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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니카 Dec 07. 2024

당신봄날아침편지233

2024.12.7 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

대설입니다. ’흰‘이란 글자가 가장 뚜렷한 날이네요. 줌수업으로 함께 강독하는 문우들과 만나는 마지막 새벽시간을 한강작가의 작품 <흰>으로 진행합니다. ’흰‘ 하면 무엇이 생각날까요? 라는 질문에 어떤이는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흰밥이 생각나고, 어떤이는 한쪽을 써버린 이면지가 생각난다 하고요. 또 어떤이는 흰 것은 두렵다고 하고 반대로 어떤이는 너무도 사랑스럽다고 했어요.      


박근혜탄핵을 위해 상경했던 몇 년 전 12월, 첫눈이 내렸었는데 그때가 새삼 생각납니다. 저에게 ’흰‘은 그때 역사의 물결 현장속에 있었던 평범한 저를 기억하게 하네요. 어제 노벨상수상자로서 처음으로 대중에게 인터뷰하는 한강작가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다시한번 적확하게 보여주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참으로 슬픈일입니다.       


오늘도 절기답게 눈을 예보하고 있는데요. 서울의 봄을 꿈꾸었던 자들로 인해 우리의 모든 평온한 일상이 깨어진 금주간 중에서 오늘이 최대, 최고로 숨 막히게 떨리는 날이 될 듯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서울로 향하고 있지요. 흰 눈이 온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할까요. 상처를 덮어주는 흰 연고일까요, 아니면 내 영혼과의 이별일까요...지인들 상당수가 서울의 국회 앞 촛불대열에 있어서 더욱더 맘이 내란을 일으키는 새벽입니다.      


오늘은 말랭이마을 축제 마지막 행사도 있어요. 어린이 친구들을 위해서 크리스마스 작은 선물꾸러미도 준비했구요. 한 해를 보내려 준비하는 나날들이 후회보다는 아쉬움이, 또 아쉬움보다는 설렘이, 설렘보다는 행복이 먼저 찾아오길 희망했건만, 광기를 보여준 한 인간으로 인해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재앙이 찾아왔으니 살아간다는 것은 미로를 더듬는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흰 눈‘속에 ’기쁨의 눈물 비추는 희망‘을 주문합니다. 오늘은 김지하 시인의 <타는 목마름으로>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 소리 호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 소리

신음 소리 통곡 소리 탄식 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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