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 피재현 <별이 빛나는 감나무 아래에서>
아침편지쓰는 일을 매일 바라보던 유일한 생명, 복실이, 지금도 침대 밑방석에서 힘없이 누워서 한쪽 눈만 뜨고 저와 눈 맞춤하고 있어요. 복실이는 청각이 제가 상상 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니, 아마도 이 피아노곡의 선율에 흐르는 음표 하나하나, 휘발시키지 않고 감상할거예요. 제 글자가 나오는 자판기 소리까지도 분석해서 제가 무엇을 쓰고 있는지 다 알거구요. 처음으로 애완견을 안고 다니는 사람들의 심정이 전해옵니다. 아픈 아이일 경우가 더 많았을수도 있겠구나.
친정엄마가 방금 전화오셨군요. 밤새 복실이 어떠냐고요. 사람처럼 끙끙거리며 고통스러워 하느냐고요. ’사람으로도 고통을 받은 적이 없던 네게 이런 일이 있는 것도 어찌보면 알지 못한 죄를 갚는 거라 생각하고, 복실이가 좋은 집안의 잘난 사람으로 환생하라고 지금부터라도 항상 기도하라 ‘고 하시는 말씀이 딱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요. 기도로서 이 새벽을 열어야지요.
오늘의 날씨는 어떤지,, 주위는 먹색으로 어두워서 보이지 않지만 , 왠지 구름 습기가 가득한날 일 듯해서 책방에서 책 정리하며 책이나 읽어야겠어요. 읽다보면 쓰고 싶은 말이 생각나고, 생각나는 것을 다 쓸 수 없는 저의 한계도 알게 되겠지요. 그럼 또 읽게 되고, 읽으면서 깊이 들여다보게 될것이고, 깊이가 깊을수록 끌어올려지는 생각과 표현의 양도 조금은 늘겠지요. 오늘 저의 캔버스에 담길 주제를 ’깊은사색‘이라고 명명해놓으면 어찌 이루어질까요.
단풍철 주말이라고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길을 떠납니다. 그러나 진정한 여행길은 내 몸하나에 새로운 길을 만드는 일. 어디를 가시든, 개척되지 않고 평생 숨어있을, 힘들여 더듬어보아야 잡힐 듯 말듯한 당신의 수줍은 마음에게 부탁해보세요. ’우리 함께 몸의 길 하나 만들어볼까?‘ 라구요. 그러면 더 오래토록 추억으로 남을 여행이 될거예요. 멀리 가지 않아도 언제든지 만들 수 있는 ’나만의 여행길‘위에 늙은 감나무 한 두 그루 있으면 금상첨화지요. 피재현 시인의 <별이 빛나는 감나무 아래에서>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별이 빛나는 감나무 아래에서 - 피재현
아버지는 가을이 깊어지면 감 따러 오라고
성화를 부렸다
나는 감 따는 게 싫어 짜증을 냈다
내가 얼마나 바쁜 사람인지 아느냐고
감 따위 따서 뭐 하냐고
아버지 돌아가시고 다시 가을이 왔을 때
엄마는 내게 말했다
니 애비도 없는데 저 감은 따서 뭐 하냐
나는 별이 빛나는 감나무 아래에서
톱을 내려놓고 오래도록 울었다
<사진제공, 박세원 문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