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당신봄날아침편지145

2024.9.10 이해인 <내 나이 가을에 서서>

by 박모니카

올해는 추석이 일러서 인사드려야 할 지인들의 이름을 쭉 쓰다보니, 마음이 좀 서둘러집니다. ‘어느 분께는 선물로, 어느 분과는 함께 식사를...‘ 혹자는 제게 말하지요. 챙기는 것도 가볍게 하라구요. 물론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결코 무겁지 않게 인사합니다. 그래야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서로 웃는 명절을 맞이하니까요.


거꾸로 선물을 받다보면 그 사람의 성품을 알 수 있는데요, 친정엄마의 상차림에 도움이 되라고 챙겨주신 선물, ’떡‘을 받았습니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사물 1호, 아마 ‘쌀’일 건데요, 쌀의 화려한 변신 ’떡‘을 받고 열어보니, 새삼 떡 만드는 사람들의 노고와 미적 감각에 놀랐답니다. 떡을 직접 집에 있는 시루에서 쪄서 명절상 차림에 올렸던 오랜시절...이제는 당신께서도 힘이 드시니, 간소하게 시장떡을 올린지 몇 년 되었는데요, 그래서인지 떡을 선물로 받았다하니 참 좋아하십니다.


추석연휴 전후에도 학생들과 보충수업이 있지만, 아무리 공부가 중요해도 명절에 어른들께 꼭 인사해야된다... 라고 강조해도 요즘 학생들은 추석명절의 참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듯 합니다. 하긴 우리 어른들의 세계에서도 각 가정에서 우러나오는 명절의 진미를 알지 못한지가 오래되었지요. 그냥 휴일에 불과한 경우가 허다 하니까요. 누가뭐래도 저는 일년에 두 번 있는 명절이 참 좋습니다. 사람들이 북적거릴 군산의 골목골목만 생각해도 마음이 환해집니다.


오늘은 어제 사 온 국화포트를 화분에 옮겨야 하는데요, 역시나 철이 왔는지, 가을국화들이 눈에 띕니다. 여름내내 잡풀도 꽃처럼 자리잡은 화분에게 새 생명을 이식하는 일, 제 베프가 와서 멋지게 해준다고 했지요. 저는 장식하는 재주가 없어서 늘 부탁만 하니까요.^^ 오늘은 이해인 시인의 시 <내 나이 가을에 서서>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내 나이 가을에 서서 – 이해인


젊었을 적

내 향기가 너무 짙어서 남의 향기를

맡을 줄 몰랐습니다


내 밥그릇이

가득차서 남의 밥그릇이 빈 줄을

몰랐습니다


사랑을

받기만 하고 사랑에 갈한 마음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세월이

지나 퇴색의 계절 반짝 반짝 윤이나고

풍성했던 나의 가진 것들이

바래고

향기마저 옅어지면서 은은히 풍겨오는

다른 이의 향기를맡게 되었습니다


고픈

이들의 빈 소리도 들려옵니다

목마른

이의 갈라지고 터진 마음도 보입니다


이제야

보이는 이제서야 들리는 내 삶의

늦은 깨달음


이제는

은은한 국화꽃 향기 같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내 밥그릇

보다 빈 밥그릇을 먼저 채

우겠습니다


받은

사랑 잘 키워서 풍성히 나눠

드리겠습니다


나이 가을에 겸손의 언어로

채우겠습니다

9.10 국화.jpg

<네이버이미지 차용... 잠시후에 제 국화꽃으로 올립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당신봄날아침편지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