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제게 가장 많은 숨소리를 들려주는 나무는 모 카페안에 서 있는 은행나무입니다. 나무의 사계를 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와 더불어 쌓인 인연의 발자취가 흥건하게 넘실거립니다. 어제도 오르막길에서 지난 가을, 낙엽을 주우며 깔깔거렸던 벗과의 산책이 떠오르고, 내리막길에서는 올봄 초 앙상한 가지들 사이로 보이는 잿빛하늘이 이쁘다고 말했던 어느 지인과 그 속에서 기지개켜던 어린 초록 잎들도 생각났어요. 어느새 그 잎들이 다 커버려서 제 몸을 한 틈도 보여주지 않고 철벽방어를 하고 있네요. 너무 꽉 차 보이면 위압감을 느끼는 제 마음도 모르구요. 그래도 나무는 참 투명하고 솔직한 생물체구나 싶었습니다. 어느 사람이 제 일생을 다 보여주며 살아갈까요.
어제 읽은 책 중 정현종 시인의 <빛-언어 깃-언어>의 ’시란 무엇인가‘라는 글에서 작가는 말했습니다.
-마음이 무거울 때 나를 그 무거움에서 헤어나게 하는 것은 자연과 시이다. 나무가 공기나 햇빛, 물에 대해서 생각하진 않지만 그들 속에서 그들에 의해 사는 것처럼, 사람도 시라는 모태 안에서 살아가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막상 그 속에서 숨을 위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 말이 딱 마음에 꽂혀서 좀 더 읽어나갔죠. 시를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오로지 자연에너지를 받는 나무의 수동적인 모습을 넘어서 그 자연과 나무를 통해 나라는 존재의 변화를 깨닫는 능동적 모습은 아닐런지... 시를 읽고 쓰는 행위를 통해 작가의 마음이 무거움을 벗어던진다면, 좋은 시를 읽는 독자 역시 시 한줄 자락의 끄트머리에서라도 가벼운 존재가 될수 있는 법.시 쓰기가 어렵다고 느끼는 저 같은 독자들은 읽기만이라고 잘하면 자유로운 삶의 쾌감을 느낄 수 있겠다 싶었지요. 내친김에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을 포함하여 시 몇 편을 읽고 건달장마(임보시인의 비유) 날의 불쾌감을 떨쳐버릴 수 있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