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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니카 Jun 19. 2024

당신봄날 아침편지62

2024.6.19 함민복 <공터의 마음>

함민복 시인의 <여름의 가르침>이란 시에서 ‘새소리가 아름답게 들린다 / 나비가 새소리 반대 방향으로 몸을 튼다’ 라고 썼는데, 오늘따라 아름다운 새소리가 아닌 새들의 아우성에 제 마음이 새소리에 반대로 돌아 앉습니다. 늘 아름답다 라고 여기던 새 소리의 상찬도 ‘과욕’일 수 있겠네 하는 맘이 드는군요. 어지간히 앞다투어 새벽을 깨트리고 있습니다.      


6.19 라는 숫자를 보니, 어디서 봤더라... 어디서 봤더라... 곰곰이 생각하다 걸리는 날짜. 제 짝꿍과 평생을 약속한 날이군요. 제 성격상 특별한 날이라고 무언가를 종용한 적이 없으니, 오늘도 차 한잔하고 넘어가겠지요. 어느 해이던가, 결혼기념일을 챙겨주는 홈쇼핑 안내인의 도움을 받고 목걸이를 선물한 남편. 쓸데없는 곳에 돈을 썼다고 각시 잔소리꽤나 듣고 그 뒤에 오는 선물들을 모두 반환시켰던 저. 그래도 한 개는 남아서 20년 넘게 잘 달고 다닙니다. 한번이면, 또 하나이면 족한 것이 보석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저라서 얼마나 다행인지요. 그보다 더 중한 것은 평생을 살면서 따뜻한 말과 행동, 타고난 덕성과 품성을 지닌 마음이니까요.     

 

지난 일요일 익산에서 박범신 작가의 강연회가 있어서 갔었지요. ‘청년작가’라는 수식어가 붙은 그도 어느새 78세. 그러나 여전히 여느 사회 초년병 청년처럼 깔끔하고 반듯한 모습으로 51년 작가인생을 소탈하게 전해주었습니다. 익산의 원광대 문학사단 이라 불릴만큼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떠오르는 데요, 윤흥길, 박범신, 양귀자, 안도현, 유강희, 박성우, 군산의 채규판, 박라연시인 등,, 가까운 곳에 이분들이 계십니다.      


박범신작가의 산문집 <두근거리는 고요>에 봄날의 산책 이름으로 싸인 한 장 받고, 군산에도 한번 놀러오시라고 전했지요. 어제 잠깐 쉬는 시간 읽었던 <아침편지>라는 그의 글에 이런 내용이 있더군요. - 세상이 비춰주는 서치라이트가 아니라 내 안에 간직한 희미하고 푸른 불빛에 의지해 걸어가는 지혜가 아름답고 존귀하다 – 마치 제게 들려주는 듯해서 메모했답니다. 함민복 시인의 <공터의 마음>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공터의 마음 – 함민복    

 

내 살고 있는 곳에 공터가 있어

비가 오고, 토마토가 왔다 가고

서리가 오고, 고등어가 왔다 가고

눈이 오고, 번개탄이 왔다 가고

꽃소식이 오고, 물미역이 왔다 가고     


당신이 살고 있는 내 마음에도 공터가 있어    

 

당신 눈동자가 되어 바라보던 서해바다가 출렁이고

당신에게 이름 일러주던 명아주, 개여뀌, 가막사리, 들풀이 푸르고

수목원, 도봉산이 간간이 마음에 단풍 들어

아직은 만선된 당신 그리움에 그래도 살 만하니  

   

세월아 지금 이 공터의 마음 헐지 말아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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