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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봄날아침편지144

2024.9.9 김현승 <가을의 시>

by 박모니카

’결핍과 여유’ 어느 것이 진정한 삶의 풍요를 가져올까요. 충분히 여유로운 누군가에게 이렇게 질문을 했다고 할까요? ‘스스로 결핍된 상황을 선택하면 몇 배로 더 나은 멋진 삶을 살 수 있다고...’ 아마 요즘 세상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요. 머리로 이해한다 하더라도, ‘뭐 그렇게까지야. 한번 뿐인 삶인데, 이왕이면 풍족하게 살아야지. 그것이 진짜 풍요로움이지’라고 말할거예요. 멀리 볼 것도 없이, 저와 제 자식들도 종종 그렇게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소위 성공한 사람들(부와 명예로서)의 중심 아래를 받혀주는 토대가 바로 ‘결핍’이었다라는 말을, 우연히도 어제 여러번 듣게 되었네요. 그 중의 한 사람, 고명환작가의 신간 <고전이 답했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유투브(이금희의 마이금희)에서 둘의 대화를 듣다보면 바로 이 ‘결핍’이 가져온 성공한 인생이야기가 재미있었습니다.


잘 나가가던 개그맨 시절, 촌생출신이 그가 서울에서 출세하기위해, 밤낮으로 돈을 벌고, 집도 사고, 하던 와중 일어났던 교통사고. 카프카의 <변신>에서 그레고리가 벌레로 변했던 것처럼, 눈떠보니 자기도 외계인처럼 <변신>한 모습으로 삶이 3일을 넘기지 못할거라는 말을 듣었다하네요. 그때 처음으로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던가.’를 생각했다고 합니다. 결론은 그는 살았고, 그 이전의 그가 아니라 새로 테어난 그로 만들어 준 것이 병원생활에서의 ‘고전읽기’였다고 말합니다.

마침 9월 마지막 주에 군산에도 오고, 또 소위 요즘 핫한 베스트셀러길래, 신청했더니, 책이 와서 어제 빈둥거리는 일요일 손에 안겨주고 읽었답니다. 작가가 읽은 고전책과 작가의 체험이 잘 비벼진 중요 문구들이, 읽기 쉬운 단문으로 또 명확한 작가의 목소리로 잘 전달하고 있습니다. 제 나이 또래사람들에게 익숙한 고전책명이 많아서 더욱더 재밌게 읽혀졌구요, 제 아들딸 같은 젊은이들이 읽어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지루하게 혹독했던 올 여름의 더위... 저는 진작부터 이불깃을 당기어 잠을 청했지요. 이른 새벽까지 울어대는 여치, 간혹 귀뚜라미 소리에서 가을을 찾듯이 이제는 명음(命音)을 울리는 책 한 줄을 찾아, 자신만의 가을색을 입혀야 할 때인 것 같아요. 저도 조만간 문우들과 새로운 독서 프로그램하나 기획하고 있는데요, 저부터 슬슬 독서마당에 들어설 발동을 걸어야겠어요. 오늘도 글부자 되세요. 김현승시인의 <가을의 시>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가을의 시 - 김현승


넓이와 높이보다

내게 깊이를 주소서,

나의 눈물에 해당하는......


산비탈과

먼 집들에 불을 피우시고

가까운 곳에서 나를 배회하게 하소서.

나의 공허를 위하여

오늘은 저 황금빛 열매들마저 그 자리를

떠나게 하소서.

당신께서 내게 악속하신 시간이 이르렀읍니다.


지금은 기적들을 해가 지는 먼 곳으로 따라 보내소서

지금은 비둘기 대신 저 공중으로 산까마귀들을

바람에 날리소서.

많은 진리들 가운데 위대한 공허를 선택하여

나로 하여금 그 뜻을 알게 하소서.

이제 많은 사람들이 새 술을 빚어

깊은 지하실에 묻을 시간이 오면,

나는 저녁 종소리와 같이 호올로 물러가

나는 내가 사랑하는 마른 폴의 향기를 마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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