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모니카 Nov 27. 2024

당신봄날아침편지223

2024.11.27 김형태 <첫눈이 오면>

이른 새벽, 서울엔 첫 눈이 온다고 동생이 영상을 보내오네요. ‘언니야 첫 눈이야’라는 그녀의 목소리엔 아마도 설레임이 가득했을거예요. 오늘 내일쯤 군산에도 흰 눈이 내리지 않을까요. 처음 만나는 겨울도 아닌데, 왠지 이번엔 낯섬과 두려움이 먼저 앞서는 건 왜일까요. 나이들수록 겁쟁이가 되어가는가봐요.^^   

  

오늘은 김장봉사 현장에 가보려고 해요. 지난주에는 1000포기, 오늘도 비슷하게 하겠지요. 지역사회의 공동체들이 추운 겨울을 함께 나고자 하는 대표적인 모습인데요. 나이 많으신 분들까지 오셔서 누군가를 위해 김장을 하는 마음은 큰 공부하는 학교 같아요. 짧은 시간이라도 한가지라도 손 거들고 오면 마음이 편하고, 어른들께 송년인사도 드릴겸, 참석하지요.     


책방을 열던 첫 해까지, 저는 학생가족들과 연탄나눔봉사활동을 했었는데요, 최근에는 기부금이 모아져도 그냥 어딘가에 주고 행사 주관은 안하고 싶을 정도로 게을러졌어요.~~ 그런데도 이렇게 첫 눈 소식이 오면, 연탄 한 장을 조심스럽게 들고 하얀 눈을 먹는다고 하늘 향해 서 있던 어떤 학생이 생각나는군요. 지금쯤 그 학생도 다 큰 청년이 되어있을텐데요, 저 처럼 그날의 풍경을 그리워할지, 아니 그리워했으면 좋겠다 하는 바램도 생기구요.     


날이 엄청 추워졌지요. 갑자기 추워지면 건강 이상 신호도 갑자기 오는 법. 절대 서두르지 마시고 무엇을 하든 천천히 조금 느리게 생각하고 말하고 움직여보세요. 몸 속에 흘러가는 당신의 수 많은 지지자들과 조근 조근 대화하면서 이 겨울 잘 견뎌내보자고 어루어주시면 어떨까요.     


첫눈이 오면 – 김형태     


알지 못하여 저지른 죄

알고도 모른 척 저지른 죄   

  

산산이 부서져 내란 하늘이여

여명처럼 밀려와 나를 덮으라     


대지의 공전이 멈추면

손님처럼 사제가 찾아와

고해성사를 받는다     


어둠으로도 덮을 수 없는 부끄러운 기억 위로

영영 부를 수 없는 아득한 사람들 위로


용서의 *보속이 내리고     

나는 이름을 다시 적는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아

함께 수렁을 건너던 사람아     

처음처럼 만나서 이브의 땅으로 가자


손잡고 약속했던 곳으로

새 발자국을 찍으며 걸어가야지     



* 보속

고해성사 후 사제가 죄를 사하면서

내리는 참회의 숙제

사진, 강진순 문우

사진, 박세원 문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