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6.5 허형만<길>
6월, 학원에 있다 보면 한가지 현상이 눈에 보입니다. 다름 아닌 소위 ‘대학입시반수’죠. 이미 대학생이 된 학생과 학부모들의 반수에 관한 상담이 있었는데요, 현 대학입시제도에서 뚜렷하게 자신이 희망하는 진로에 맞는 과를 정해서 입학하고 졸업에 이르기까지 마무리하는 과정은 쉽지 않습니다. 초중고 정해진 틀에 맞춰 학교공부를 하고 수능시험일에 나온 성적으로 일단은 대학을 가보자는 심산이 더 크니까요. 사실 최근 5-6년 사이 극심한 학령인구감소는 대학입학에도 바로 반영되어, 실제로 가고자 하면 어떤 대학이라도 갈 수 있지요. 단지 기존에 설정된 기득권 제도학교(소위 인 서울을 포함한...)에만 들어가려 하다보니, 여전히 불평등 대학사회 속에 살아갑니다. 학원계에 있다보니, 대학 선택 후 다양한 학생들의 진로를 볼 수 있습니다. 결론은 반드시 유명대학을 나왔다해서 학생들의 앞날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지방대학을 나왔다해서 하고 싶은 일을 못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꼭 말씀드리죠. 어제의 상담에서도 그랬습니다. 우리 군산대학교를 선택한 학생의 1학년 기간동안 어떤 제도를 활용할 수 있는지, 국립대가 가지는 장점을 두루두루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가 반수를 희망한다면, 그 또한 ‘주고싶은 기회의 장’이라고도 했습니다.(불확실한 자신의 진로와 사회적 비용까지 그들이 고민하지 못하니까요~~)
유명한 시,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The Road Not Taken>의 한 구절처럼, 우리는 모든 길을 다 갈 수 없고, 어디선가 하나의 길만 가야 하는 순간을 아쉬워하며 선택하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이나 후회를 간직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본연의 모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까지는 학원교육장이 주 무대이지만 책방지기와 병행하다 보면 노년으로 가는 길 위에 돋움돌 하나가, 그것도 누구나 쉬었다 갈 수 있는 넓고 넓은 반석이 놓여지면 좋겠다 싶은 욕심이 드는 새벽입니다. 그러면 그때 저도 프로스트처럼 말할 수 있겠지요. -숲속에 두 갈래 길이 나 있었다고. 나는 사람들이 덜 지나간 길을 택했노라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노라고- 오늘은 허형만시인의 <길>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길 - 허형만
그동안 내가 걸어온 길에는 언제나
세월이라 부르기도 미안한
참 오랜 세월이
눈에 보이지 않게 번개를 품고
숨죽이며 엎드려 있느니,
누가 생生을 상처라 했던가
살면서 상처 없는 생生은 없느니,
그동안 내가 걸어온 길에는 언제나
세월을 한 번도 거스른 적 없는
해와 달의 발자국이 스며 있어
생生의 상처마다 돋는 가시를
심장 속에 다독이며 살아가지만
때로는, 번쩍! 한 번 용틀임하면
야생의 초록덩굴뱀처럼 벌떡 일어설
생生은 그렇게 간절하기 그지없느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