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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니카 Jun 20. 2024

당신봄날 아침편지63

2024.6.20 김영애 <틈>

직업에 귀천이 없다 하지만 실제로 세상은 이미 귀천을 만들어 놓았기에 그 잣대로 사람을 판단하기도 합니다. 똑같은 고무장화를 신었더라도, 돈이 많은 이에게는 소탈하고 절약한다 말하지만 정말로 돈이 없는 이에게는 그런 배려의 눈길을 보내지 않는 편이지요. 마치 어느 풀은 꽃과 나무가 되고, 어느 풀은 잡초가 되는 형국이랄까요.      


책방 계단의 틈마다 자라난 이름 모를 풀들을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는데요. 3년 전 말랭이에 왔을 때, 마을 곳곳을 혼자서 청소하고 다니는 한 여인이 있었어요. 저는 풀 한 포기도 이쁘다고 뽑지 말라하고, 그녀는 마을을 깨끗이 해야 관광객이 좋아한다고 열심히 풀을 뽑았죠. 그러면서 서로가 다른 방식으로 알아가고 마을인이 되어갔어요. 어제도 계단을 오르는데 낯선 푸른 생명들이 보이면서 그녀의 얼굴도 겹쳐 생각나더군요. 요즘 몸과 맘이 아프다는 그녀가 없다면... 혹시라도 사람들이 그녀를 잡초로 보면 어쩌지? 하는 안스러운 마음이 일어서 위로의 편지로 톡 쪽지 한 장을 보냈답니다.     


학원에서도 마찬가지였지요. 공부가 마음대로 안된다고, 불안하다고 하는 어느 중학생. 담당선생님의 보고를 받았지요. 늦은 밤, 혹시라도 공부한다고 머리를 동여매고 있을까바 걱정되어 톡 편지를 썼어요. 물론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은 한마디도 안 했지요. 그냥 저의 글 한 조각이 위로가 되고 불안을 덜어주는 역할을 했다면... 아마도 오늘 그 학생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달콤한 간식 대령하는 원장으로 기말고사 준비하는 학생들의 에너지원이 되어야겠습니다. 어제 새벽에 그렇게 지저대던 새들이 오늘은 사뭇 정렬된 소리로 노래하네요. 비 소식도 없는데, 저의 불만을 눈치챘는지, 지들 나름대로 순서를 짜서 울어주기로 했는지... 어쨌든 항아리 속에 굵고 짧게 ‘또 옥’하고 하고 떨어지는 빗방울소리의 공명처럼 소리내는 저 새 이름이 무엇일까 궁금해지는 새벽입니다. 김영애 시인의 <틈>이라는 시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틈 - 김영애          


높은 빌딩이 하나둘 전망을 사들이면서 

바다는 점점 좁아졌다

대양에서 불어오던 바람은 빌딩에 부딪혀 휘청거리다 

술주정 부리는 아버지처럼

화분이나 집기를 뒤집어 놓고 사라지곤 하였다

비바람이 걷히자

상한 가지와 팬 땅을 어루만지는 햇살에

용기를 얻은 민들레

보도블록 사이 쪽방에서 얼굴을 내밀어 인사를 한다   

  

너도 비좁은 자리에서 애쓴다

없는 사람도 살만한 계절이 여름이라지만

장마철 공치는 날이 다반사에

머리카락만큼 가는 틈으로 빗물은

인정사정없이 스며 우울을 포개고

선풍기를 빙빙 돌려도

빌딩 숲의 복사열에 잠들지 못한 밤

겨울을 생각하지만

한겨울 문틈으로 가난을 염탐하는 냉기에

우리는 몸을 떨었네

너는 틈을 사랑하는구나

민들레가 바람에 흔들린다

쪼그리고 앉은 다리가 저려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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