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4 전재복 <할아버지 팽나무의 큰 기침>
군산하제에는 수령 600년 이상이라는 팽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미군기지확장으로 야금야금 땅이 뺏기면서 마을인들이 제 삶터를 떠나고, 오랜세월 마을의 수호신이었던 팽나무자리마저도 내놓으라는 불한당같은 저들의 협박이 있었지요. 원래 섬이었던 하제가 간척사업으로 육지가 되었고, 이방인들에게 안방까지 내주는 치욕과 수모를 견디는 그 모든 모습을 팽나무는 보았습니다.
군산의 뜻있는 지역민들이 ’팽팽문화제‘라는 이름으로 팽나무를 지키고자 수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데요, 지난 달(10.31)이 드디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어요. 군산시가 주관하는 기념식에는 가고 싶지 않았지만, 어제 민간인들이 자축하는 팽팽문화제에 잠기 참여했습니다. 특히 봄날의 산책 출판사에서 나온 전재복 시인의 시집<시발>에는 이 팽나무에 대한 시가 있어서, 이번문화제에서 시 낭독을 초청받았었습니다.
행사 서두에 팽나무보호운동을 함께 해온 문정현신부의 말씀이 있었는데, 아마도 푸른 쪽빛하늘을 깨고 더 높이 솟아나 번쩍했을 그의 벼락같은 외침은 미군뿐만아니라, 현 정부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을것입니다. 전국 각지에서 팽나무 천연기념물 지정을 축하하기 위해서 찾아오셔서 춤과 노래, 악기연주 등을 재능기부해주셨어요. 수준높은 문화공연 덕분에 말랭이 행사도중 빠져나왔던 바쁜 마음이 모두 해갈되면서 즐거웠지요.
전재복 시인의 시 <팽나무 할아버지의 큰 기침>과 <시발>의 낭독을 들으시는 관중들이 큰 박수를 보내주시고, 출판한 저도 왠지 마음이 으쓱해졌답니다. 팽나무 수호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 한 자락을 대신한 것 같아서요... 우리 지역에 이런 일들이 있었구나 하며 이제부터라도 지속적으로 많은 관심과 사랑을 부탁드리고 싶군요.
오늘은 저도 김장터로 갑니다. 제 엄마의 엄명이 재료가 되어 만들어질 김장잔치... 아마도 동생댁들이 춤추듯 호로록 뚝딱 만들면서 제 김치통도 채워주겠지요. 벌써부터 김치 겆절이에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고기 쌈도 생각나서 입맛이 다셔지네요. ^^ 평화로운 휴일에 푹 안겨보내시길 바랍니다. 전재복시인의 <할아버지 팽나무의 큰기침>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할아버지 팽나무의 큰기침 – 전재복
시방은 허허벌판 하제뜰
질긴 목숨 잡초만
쉰 목소리로 망향가를 부른다만
삼천여 가솔들이
들고나며 왁자한 날도 있었느니
황토물 바다를 얼싸안고
지지고 볶으며 삶을 캐고
논배미 밭두렁 바지런히 일구던 시절
하늘을 우러러 안부를 묻고
땅에 엎드려 올곧게 답장을 쓰던
우리 땅 우리의 시절이었네
조선왕조 500년을 딛고
왜놈에 짓밟힌 치욕의 세월을 넘어
해방이라 만세를 불렀었네
빼앗긴 들에 봄이 온줄 알았더니
난데없이 내 마당을 내노라더니
내 식구 내 친구 사돈의 팔촌까지
깡그리 쫓아내고 쇠울타리를 둘러쳤네
다 떠나도 나는 못 가리
600살 쇠고집으로 뿌리를 지켰네만
허허 이제는 우리 동네 땅 주인이 미쿡이라네
언제 우리가 꼬부랑 국적을 달랬던가
장죽 담뱃대로 대청마루 땅땅 두드리며
팽나무 어르신 큰기침 한 번 하셔야겠다
여기는 내 땅이여
내가 아직 시퍼렇게 살아있단 말여
쩌렁쩌렁 호통 한 번 치셔야겠다
<할아버지 팽나무의 큰기침>을 낭독하시는 전재복시인
팽나무지키기 운동을 함께 하고 계시는 문정현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