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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니카 Jul 21. 2024

당신봄날 아침편지94

2024.7.21 이해인<바닷가에서>

여름 길목에서 서 있는 대장, 매미들의 합창이 때를 가리지 않기 시작한 듯, 새벽에 들리던 흰배지빠귀들의 ‘쏘오옥 쏘오옥’ 소리는 어디로 갔는지, 아마도 자리를 뺏긴 듯 합니다. 아시다시피 땅속에서 평균 7-8년씩 인내하던 매미들이 성충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약 한달간 살다 사라지는 단명한 곤충입니다. 특히 수컷들의 구애소리가 하늘을 찌를때 쯤이면 여름 삼복(三伏)이 끝나고 가을의 문이 열리고 있겠지요. 소리 없는 꽃에 비해 소리를 들려주는 곤충들이야말로 진정한 계절의 수문장입니다.     


이 새벽에 먹는 이슬맛은 어떨까 하고 ‘매미’를 검색해보니, 그 이름의 다양함에 놀랐습니다. 흔히 불리는 매미는 ‘참매미’, 새벽과 저녁을 알리는 ‘쓰르라미’, 말크기의 ‘말매미’, 심지어, 봄부터 운다는 ‘봄매미’도 있군요. 가장 재미있는 표현은 ‘벙어리매미’...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알아 맞춰 보세요. 엄청 쉬워요^^ 세상에 이름없는 삶이 없이 모두 다 이름이 있어서 새삼 이름의 소중함이 느껴집니다.     


수녀원 입회 60주년을 맞는 이해인 수녀님(1945년 출생)은 대중적 시인입니다. 그분의 성심과 시인으로서의 모습, 심지어 투병사실까지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받고 계시는 분이지요. 저도 그분의 시집을 포함하여 다수의 책을 가지고 있는데요, 최신신간 <소중한 보물들, 김영사 2024.6>에서는 정말 삶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특히 그동안 받았던 많은 사랑품(물건, 편지 등)을 갖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주며, 지난 세월의 흔적을 더듬어 보는 시인의손과 발, 강단있는 말씀 뒤에 나오는 하얀미소가 독자에게 애잔함을 던져줍니다. 어제는 이 책에 대한 짧은 원고 하나를 써서 캐톨릭 잡지 <쌍백합>에 보냈는데요, 시인이 운영했던 ‘해인글방’에도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정리할 것을 쌓아놓기만 하고’를 반복하는 일상. 장마라서, 더위라서, 피곤해서, 바빠서... 갖가지 핑계거리를 듣는 제 방의 물건들은 그래도 주인과 더 머물러서 행복할걸?? 이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정리할 맘이 사라지려 하는군요.^^ 그래도 손발이 더 건강할 때, 어서어서 정리하여 한 품이라도 새 주인을 만나도록 해야겠습니다. 오늘은 백숙잔치에 초대받아 갑니다. 벌써부터 군침이 도는 걸 보니, 밤새 불편했던 복통이 사라졌나봐요.~~~ 이해인시인의 <바닷가에서>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바닷가에서 – 이해인     


오늘은

맨발로

바닷가를 거닐었습니다     


철석이는 파도 소리가

한 번은 하느님의 통곡으로

한 번은 당신의 울음으로 들렸습니다     


삶이 피곤하고

기댈 대가 없는 섬이라고

우리가 한 번씩 푸념할 적마다

쓸쓸함의 해초도

더 깊이 자라는 것 보았습니다     


밀물이 들어오며 하는 말

감당 못할 열정으로

삶을 끌어안아 보십시오    

 

썰물이 나가면서 하는 말

놓아 버릴 욕심들을

미루지 말고 버리십시오     


바닷가 모래 위에 엎질러 놓은

많은 말을 다 전할 순 없어도

마음에 출렁이는 푸른 그리움을

당신께 선물로 드릴게요     


언젠가는 우리 모두

슬픔이 없는 바닷가에서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로

춤추는 물새로 만나는 꿈을 꾸며

큰 바다를 번쩍 들고 왔습니다

<사진제공, 박지현 문우... 부안 앞바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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