래서 새벽부터 1차 편집본들을 다시 한번 쭈르륵 훑어보았습니다. 나름 꼼꼼히 보고 또 보았는데요, 이 오류투성이는 어디서 나오는지, 또 나와서 저를 긴장시키기도 하지요. 그러면서 작품을 다시 읽고, 작가들의 마음을 또 헤아려봅니다. ’헤아리다‘라고 쓰다보니 갑자기 어제 나눈 ’사랑‘이라는 단어가 생각나는 군요. 원래 우리말에는 ’사랑‘이라는 고유어가 없다고 해요. 지금의 ’사랑‘이란 말은 한자어 ’사량(思量, 생각하고 헤아리다)가 변형되어 쓰이기 시작했다고 <어머님 은혜>를 쓴 양주동 박사의 주장이 있지요. 어떤 지인은 말하기를, 박사나 학자의 말이라고 무조건 따르는 것은 온당치 않고 견강부회(牽强附會, 억지로 끌어다 자기주장이 옳다고 일컫는 말)라고 충고해주셨지만, 저는 그냥 ‘사량’이라는 말이 어원이어도 좋다에 한 표를 던집니다.~~~ 어찌됐든, 오늘도 오월의 하루, 게다가 휴일, 초록세상이 넓은 돗자리까지 펼쳐주었으니,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시간 만들어가시길 바랍니다. 저도 그럴테니까요^^ 오늘은 안도현 시인의 <논물 드는 오월에>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논물 드는 오월에 안도현    

 

그 어디서 얼마만큼 참았다가 이제서야 저리 콸콸 오는가

마른 목에 칠성사이다 붓듯 오는가    

 

저기 물길 좀 봐라

논으로 물이 들어가네

물의 새끼, 물의 손자들을 올망졸망 거느리고

해방군같이 거침없이

총칼도 깃발도 없이 저 논을 다 점령하네

논은 엎드려 물을 받네     


물을 받는, 저 논의 기쁨은 애써 영광의 기색을 드러내지 않는 것

출렁이며 까불지 않는 것

태연히 엎드려 제 등허리를 쓰다듬어주는 물의 손길을 서늘히 느끼는 것    

 

부안 가는 직행버스 안에서 나도 좋아라

金萬傾 너른 들에 물이 든다고

누구한테 말해주어야 하나, 논이 물을 먹었다고

논물은 하늘한테도 구름한테도 물을 먹여주네

논둑한테도 경운기한테도 물을 먹여주네

방금 경운기 시동을 끄고 내린 그림자한테도,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누구한테 연락을 해야 하나

저것 좀 보라고, 나는 몰라라     


논물 드는 5월에

내 몸이 저 물 위에 뜨니, 나 또한 물방개 아닌가

소금쟁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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