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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니카 Nov 26. 2024

당신봄날아침편지222

2024.11.26 안도현 <재테크>

새벽부터 줌 화면으로 문우들과 책 이야기를 나눌 일이 있어서 일찍 일어났습니다. 오늘의 작가는 박완서(1931-2011)님. 읽을 책은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세계사2024>라는 산문집이지요. 작가사후 많은 버전의 책들이 쏟아져나왔는데요, 이 책은 2002년에 쓴 <꼴지에게 보내는 갈채>라는 책을 재 편집했더군요. 초판본은 1977년에 썼으니, 얼마나 오랫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오는 책인가요.      


오늘의 수업을 위해 좀 더 꼼꼼히 읽어보는데요, 왜 한국문단의 거목이라는 수식어가 붙는지 충분히 이해될만큼, 작가의 글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모양의 차등이 없었습니다. 나의 이야기, 당신의 이야기, 또 누군가의 이야기라고 말해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 평범한 문체와 소재들로 책을 읽는 독자는 누구든 평화로움과 미소를 짓게 합니다. 어느샌가 글쓰는 일이 늘어난 저 같은 사람에게는 더없이 본받고 싶은 스승입니다. 다른 시대에 살았어도 늘 현재형으로 읽혀지는 박완서 작가의 에세이를 꼭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11월이 마구마구 달리기를 하네요. 금주에는 유독 할 일이 쌓여있는데, 슬슬 부담이 밀려오고요. 학원일도 월말이라 바쁘고, 문학일도 요일마다 선약이 있고요. 그러다보니, 우선순위가 자꾸 밀려서 ‘이러다가 큰일 나지’ 라는 걱정까지 들어왔어요. 게다가 오늘은 또 김장 겆절이와 수육으로 벗들을 위해 점심한상 차리겠다고 선언했기에, 아침부터 종종걸음 치게 생겼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기쁘네요. 지금 아니면 언제 밥 먹으랴 하는 맘으로 미룰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니까요. 박완서 작가도 시련이 있을 때, 수도원의 책상에 써 있던 글귀 한 구절, ‘밥이 되어라’로 새 생명을 얻었다고 해요. 저는 있는 밥을 밥상에 놓는 경우니, 마땅히 나눠먹어야지요.

오늘도 배추에 대한 시 한편 드릴께요. 안도현 시인의 <재테크>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재테크 안도현     


한 평 남짓 얼갈이배추 씨를 뿌렸다

스무 날이 지나니 한 뼘 크기의 이파리가 몇 장 펄럭였다

바람이 이파리를 흔든 게 아니었다, 애벌레들이

제 맘대로 길을 내고 똥을 싸고 길가에 깃발을 꽂는 통에

설핏 펄럭이는 것처럼 보였던 것

동네 노인들이 혀를 차며 약을 좀 하라 했으나

그래야지요, 하고는 그만 두었다

한 평 남짓 애벌레를 키우기로 작심했던 것

또 스무 날이 지나 애벌레가 나비가 되면 나는

한 평 얼갈이배추밭의 주인이자 나비의 주인이 되는 것

그리하여 나비는 머지않아 배추밭 둘레의 허공을

다 차지할 것이고

나비가 날아가는 곳까지가, 나비가 울타리를 치고 돌아오는

그 안쪽까지가

모두 내 소유가 되는 것

사진제공, 박세원 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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