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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니카 Jun 02. 2024

당신봄날 아침편지45

2024.6.2 김희경<유월엔>


문우들에게 질문 하나를 던졌죠. ”지금 생각나는 단어 다섯 개만 써본다면요(명사로만)?“ ‘엄마’ ‘꿈’ ‘사랑’ ‘희망’ ‘정’ ... 이런 말들이 많았어요. 세상을 바라보는 인지의 과정은 크게 둘로 나뉜다죠. ‘생각’과 ‘감정’으로요. 문우들의 짧은 대답만으로도 그들의 세상살이 대처법이 느껴졌답니다.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는 그의 많은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도구니까요.     


어제 책방을 찾은 젊은 청년들이 있었어요. 아무래도 비치된 책방의 책들은 저의 취향, 저의 나이 등을 가늠할 수 있는데요. 젊은 친구들이 제 추천책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해주는 자세를 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네요. ‘이쁘기도 하고 인문학적 교양까지... 참 부럽다. 저 나이에.’ 다행히 책방지기의 수다를 잘 봐주어서 책까지 사니, 얼마나 멋지게 보였겠어요. 그들이 산 책 <잊을수 없는 밥 한그릇> 같은 수필집을 선택할 정도라면 다른 면은 볼 것도 없다, 라고 생각했답니다. ~~     


저녁에 책방에서 문우들과 밥을 먹으며 6월의 포문을 열었는데요, 그때에도 누구나의 삶에 가장 중요한 단어 하나가 떠 올랐죠. 바로 <밥>이란 말. 콩밥을 좋아한다는 제의 말을 기억하셔서 돔보콩, 연꽃콩 등이 가득한 밥을 지어오신 왕언니. 먹고 있던 고기반찬이 순간 달어날 정도로 고실고실한 밥 맛이 일품이었답니다. 낮에 만났던 젊은이들을 다시 초대하여 함께 먹고 싶은 맘이 동하기도 했구요. 그래서 저는 맘 속으로 다시 결정했지요. 내가 좋아하는 다섯단어 중, 그 으뜸으로 <밥>이라고 고쳐놓았답니다. 이러니 다이어트는 또 실패하는 거네요~~. 그래도 할 수 없지요^^      


오늘은 맘 편한 일요일. 방금 부지런한 후배 하나가 전화왔네요. 산책 가자고요. 제 몸이 무거운 줄 어찌알고 챙겨주는지 고마울뿐입니다. 유월의 새벽은 어떤 맛일지, 몸으로 생생하게 월명산을 느껴보고 오겠습니다. 오늘도 평화롭기를! 김희경 시인의 <유월엔>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유월엔 – 김희경     


유월엔

모두가 펄럭인다     

겨우내 어둡고 시려 하는 나무줄기에 내린

별들이 찍어둔 점 마디마디 돋은 잎사귀

긴 귀를 쫑긋 세우려 하는 것도

뙤약볕이 묶어두려 아무리 쏘아붙여도

바람 한점에 뒤집는 것도     


잉태한 복숭아 향기만 담으려 해도

자꾸 무언가 가려워 긁고 있는 것도

때로는 창백하고 때로는 붉어지는 것도     


까마귀 앉아 묵묵히 참선에 들려 해도

눈이 아려 오는 것도

자꾸 깃털이 편지를 쓰는 것도     


파도가 결코 끈을 놓지 않고

물 위를 물이 겨워도 오르고 내리는 것도

백사장이 아무리 쓸려가도

그곳을 넘지 않는 선이 펄럭이는 것도     


반 토막 서린 철조망 따위

아직도 홀씨에게는

벽이 아니라고 넘나들며 해맑은 꽃피우는 것도    

 

유월이면

모두가 더 펄럭인다    

 

다만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아픈 문장들이

따옴표로 펄럭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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