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1 오광수 <12월의 독백>
각 방마다 걸려있는 달력의 마지막 장 12월의 얼굴을 봅니다. 일년 365일 중, 334일을 걸어왔군요. 아니 올해도 어느 구간은 열심히 뛰었을지도 모르지만 일년 마라톤 경주내내 분명 그 속도는 느려졌지요. 그래서 지난 시간들이 더 분명히 보이기도 하네요. 이번 12월엔 더욱더 느리게 걸어보기와 스치는 순간을 담아두기를 하고 싶어집니다.
오년전부터 만들었던 가족달력의 사진과 원고를 준비하다가, 엄마와 형제들, 조카들과 제 자식들의 얼굴을 유심히 봅니다. 달력을 받는 이들은 저만큼의 감동은 없겠지요. 각자의 생일달에 들어갈 사진과 시, 또는 좋은 문구를 고르면서 제가 또 얼마나 많은 추억과 마음을 쏟아부을지를 잘 모르겠지요. 그래서 더 정성을 들여 달력의 재료를 선택합니다. 그나마 때가 되면 ’누님 이번에는 새 달력 언제 나와요?‘라고 물어봐주는 동생들이 고맙습니다.
저는 새해 하고 싶은 일을 쓰는 소위 ’버킷리스트‘를 보통 11월에 써 놓고, 12월에는 가감하는 일도 하지요. 나이가 들수록 분명 가볍게 먹고 생각하고 무거운 실천은 피하고 싶은데, 어찌어찌 하다보면 삶에의 욕망이 꿈틀거려 할수 없는 일까지도 기록해 놓곤합니다. 마음과 몸의 에너지가 없으면 이 기록마저도 무의미해지는걸 잘 알고 있기에, 꼭 할만한 일만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면서 마무리하네요, 오늘이 그 첫날... 지울 것 먼저 찾아봅니다.^^
12월의 첫날이 다행히 평화로운 일요일. 올해를 잘 마무리하려는 마음을 꺼내어서 겨울하늘 아래 펼쳐놓아보세요. 혹시나 아쉽고 서운한 일이 있어 채우고 싶은 부분이 있거들랑, 서두르지말고, 자연스럽게, 그저 그렇게, ’내년으로 넘어가도 돼. 아니 부족한대로 있어도 돼‘라고 토닥여주세요. 저는 그렇게 말하고 싶어지네요.~~ 오광수시인의 <12월의 독백>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12월의 독백 – 오광수
남은 달력 한 장이
작은 바람에도 팔랑거리는 세월인데
한해를 채웠다는 가슴은
내놓을 게 없습니다
욕심을 버리자고 다잡은 마음이었는데
손 하나를 펼치면서
뒤에 감춘 손은 꼭 쥐고 있는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비우면 채워지는 이치를
이젠 어렴풋이 알련만
한 치 앞도 모르며 숙맥이 되어
또 누굴 원망하며 미워합니다
돌아보면 아쉬운 필름만이 허공에 돌고
다시 잡으려 손을 내밀어 봐도
기약의 언질도 받지 못한 채 빈손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말입니다
해마다 이맘때쯤 텅 빈 가슴을
또 드러내어도 내년에는
더 나을 것 같은 마음이 드는데 어쩝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